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가을 제주 성산읍 온평리의 혼인지에서는 ‘탐라국의 시조’인 혼인지 신화를 재현하는 축제가 열린다. 연합뉴스
예로부터 제주의 관혼상제는 독특했다. 사람이 모이고, 술판을 벌인다. 이는 단순한 가정사가 아니라 마을 단위의 ‘큰일’이었다. 때로는 잔치였고, 때로는 애도였다. 종일 끝나지 않는 술판이 며칠씩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으레 사람들은 돼지를 잡았다.
3세기경 편찬된 <위지동이전>에는 제주도 사람들을 ‘소와 돼지 키우기를 좋아하는 이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 1939년에 출간한 <제주도세요람>을 보면, 1936년 제주에 살고 있던 4만7000여 가구 중 97%가 돼지를 길렀다고 한다. 도내 거주하는 일본인 등 외국인을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민간 가구에서 돼지를 직접 기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돼지들은 살림 밑천이기도 했지만, 결혼 등 집안의 대소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귀중한 식재료이기도 했다. 해안에서 가까운 마을에선 돼지를 바닷가에 끌고 가 잡았다고 한다. 피를 빼고 내장을 정리하는 등의 뒤처리에 물가가 더 유리했기 때문이란다.
2015년 10월24일 혼인지에서 주민들이 혼인지 신화를 재현하는 행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돼지를 잡아 마을잔치를 벌이는 전통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제주에선 이를 ‘피로연’이라고 부른다. 2001년 결혼식을 올린 제주 토박이 이창현(45)씨는 당시 10마리의 돼지를 잡아 3일 동안 잔치를 열었다고 했다. “먼저 결혼한 형님이 돼지 15마리를 잡았어요. 손위보다 더 많은 수의 돼지를 잡으면 안 된다는 불문율 같은 게 있었죠.”
며칠씩 이어지는 술자리의 손님 접대를 신혼부부 두 사람이 도맡아 하기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제주의 고유한 전통인 ‘부신랑·부신부 제도’는 그런 실질적 필요에 따라 탄생했다. 신랑·신부의 절친한 친구 중 미혼인 사람이 각각 부신랑, 부신부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결혼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는데, 신랑·신부의 크고 작은 심부름은 물론 축의금을 대신 받아 정리하거나, 때로는 동네 어른이 따라주는 술잔도 대신 비웠다. 서양 결혼식의 ‘들러리’ 제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부신랑, 부신부가 없었다면 3일 내내 손님 접대를 하느라 신혼부부는 몸이 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에는 제주에서도 직접 돼지를 잡지는 않고 업체를 이용한다. 3일의 피로연도 하루로 단축해 연다. 상당히 간소화한 것이다. 하지만 마을회관 등에서 온종일 피로연을 겸한 마을잔치를 여는 전통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부신랑, 부신부도 물론 있다.
지난달 30일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의례회관에서 피로연을 연 안기송(34)·조은설(30)씨 부부는 화사한 한복 차림으로 연신 밀려드는 손님에 응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신랑 안씨는 육지 출신, 신부 조씨는 강정 토박이라고 했다. 결혼식은 지난 6일 경기도 의정부시의 웨딩홀에서, 피로연은 제주 전통을 따라 강정마을에서 각각 열었다.
지난달 30일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의례회관에서 ‘제주식 피로연’을 연 안기송·조은설씨 부부와 친구 김수진씨(사진 가운데). 송호균 객원기자
요즘 결혼식은 보통 당사자와 부모의 ‘사회적 관계망’에 따라 손님이 모인다. 하지만 제주의 결혼식은 여전히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마을잔치’ 위주다. 이날 피로연에도 상당수의 강정 주민이 모여들었다. 온종일 술판이 이어지고, 노인들은 회관 입구에 돗자리를 펴고 판돈이 오가는 윷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신부 조씨는 설명했다. “육지에선 예식부터 식사까지 두어 시간이면 끝나잖아요. 이렇게 온종일 잔치를 열면 손님들이 자기가 편한 시간에 방문할 수 있어 좋고, 더 여유롭게 인사를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이들은 육지 출신인 신랑의 사정을 고려해 부신랑은 지정하지 않고, 부신부만 뒀다. 조씨의 ‘절친’인 직장 후배 김수진(27)씨가 그 주인공이다. 울산이 고향인 김씨에게도 부신랑, 부신부를 두고 종일 잔치를 벌이는 제주식 피로연은 독특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도 영광이었고, 당연히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어요. 이렇게 마을 잔치를 여는 일도 정말 흥겨워 보이고요. 뭐랄까, 정이 넘치는 것 같아요.”
‘혼례’는 제주의 정착민 신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명의 신인이 바위 구멍에서 튀어나와 제주의 고씨·양씨·부씨의 선조가 되었다는 이른바 ‘삼성혈 전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이 수렵하며 제주를 떠돌다 성산의 온평리라는 곳에 이르렀는데, 저 멀리 바다를 보니 목함 같은 물체가 떠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본 세 신인이 크게 고함을 질렀는데, 그래서 온평리 일대의 바닷가를 ‘쾌성개’라고 한단다. 요즘 제2공항 건설 논란으로 갈등이 끊이지 않는 그 온평리다. 어쨌든 이 목함에서 세 여인이 오곡의 씨와 송아지, 망아지 등을 끌고 나와 세 신인과 부부의 연을 맺게 되는데, 이들이 목욕을 하고 혼례를 올린 곳이 바로 성산읍 온평리의 ‘혼인지’라는 연못이라고 한다. 세 여인은 다름 아닌 벽랑국(현재의 전남 완도군에 존재했었다는 고대 국가)의 공주들이었다고 한다.
혼인지는 제주에서 손꼽히는 수국 촬영 포인트이기도 하다. 벽랑국 세 공주의 위패를 모신 ‘삼공주추원사’ 주변에 한여름 수국이 제철을 맞았다. 송호균 객원기자
떠돌며 수렵생활을 하던 세 신인이 오곡의 씨를 심어 농사를 짓고, 소를 기르며 정착하게 된 것도 결혼을 잘해서다. 이른바 ‘농경생활’의 시초라는 거다. 온평리 혼인지는 아름다운 풍광으로도 유명하다. 세 부부가 목욕재계를 했다는 연못과 함께 살았다는 동굴 등이 남아있는데, 세 갈래로 나뉜 동굴 안에서는 토기 등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산책로에는 목재 데크가 놓여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6~7월에는 아름다운 수국으로 유명한, 제주에서 손꼽히는 ‘수국 포인트’다. 특히 세 공주의 위패를 모신 ‘삼공주추원사’ 주변에 흐드러진 수국이 절경을 이룬다. 입장료는 무료다.
제주/송호균 객원기자 gothrough@naver.com, 참고문헌 <제주 생활사>(도서출판 한그루), <제주도 전설>(서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