[커버스토리] 묵밥 & 시원한 여름 음식
‘미쉐린’ 강민구와 송정은의 묵 요리
보기만 해도 군침 돌아…건강식으로 으뜸
80대 노부부 박남복·장창복의 청포묵비빔밥도
‘미쉐린’ 강민구와 송정은의 묵 요리
보기만 해도 군침 돌아…건강식으로 으뜸
80대 노부부 박남복·장창복의 청포묵비빔밥도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가 만든 ‘제철 채소 얹은 묵 요리’. 박미향 기자
‘최고’를 입은 우아한 도토리묵 요리 한 끼 고작 5~600원 하는 묵밥이 ‘최고’를 만난다면? 고급 정찬 레스토랑 ‘밍글스’의 강민구(36) 주인 겸 요리사는 음식 평론가들이 꼽는 대한민국 ‘최고’다.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 <미쉐린 가이드>, ‘라 리스트’ 등 국제적인 식당 평가에서 상위 수상을 놓친 적이 없다. 그는 지난가을 자신만의 색을 담은 묵 요리 개발에 나섰다. 묵이 한국인의 솔푸드라는 판단에서였다. “지금 전 세계에서 한국인만큼 도토리묵을 많이 먹는 이들도 없다.” 그런데 그가 만든 묵밥엔 어째 흥건한 국물이 없다. 무릇 최고란 평범함에 비범함을 담아내는 법. “차갑게 식힌 멸치 육수를 붓는 게 아니라 도토리가루에 섞어 색다르게 표현했다.” 국물이 이미 묵에 스며든 것이다. 처음엔 전남 구례에 사는 스님의 가루를 받아 만들었다. 한살림 등 친환경 식재료 유통 채널도 두드렸다. 10가지 넘는 도토리가루로 실험도 했다. “질 좋은 국내산 도토리가루를 찾기 위해 노력이었다.” 그는 단언컨대 국산 도토리가루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 사진 반얀트리 서울 제공
강민구 스타일 도토리묵 요리 만드는 법
① 친환경 식재료 파는 곳에서 국내산 묵을 산다. 얇게 썰고 수박, 참외 등 제철 채소를 먹기 좋게 잘라 얹는다. 소스는 질 좋은 간장과 참기름만 있으면 충분히 만든다. ② 남은 묵은 냉장 보관한다. 조리 전 찜기를 활용해 살짝 데우거나 데친다. 가루를 사 냉장 보관하면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다.
20년 넘게 묵만 만들었어요
20년 넘게 묵만 생산한 업체가 있다. 1980년대 전남 남원시 운봉읍 일대 도토리를 주워 가마솥에서 묵을 만들어 인근 상인들에게 팔았던 조석순씨. 그야말로 옛날식이었다. 올해 일흔이 훌쩍 넘은 그의 손맛을 아들 강상길씨 부부가 1994년께 노고단식품(남원시 조산동)을 설립하면서 이었다. 2003년께 현재 노고단식품 유통사업부 대표인 고재민(47)씨가 합류하면서 전통방식으로 생산하던 조씨의 묵이 전국권 판매 묵이 됐다.
이 업체가 생산하는 묵은 다양하다. 메밀묵, 고구마묵, 도토리묵, 우무묵, 황포묵 등 맛도 빛깔도 다채롭다. 고 대표는 “우린 메밀묵도 메밀 100%로 만드는데, 쉽지 않다. 그만큼 제품에 자신 있다”고 말한다.
친환경 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이 업체는 우무묵도 제주에서 채취한 우뭇가사리로 만든다. 고 대표는 “우무묵은 연중 판매하는 건 아니다. 5~8월 한철이다. 우뭇가사리는 칼로리가 거의 ‘0’이라서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자랑한다. 이 업체의 제품은 친환경 농산물 급식기업 네니아의 쇼핑물(econenia.co.kr), 유기농나눔협동조합, 오아시스(oasis.co.kr), 우체국 쇼핑물 등을 이용하면 구매할 수 있다. 최근에 품목을 넓혀 흑임자가루가 든 콩 국물도 판다.
박미향 기자
장김치 물에 우무묵을 넣어 만든 ‘우무묵 장국수’. 조리법은 ‘꽃, 밥에피다’ 송정은 전무가 알려줬다. 박미향 기자
우무묵, 장국수에 피다 도토리묵과 메밀묵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무묵, 청포묵, 고구마묵 등 별미 묵이 많다. 지난 19일 친환경 식당이자 <미쉐린 가이드> 책자에 소개된 ‘꽃, 밥에피다’의 송정은(50) 전무는 두 가지 묵 요리를 들고 나타났다. 김민주 요리사가 만든 ‘우무묵 장국수’와 ‘우무묵 콩국수’였다. 희로애락 가득한 인간사 같은 짙은 검은빛 국물엔 투명한 우무묵이 춤추고 있었다. ‘우무묵 장국수’다. 한 젓가락 집어 들자 시큼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입안을 점령했다. 소심한 저항도 할 수 없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심정이랄까! 송 대표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만들었던 장김치 국물이 우무묵과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장김치는 맵게 만드는 일반 김치와 달리 간장으로 담그는 김치다. 배, 잣, 대추, 표고버섯, 갖은 채소 등이 들어가는 조선시대 귀한 김치다.
‘우무묵 콩국수’. 조리법은 ‘꽃, 밥에피다’ 송정은 전무가 알려줬다. 박미향 기자
‘꽃, 밥에피다’의 송정은 전무. 박미향 기자
‘꽃, 밥에피다’의 ‘우무묵 장국수’와 ‘우무묵 콩국수’ 만드는 법
우무묵 콩국수
재료: 메주콩 1컵, 잣 또는 통깨 약간, 소금, 오이, 토마토 적당히
① 6~8시간 메주콩을 불린다. ② 불린 콩에 물을 넣어 끓인다. 끓어오르면 4분 정도 더 끓인 후 식힌다. ③ 믹서에 콩과 잣 또는 통깨, 물(콩의 2~3배)을 넣어 간다. ④ 우무묵은 곱게 채를 쳐 흐르는 물에 헹궈 그릇에 담는다. ⑤ 채 썬 오이를 준비한다. ⑥ 완성된 콩 국물을 우무에 붓고, 오이와 토마토를 올린다. ⑦ 콩 국물 만들기가 번거로우면 국내산 콩 국물을 구입해 쓴다.
우무묵 장국수
재료: 우무묵 300g, 장김치 100g, 장김치 국물 150g, 통 참깨 조금, 청·홍고추 고명
① 우무묵은 채 썰어 흐르는 물에 헹군다. 해초로 만든 게 우무묵이다. 특유의 비린내가 날 수도 있다. 소금물에 한번 살짝 씻어 조리하면 좋다. ② ①을 물기 털어낸 후 그릇에 담고 장김치와 장김치 국물을 붓는다. 통깨와 청·홍고추를 올린다. ③ 참기름 1~2방울 넣어주면 색다른 맛이 난다.
장김치
재료 : 무 2㎏, 배추 600g, 열무 600g, 가지 160g, 파프리카 160g, 오이 200g, 얼갈이 200g, 우엉 80g, 말린 표고버섯 40g, 장국물(물 200㎖, 간장 400㎖, 원당 400g, 식초 360㎖)
① 채소는 씻어 물기를 뺀 후 적당한 크기로 썬다. ② 통에 ①을 넣고 끓인 장국물을 바로 붓고 실온에서 하루 숙성한다. ③ 장국물과 채소를 거른 후 장국물을 다시 끓인다. 그 후 식힌다. 그걸 다시 채소에 부어 냉장고에서 10일 정도 숙성한다
‘소문난 식당 새재묵조밥’의 청포묵 한 상. 박미향 기자
80대 노부부의 정성, 청포묵 “청포묵은 보통 흰색 아닌가요? 할머니 청포묵은 왜 노란색이에요?” “녹두만 갈아서 즙 내서 만들었는데, 옛날 하던 대로 했는데….” 경북 문경시 문경읍에 있는 <소문난 식당 새재묵조밥>의 주인 할머니 박남복(82)씨는 기자의 질문에 답을 못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한 것뿐인데 도시 사람이 난데없이 “왜?”라고 물으니 그게 더 황당하다. 청포묵은 녹두를 간 후 생긴 앙금을 끓인 다음 굳혀 만든다. 조선시대 영조가 자신의 탕평책을 펼치기 위해 신하들에게 낸 음식이 탕평채인데, 청포묵이 탕평채의 주재료다. 이 집 청포묵과 도토리묵은 먹기 아까울 정도로 매끄럽고 보드랍다. 무라카미 류는 <달콤한 악마가 내안으로 들어왔다>에서 감동한 부드러운 맛을 아기 피부에 빗대 표현했는데, 만일 그가 이 집 묵 맛을 봤다면 어떤 미사여구로 호들갑을 떨지 궁금해질 정도다. 달걀지단, 잘 무친 채소, 신 김치, 무채, 김 가루 등을 넉넉하게 올린 청포묵비빔밥은 조밥과 짝꿍이다. “내가 만든 양념이 꼭 들어가야 제맛”이라는 박씨. 양념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옆에서 남편 장창복(83)씨가 거든다. “모든 재료는 우리가 농사지은 것이다.” 가죽나물무침, 머위무침 등 반찬도 정갈하다. 노부부를 닮았다.
<소문난 식당 새재묵조밥>의 주인 할머니 박남복씨와 남편 장창복씨. 박미향 기자
박남복 할머니가 알려주는 청포묵비빔밥
① 좋아하는 나물 준비한다. 배추나 산나물, 무채 등이 좋다. 잘 삶아 무친다. ② 청포묵은 쑤기 힘드니 제대로 된 거 파는 곳에서 사라. 살짝 데친다. 썬다. ③ 비빔양념이 중요하다. “15년 된 집간장을 쓰지만” 이 또한 쉽게 구하기 어려우니 좋은 것을 구하라. 다양한 채소와 들기름이나 참기름을 섞어 만든다. ④ 조밥을 짓는다. ①, ②, ③을 섞는다. ⑤ 청포묵비빔밥에 여름김치 국물 부어 먹으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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