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전남 구례 섬진강, 루어낚시에 입문한 김선식 기자.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중학교 1학년 때 무턱대고 붕어 낚시 장비를 샀다. 낚시 좀 해본 사람이 보면 ‘이게 뭐지?’ 싶었을 것이다. 계곡에 대낚시 대를 펴놓고 지렁이나 떡밥 미끼를 아무렇게나 묶어 던졌다. 내가 기다린 건 피라미였다. 붕어 채비를 들고 계곡 피라미를 낚으러 간 것이다. 순전히 무지 탓이었다. 피라미는 보통 여울에서 실패처럼 생긴 ‘견지’로 작은 바늘을 풀어 잡는다. 줄과 미끼를 잘 고정하려면 매듭부터 제대로 묶어야 한다. 물고기를 못 낚더라도 고요함과 몰입감에 만족하는 법을 알아야 계속할 수 있다. 그땐 낚시에도 탐구심, 주의력, 평정심이 필요하단 걸 납득하지 못했다. 금세 낚시가 피곤해져 그만두었다.
드론으로 찍은 섬진강의 봄.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낚시라는 취미를 운명처럼 받아들인 이가 있다. 1980년 중학생 시절부터 가짜 미끼를 쓰는 루어낚시 매력에 빠져든 조홍식(53)씨다. 그는 국내에서 처음 루어낚시 이론을 제대로 체계화한 책이라고 평가받는 <루어낚시 100문1000답> 저자다. 그는 자기만의 릴낚싯대를 직접 만들 정도로 지난 40년간 루어낚시의 세계를 파고들었다. 고3 수험생 시절 본 책 <사냥꾼 이야기>에서 몽골의 전설적인 괴어 ‘타이멘’ 이야기를 읽곤 전 세계 괴어를 낚는 꿈을 키웠다. 2006년 9월께 꿈은 현실이 됐다. 그에게 미지의 세계는 동경의 대상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낚시를 직업으로 가질 생각은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직업으로 하면 남(특정 업체)의 낚시를 대신 하는 꼴이 될 것 같았다. 나는 내 낚시만 한다”고 말했다. 취미가 늘 가벼운 건 아니다.
섬진강에서 우연히 황어를 낚았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해양수산부 통계를 보면 국내 낚시 인구가 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해수부 수산자원정책과 관계자는 “2019년 전국 낚시어선 이용 승객은 481만5000명”이라며 “다만 한 승객이 여러 번 탑승한 횟수까지 포함한 수치”라고 밝혔다. 이는 2011년 이용 승객 237만명의 두 배 이상이다.
드론으로 본 섬진강.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금속·플라스틱 소재 가짜 미끼를 쓰는 루어낚시는 단출한 장비와 역동적인 재미 덕에 낚시 입문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달 책 <루어낚시의 맛>을 낸 서성모(50) <낚시춘추> 편집장은 “루어낚시는 지렁이 미끼나 밤낚시를 피할 수 있어 젊은 층과 여성들도 입문하기 쉬운 장르”라며 “전체 낚시에서 그 비중도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섬진강 일대에서 30년간 쏘가리를 낚으며 ‘섬진강 루어클럽’ 동호회 활동 중인 고병기(61)씨는 “루어낚시는 장비가 간단한 편이라 경제적인 데다가 물고기를 찾아 물속을 걸으며 하는 낚시여서 운동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섬진강에서 꺽지 루어낚시하는 모습을 드론으로 촬영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봄을 흘려보내기 아쉬워 나 홀로 여행할 궁리를 했다. ‘루어낚시에 발을 들이는 건 어떨까.’ 강물 속을 이리저리 오가며 릴낚싯대로 낚싯줄 던지는 루어낚시는 여느 낚시보다도 충분한 거리 두기를 권장한다. 그 우아하고도 냉정한 루어낚시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지난 14일 전남 구례 섬진강 한가운데서 완벽한 곡선을 상상하며 첫 루어를 던졌다. 매끈하게 뻗어 나가다 이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초라하게 곤두박질쳤다. 물음표 모양 낚싯바늘은 돌에 걸려 흔적 없이 사라진 채 의문을 남겼다. ‘왜 못 잡아?’ 흐르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고요가 열패감을 누른 그 순간, 보석처럼 영롱한 꺽지(민물고기의 일종)가 얼굴을 드러냈다. 그 눈을 보며 물었다. ‘내가 낚으려 한 게 과연 너뿐이었을까.’
구례(전남)/김선식 기자 k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