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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코로나 재택 9주째…“희망퇴직 소문도…무기력하고 불안해요”

등록 2020-05-02 13:20수정 2020-05-02 13:40

Q1 상처 주던 친구와 절교 1년째
관계 깨졌지만 왜 자꾸 화나고 생각날까

A1 부정적 정서 기꺼이 대면할 때
그 감정이 찾아오는 빈도 줄어들 것

Q2 코로나19로 재택근무 성실히 해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무력감과 불안감 밀려와

A2 팬데믹이 부른 심리적·사회적 위기
담대하게 현재의 행복 찾으려 노력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곽정은 작가가 상담을 이성 관계, 사랑, 연애뿐만 아니라 ‘관계’ 전반으로 확장합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여러분이 맺는 수많은 관계에서 고민이 생겼다면 이제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물론 이성 관계, 연애 고민 상담도 진행합니다. 사연은 200자 원고지 5매 가량(A4 용지 1/2)으로 갈무리해 보내주세요! 보낼 곳 : esc@hani.co.kr

Q1
저는 20대 후반 여자입니다. 1년쯤 전에 사이가 틀어진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그 사람이 왜 떠오르는 걸까요? 그 친구는 만날 때마다 “우리 다시 보지 말자. 그래 너 잘살고”란 말을 웃으면서 반복하던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에게는 안 그러는데, 저한테만 상처 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제 생활 패턴과 그 친구의 생각이 안 맞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더는 못 견디겠더군요. 그래서 친구 말대로 각자 갈 길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끝까지 “그래, 언제든 돌아와” 하면서 앞뒤 다른 말을 하더군요. 그것이 너무 역겨웠어요. 그 친구는 내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나서 절교를 결심했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 더 화가 납니다. 그런데 저는 왜 자꾸 그 친구가 생각나는 걸까요? 그저 관계가 깨져버린 게 안타까워서일까요? 인생에서 더 보지 못할 거 같아서일까요? 아니면 그 친구의 진심을 듣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요? 제가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커서 사과를 듣고 싶은 걸까요? 다시 보지 못해도 괜찮다 싶은 마음도 진심인데, 이상하게 매일매일 생각이 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말이죠. 그 친구 때문에 괴롭습니다. 아마 그 친구는 아무렇지 않겠지만, 저만 이렇게 힘든 거겠죠? 제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주세요. 이렇게 매일 그 친구를 생각하며 시간 쏟는 것도 싫습니다. 이런 저 자신에게 화도 납니다. 과거 생각에 자꾸 얽히는 것도 싫습니다. 도대체 저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H6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은 여자

A1 사람들은 부정적 정서를 일으킨 사건에 대해서 계속 ‘생각’을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한 행동이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생각을 하는 것과 생각에 휩싸이는 것은 사실 완벽히 다릅니다. 당신은 미처 해결하지 못한 부정적 정서를 재발견하고 그것에 대한 생각에 저항했으니 사실 후자라고 볼 수 있죠. 나를 위한 행동이 아니니 괴롭고, 이제 나 자신에게까지 화가 납니다. 끊임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물음표와 반복적인 부정적 대화들은,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이 대처하는 방식이기는 합니다만 뇌와 마음을 다뤄온 수많은 전문가는 이것이 결코 우리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에 생각을 더하면, 결국 부정적인 감정의 수명은 점점 더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왜 이러지? 너무 싫다! 너무 괴롭다!’라고 머릿속 혼잣말을 반복할 때마다, 생각의 오솔길은 점점 넓어져 8차선 도로가 되어 버리지요.

가장 중요한 건 그때 해결하지 못한 나의 분노에 대해 나 스스로 표현하고 나도 몰랐던 나의 ‘관계에서의 대처방식’을 되짚어 보는 일입니다. 전문적인 상담자를 찾아가세요. 그리고 1년 전 그 관계에 대한 내 감정을 설명하세요. 좋은 상담자는 당신의 손을 잡고, 마음속 어두운 부분에 밝은 손전등을 비추는 일을 도울 것입니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이렇게 해보세요. 그 친구에 대한 생각이 올라올 때, 생각의 꼬리를 잡고 계속 생각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잠시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해 보세요. 그리고 코끝으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몸통이 부풀고 꺼지는 그 느낌에 주의를 기울여 보세요. 그렇게 세 번 호흡에만 집중하되, 스스로 이 질문을 하세요. ‘지금 이 순간에 잠시 머물 수 있을까?’ ‘내가 이 경험과 함께 있을 수 있을까?’ 쉽지 않겠지만, 이미 벌어지고 있는 생각에 저항하는 것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음을 기억하세요. 나를 부정적으로 압도하는 특정한 정서를 ‘기꺼이 경험하겠다’고 할 수 있을 때 우리에게는 전에 없던 여유와 편안함이 생겨납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은 점점 찾아오는 빈도수가 낮아질 것입니다. 그것들에 대해 저항하지 마세요. 다만 ‘예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잠시만 내어보세요. 그것을 우리는 담대함이라고 부르고, ‘근본적인 수용’이라고 부릅니다. 진정한 수용은 궁극적으로 자신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지지요. 인생을 낭비하지 않게 됩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 안에 우리의 반응을 선택하는 자유와 힘이 있다.’ 빅터 프랭클의 이야기를 기억하세요. 지금의 이 경험을 통해,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을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그것이 당신의 인생이 당신에게 기대하는 바가 아니겠어요? 작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Q2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 9주차인 30대 중반 남성입니다. 처음에는 재택근무라는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아침 지하철 시간표를 외울 정도로 쫓기듯 살다가, 눈 뜨면 곧바로 출근이고 일 마치는 시간이 곧 귀가가 되는 이 시간이 말이죠.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이내 재택근무 생활에 스며들었습니다. 집에서 일한다고 일 대충 하냐는 말 듣지 않도록 일도 어느 때보다 열심히 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사원들에게 ‘재택근무 팁’을 배포해서, 근무 패턴을 만들어주거나 적정한 휴게 시간을 가지라는 등의 수칙을 알려줬죠. 저는 거기에 따라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를 내려 노트북을 펴며 출근 모드로 전환하고, 점심시간에는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기분을 전환하기도 했어요. 평소 활동적인 편이라 평일∙주말 가릴 것 없이 모임이 많은 저였는데, 가족과 친구들에게 우스개로 “내 안의 ‘집돌이’ 디엔에이(DNA)를 찾았다”고 말할 정도로 저는 이 생활에 잘 적응했어요. 그런데 2주 전, 화상 회의로만 할 수 없는 안건이 있어 아주 오랜만에 출근했습니다. 몇 주 만에 동료를 만나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는데 제가 이렇게 수다스러운 사람인 줄 처음 알았어요. 모처럼 느끼는 생기였죠. 그날 이후, 집에서 일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가라앉았습니다. 오랜만에 출근했던 날 식당이며 카페에서 본 수많은 사람이 떠오르면서 짜증스런 기분도 들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있었는데, 다들 뭐지? 나만 열심히 하고 있었던 거야?’ 싶었던 거죠. 회사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희망퇴직을 받겠다는 말도 돌고 있습니다. 갑작스레 일상을 침범한 이 사태가 너무 갑갑하게 느껴집니다.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도 새삼 불안하게 다가오고요. 이 시간이 끝나면, 제 마음도 제자리를 찾을까요? H6코로나방콕남

A2 재택근무에 제법 적응을 했지만, 동료들을 만나고 온 후 찾아온 우울감과 불안감에 놀라셨군요. 팬데믹 사태는 나와 내 가족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경제적인 불안감 등 실존적 공포도 불러일으켰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 깊은 사회적 고립감도 촉발했습니다. 새로운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이미 친밀한 사람과의 만남조차 두려워하고 자제해야 나를 지킬 수 있다는 것,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인 데다 강력하기까지 한 스트레스 상황이지요. 갑작스러운 재택근무 체제에 돌입했을 때, 당신은 온 신경을 바뀐 상황에 적응하는 데에 썼을 겁니다. 정서적으로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다행스럽게도 그 재택근무 덕분이었을 거예요.

뒤늦게 기분이 가라앉는 것은, 사실 당연합니다. 혼자만의 영역을 갖고 싶은 자율성의 욕구와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친밀함에 대한 욕구는 모든 인간에게 있는 것이니까요. 재택근무를 아무리 잘해냈다고 해도, 동료들과 만나서 소통하고 협업하고 때론 사소한 수다도 떠는 그 친밀함에의 욕구는 평소만큼 채워질 리가 없었을 거예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것이 소중한 것이구나’ 깨달았는데, 자율적이지만 고립감이 느껴지는 재택근무 모드로 돌아가야 하니 기분이 가라앉을 수밖에요. 그러나 이것은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위기를 그럭저럭 잘 버텼던 당신에게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의 문제죠. 사실 재택근무라도 할 수 있고, 월급이 나오는 상황이라는 것은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아직 미래를 대비할 물적, 심적 자원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있는데요. 불안해질 때마다, 일단은 자신이 가진 이 소중한 자원들을 떠올려보세요.

위기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은 결국 둘 중 하나입니다. 팬데믹에 침착하게 잘 대처하는 국가가 있고, 패닉 모드가 되어 더 큰 위기를 겪는 국가가 있듯 개인도 마찬가지지요.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담대하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지금 이 순간 행복해지려고 노력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과 ‘제발 이 사태가 끝나야 하는데 너무 힘들고 다 원망스러워’라고 생각하는 것은 팬데믹 도중에도 그리고 그 사태가 종식된 후에도 완전히 다른 삶의 모습을 만들 것입니다. 위기는 결국 우리에게 어떤 중요한 선택을 하라고 요구합니다. 위기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소중한 것을 깨닫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절망과 불안에 경도되어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모두 흘려보내는 삶을 살 것인가. 우리 손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처하는 방식이 결국 우리의 삶을 결정합니다. 당신의 선택은 어느 쪽입니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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