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중동 오만 남부 쿠리야무리야제도에서 43㎏짜리 ‘자이언트 트레발리(GT)’를 낚은 조홍식씨. 사진 조홍식 제공
그가 이학박사라고 했을 때 틀림없이 어류 생태학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2005년께 국내에서 민물·바다 루어낚시를 제대로 집대성한 장본인이 아닌가. 조홍식(53) 박사가 쓴 <루어낚시 100문 1000답>은 피라미·갈겨니부터 <노인과바다>에서 노인과 사투를 벌인 새치까지 어종별 루어낚시 채비와 방법, 역사와 생태를 망라한다. 현재 12쇄를 찍었다. 루어낚시란 지렁이 같은 생미끼가 아닌, 금속·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가짜 미끼로 물고기를 잡는 낚시 장르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속 ‘플라이낚시’와는 다른 장르다. 플라이낚시가 줄의 무게와 반동으로 미끼를 던진다면 루어낚시는 루어의 무게를 이용해 던진다. 깔끔하고 단출한 장비 때문에 남녀노소 입문하기 쉬운 낚시로 꼽힌다. <낚시춘추> 서성모(50) 편집장은 “조 박사는 국내에 처음 ‘지깅’(가짜 미끼를 달아서 아래위로 움직이며 하는 낚시질)과 ‘해외 원정 낚시’란 장르를 보급했고 국내에서 낚시책을 가장 많이 썼다”고 말했다. 조 박사가 펴낸 낚시책은 13권이다.
그의 박사 전공은 ‘피복관리학’. 1995년~2006년 전국을 돌며 대학 강사·조교로 의상학을 가르쳤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의상학 세부 전공들이 통폐합되면서 그는 강단을 떠나 본격적으로 낚시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전 세계로 낚시를 다니며 책을 출간하고 칼럼을 썼다. 지난 7일 만난 그는 “전공이 낚시에 도움된 건 유일하게 낚싯줄 영역이다. 줄의 섬유에 관해선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말했다.
“낚시터에서 어항 잘 놓는 비결이 있으신가요?” 낚시 문외한인 기자는 여름철 계곡에서 쉽게 활용할 만한 팁을 물었다. 잘못 짚었다. “직접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는 5살부터 낚시를 했다. 어느 여름날, 부모님을 따라간 인천 작약도 갯골에서 대나무 낚싯대로 망둑어(망둥어)를 낚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낚시의 맛을 알아버린 건 초등학교 4~5학년 때.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는 방학마다 전남 고흥 녹동항 앞바다에서 갯지렁이 미끼로 감성돔을 낚았다.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교수였던 선친이 소록도 봉사 진료 갈 때 따라가서 낚시를 배운 것이다. 조 박사는 “그때부터 (낚시 인생이)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내 손으로 직접 잡은 그 감각에 인이 박였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서울 무교동 한 카페에서 조홍식씨를 만났다. 김선식 기자
그의 주특기인 루어낚시는 책으로 배웠다. 중학교 1학년생일 때, 아버지가 구독한 잡지 <낚시춘추>에서 루어낚시라는 말을 처음 봤다. 그 무렵 루어낚시 개척자인 고 박현재 선생이 쓴 국내 최초 루어낚시 책 <루어낚시 입문>(1978)을 구해 읽었다. 조 박사는 “비싼 장비나 지렁이를 구할 필요가 없는 루어낚시는 신세계였다”고 회상했다. 루어낚시에 매료된 그는 어린 나이인데도 주말이나 방학이면 낚시터를 찾아 시외버스나 기차에 몸을 실었다. 스푼(금속판으로 만든 유선형 가짜 미끼)으로 늘 쏘가리를 노렸지만 보통은 끄리(잉어과 민물고기) 같은 잡어를 낚았다. 조 박사는 “쏘가리 낚시는 미끼를 강바닥 가까이 내려야 하는데 아차 하면 줄이 돌에 걸려 끊어지고, 바닥에 내려가기 전에 감아버리면 쏘가리를 못 낚는다. 초보들은 쏘가리 잡으려다 강 표층부를 헤엄치는 끄리를 잡는다”며 웃었다.
2010년 4월 국내 하천에서 루어낚시를 즐기고 있는 조홍식씨. 사진 조홍식 제공
루어낚시는 과거 유럽에서 호수에 떨어뜨린 티스푼을 물고기가 무는 걸 보고 고안했다는 설이 전해 내려온다. ‘유혹하다’란 뜻의 루어(lure)는 알록달록한 장난감처럼 생겼다. 그 생김새와 기능이 다양하다. ‘하드 베이트’(단단한 루어)는 금속 한장으로 만든 ‘스푼’, 물살에 따라 금속판이 회전하는 ‘스피너’, 작은 물고기 모양 ‘플러그’ 등이 있다. 이중 플러그는 잠행하는 깊이, 부력, 형태·기능에 따라 나뉜다. 형태·기능에 따라선 ‘미노우’(잠수를 위한 입술이 달린 작은 물고기 모형), ‘크랭크 베이트’(기묘한 형태의 미노우), ‘폽퍼’(수면에서 강한 음파와 기포를 만드는 오목한 컵 모양 입이 달린 물고기 모형) 등이 있다. 낚시 어종과 루어에 따라 줄감기 방법도 다르다. ‘소프트 베이트’(부드러운 루어) 중 ‘그럽’(유충 모형)을 ‘지그헤드’(봉돌과 이어진 바늘)에 꿴 ‘지그헤드 리그’로 쏘가리를 낚는 경우만 해도 ‘스위밍’(단순 릴링), ‘호핑’(낚싯대를 튕기듯 올렸다가 릴링), ‘리프트 앤 폴’(연속 릴링 등으로 루어를 들어 올렸다가 바위 주변에 떨어뜨림) 방법 등이 있다. 루어낚시인은 물고기를 꾀어내려고 같은 현장에서도 여러 미끼와 다채로운 줄감기 방법을 활용한다. 루어낚시를 ‘게임피싱’이라 부르는 이유다.
알록달록한 루어(가짜 미끼)들은 장난감처럼 생겼다. 사진 조홍식 제공
조 박사는 고등학교 1학년생일 때부터 낚시 동호회를 따라다녔다. 1974년께 결성한 국내 첫 루어낚시 전문 낚시회 ‘서울릴낚시회’였다. “한 달에 최소한 두 번, 밤 10시 넘어서 대한극장 앞에서 금강, 경호강 등으로 가는 낚시회 버스에 올라탔다. 고등학생은 나뿐이어서 회비 4000~5000원만 내고 ‘깍두기’로 동행했다.” 거기서 국내 루어낚시 선구자 고 박현재 선생을 만났다. “박 선생은 주한미군이 한강에서 루어낚시를 하는 걸 보고 따라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조 박사는 회상했다.
국내 루어낚시는 1960년대부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상 어종이 쏘가리, 꺽지, 끄리 정도였다. 1960~70년대 미국에서 산업용으로 들여온 무지개송어와 배스가 1980년대부터 국내 하천에 퍼지기 시작했다. 조 박사는 “무지개송어 낚시로 국내 루어낚시 폭이 넓어졌고, 이후 1990년대 배스 루어낚시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설명했다.
2010년 9월 국내 바다에서 부시리를 낚아 올린 모습. 사진 조홍식 제공
고3 때 또 한 권의 책이 조 박사의 마음을 흔들었다. 친구가 건넨 <사냥꾼 이야기>였다. 책에는 구한말 명포수, 아프리카와 만주를 누빈 사냥꾼들이 등장한다. 그의 눈을 사로잡은 건 물가에 나온 동물을 덮쳐 잡아먹는다는 몽골의 전설적인 괴어 ‘타이멘’(Taimen·연어과 민물고기)이었다. “당시 이미 잡지를 통해 타이멘의 존재를 알았는데, 언젠가 꼭 낚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의 강렬한 열망은 해외로 눈을 돌리게 했다. 그의 나이 28살 때다. 1995년 8월 스웨덴에서 낚시를 한 이후로 그는 팔라우, 오만, 몽골, 인도네시아 서뉴기니, 오키나와 등으로 해외 원정 낚시를 다녔다. 그의 주 대상 어종은 힘이 상상을 초월하는 ‘자이언트 트레발리(GT·이하 ‘지티’), 가장 좋아하는 낚시는 ‘정글피싱’이다. “크게는 40㎏ 이상 나가는 대어 지티 낚시는 열대 바다 뙤약볕 아래서 3~5일 쉬지 않고 매일 300~500번 낚싯대 던지기를 반복한다. 정글 속 가는 강줄기를 거슬러 오르며 잔 손맛을 보는 정글피싱은 그 섬세함에 참맛이 있다.” 그는 “불빛 하나 없는 새까만 정글에서 달빛에 의지해 물고기를 낚는 것도 정글피싱의 멋”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정글피싱을 즐기고 있는 조홍식씨. 사진 조홍식 제공
해외 원정 낚시를 즐기는 낚시인들은 “낚시로 아파트 한두 채 값은 날렸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날리는 건 돈만이 아니다. 시간과 일도 날린다. 괴어 낚시터는 오지다. 해외 원정 낚시는 모험을 감행할 용기도 필요하다. 비행기를 놓치고, 자동차가 고장 나거나 진창에 빠지고, 가이드가 오지 않고, 계약에 없는 팁을 요구하는 가이드를 만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고3 때 다짐한 몽골 ‘타이멘’ 낚시를 떠난 건 2006년 9월이었다.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1박2일 달려 출룻(Chuluut) 강에 도착했다. 꿈은 현실이 됐지만, 닥친 위험은 공포였다. 도시로 돌아가는 길, 초원 한가운데서 한동안 발이 묶인 것이다. 마을에 페스트 환자가 나와 통행이 금지된 게 이유였다. 결국 경비책임자에게 사정해서 겨우 빠져나왔다. 이듬해 6월 다시 출룻 강을 찾았다. 낚시 3일차 경찰이 낚시용품을 압수하고 경찰서 출두명령을 내렸다. 전년 가을, 일본 낚시인들이 타이멘 낚시를 하다가 현지 유목민을 폭행한 사건 때문이었다. 경찰서까지 차로 4시간 달려 서장 면담을 하고서야 풀려났다. 조 박사는 “어려움은 있었지만, 10대에 꿈꾸던 일을 몽골에 가서 실제로 해낸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2007년 6월 몽골 출룻강에선 꿈에 그리던 타이멘을 낚아 올렸다. 사진 조홍식 제공
그의 낚시 모험은 2014년께 인도네시아령 서뉴기니(뉴기니섬 서부)에서도 이어졌는데, 강 하구에서 배가 뒤집혀 죽을 고비를 넘겼다. “낚시 인생 가장 힘든 모험”을 했지만, 마지막 날 목표로 삼은 20㎏짜리 ‘파푸안 블랙 스내퍼’를 잡아서 뿌듯했다고 한다. ‘파푸안 블랙 스내퍼’는 민물고기 중 동급 최강으로 알려진 물고기다. 그는 그 이듬해도 그 고생을 잊고 또 서뉴기니로 낚시를 갔다.
조 박사는 집에서도 ‘풀세팅’ 한 낚싯대를 만진다. “아무리 악기 연주를 잘하는 이도 한 달만 손 놓으면 무뎌진다. 낚싯대를 만지면서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는 1996년부터 자신의 낚싯대를 직접 만들어 쓴다. 현재 사용하는 수제 낚싯대만 수십여대라고 한다. 그는 “특정한 목적에 맞춘 낚싯대가 필요해 직접 제작했는데, 하다 보니 낚시와는 별개로 또 다른 크래프트 취미가 됐다”고 말했다.
2014년 9월 인도네시아령 서뉴기니 강에서 낚은 20㎏ 파푸안 블랙 스내퍼. 사진 조홍식 제공
중학교 1학년생일 때부터 루어낚시 취미생활 40년, 그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그곳에 존재하는 특별한 물고기,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은 학창시절 그대로”라며 “항상 머릿속으로는 다양한 포인트에서 다양한 어종을 낚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그처럼 좋아하는 일을 악착같이 파고들 수 있을까. 그의 말은 의외로 단순했다. “포기할 건 포기하라. ‘나중에 언젠간 해봐야지’ 생각 말고 지금 당장 하라.”
김선식 기자 k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