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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45㎞ 대청호 벚꽃길, 올봄은 ‘그냥 지나가유’

등록 2020-04-09 09:39수정 2020-04-09 12:02

대전~보은~청주 45㎞ ‘벚꽃 드라이브’
국내 최장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 지나
소금 나르던 꼬부랑 고갯길과 호반길
드라이브만으로 한 시간 넘게 벚꽃 구경
올해는 좌우지간 그냥 지나가는 거로
지난 3일 문의 문화재 단지(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문산리) 앞 대청호반로. 김선식 기자
지난 3일 문의 문화재 단지(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문산리) 앞 대청호반로. 김선식 기자

친근한 사투리 때문에 ‘충청도스럽다’고 생각했다. ‘이왕 오신 거 그냥 지나가유~’ 대전광역시 동구 대청동 벚꽃길에 나부끼는 현수막이었다. 오라고 권유하지도, 오지 말라고 만류하지도 않는다. 그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지나가기만 바랄 뿐. 체념을 초연함으로 승화한 어법이랄까.

교통의 요지 대전에 가장 긴 벚꽃길(26.6㎞)이 있다. 대전에서 출발해 충북 보은군 회인면에서 끝난다. 이름을 종점에서 따와 ‘회인선 벚꽃길’이라 부른 이유다. 지난해 11월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로 개명했다. 대전 기준으론 동구 오동에서 길이 끝나기 때문이다.(오동에서 보은군으로 길이 이어진다.) 이 또한 ‘충청도스럽다’고 하면 무리일까. 무한정 내주기만 할 것 같아도 찾아와야 할 땐 찾아온다.

최근 대전광역시 동구청은 ‘차에서 내리지 말고 드라이브 스루로 벚꽃길을 즐기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지난해 처음 열어 성황을 이룬 ‘대청호 벚꽃축제’는 올해 취소했다. 주차장도 폐쇄했다. 모두 코로나 19 감염 위험 때문이다.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에서 바라본 대청호. 김선식 기자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에서 바라본 대청호. 김선식 기자

지난 2일 차창을 활짝 열고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을 지나갔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알싸할 만큼 달콤한 꽃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이왕 간 거 널리 알려진 길만 지나가긴 아쉬웠다. 옆길로 빠져 드라이브를 좀 더 길게 즐겼다.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을 지나 염티재~대청댐 전망대를 잇는 총 45㎞가량 드라이브 코스도 마저 돌았다. 대청호를 끼고 대전, 충북 보은군, 청주시 경계를 지나는 길이다. 차를 타고 지나가기만 해도 한 시간 넘게 끊임없이 펼쳐지는 벚꽃길을 만난다.

안타깝게도 올봄은 그냥 지나가야 할 때다. 차를 타고 지나가거나, 올 한해는 봄꽃 구경을 참고 지나가거나. 어느 쪽이든 갈 만한 드라이브 여행 코스로 내년 여행지 목록에 담아 두시라. 국립수목원은 2013년 3월 전국 벚꽃길 20곳을 뽑으며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을 ‘대청호반을 따라 이어진 환상의 코스’라 이름 붙였다.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 주변 도로.(대전 동구 신상동) 김선식 기자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 주변 도로.(대전 동구 신상동) 김선식 기자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은 1960년대 조성한 왕벚나무 가로수 길이다. 왕벚나무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성미 급한 나무다. 아름드리 줄기에서도 벚꽃 3~6개가 무리 지어 불쑥불쑥 입을 연다. 벚꽃길 출발점은 대전광역시 동구 신상교차로다. 1차선 지방도(571번)를 따라 북동쪽 보은군 방향으로 달린다. 길가에 키 15m에 달하는 왕벚나무가 고개를 숙인 채 도열해 있다. 도로 천장까지 벚꽃이다. 홀로 차를 타고 ‘벚꽃 터널’을 지나면 꽃마차 타고 금의환향하는 기분이 드는 이유다.

차 안에서 보는 ‘벚꽃 터널’은 그만의 매력이 있다. 유유히 뻗어가는 도로, 양떼구름처럼 포슬포슬한 벚꽃 무더기, 뭐든 둥글게 감싸는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매한가지일 것 같은 벚꽃길도 저마다 제멋을 뽐낸다. 대전에서 핑크빛 아치를 그리던 벚나무들이 보은군 들머리에선 반대쪽 길가 상록수 군락지마저 침범한다. 짙은 녹음을 뒤덮은 연분홍 벚꽃이 눈부시다. 빛이 어둠을 이기는 한때를 보는 것처럼 극명한 색채 대비가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낳는다. 멀리 대청호는 아기자기하다가도 장엄하다. 대전에서 왕벚나무가 호수 위로 꽃가지를 드리운 풍경을 보면 호수의 물보라가 가깝게 느껴지고, 보은군 회남대교 건너 깊이를 종잡을 수 없는 호수가 끝없이 뻗어 나간 풍경은 아득하다. 회남대교 주변은 과거 어부동이라 불렸다. 대청호 건설공사(1975~1980년) 전까지 어부동(법수리, 사음리 일대)엔 어부들이 모여 살았다고 전해진다.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 끝 무렵 길을 틀었다. 남대문교를 건너기 전 왼쪽 509번 지방도를 탔다. ‘남쪽에 있는 청와대’라고 불리는 역대 대통령 전용 별장인 청남대 방향이다.

대전과 충북 보은군 경계 부근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 김선식 기자
대전과 충북 보은군 경계 부근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 김선식 기자

꼬부랑 고갯길을 만났다. 충북 보은과 청주시 경계에 있는 해발 290m 고개, 염티재다. 염티재 너머 염티리(청주시 상당구 문의면)는 옛 소금 운반 교대 장소로 전해진다. 전남 신안에서 서해와 금강을 거쳐 온 소금을 보은군으로 가져간 기점이 염티리였단 것이다. 염티재 언덕 즈음에선 다들 차 속도를 늦춘다. 언덕 아래 풍경이 궁금해서다. 산골짜기 꼬부랑길 따라 벚꽃 무더기가 빛 받은 소금처럼 반짝인다. 염티재는 이미 지나온 벚꽃길만큼 꽃이 만개하지 않았는데도 가히 이번 벚꽃길의 절정이라 할 만했다. ‘벚꽃 터널’ 안이 몽환적일 만큼 화려했다면 터널 밖에서 바라본 풍경은 소박하게 아름다웠다.

염티재 오르는 길.(보은군 회남면 남대문리)
염티재 오르는 길.(보은군 회남면 남대문리)

아무도 없는 염티재에 차를 잠시 세우고 벚나무 아래에 섰다. 드론이 나는 것 같은 소음이 들렸다. 벚나무에 몰려든 벌떼들이 윙윙거리는 소리였다. 벚꽃 향기가 끈적끈적하게 느껴졌다. 벌들은 풍경 따위는 아랑곳없이 제 할 일만 했다. 쉴 새 없이 이 꽃 저 꽃 옮겨 다니며 꿀과 꽃가루를 모으고 있는 것 같았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찰리 채플린의 말이 떠올랐다. 인생 대신 꽃구경을 넣으면 코로나 시대 꽃구경 조언으로도 손색없겠다고 생각했다. 잡생각을 물리치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벚꽃에 매달린 벌. 김선식 기자
벚꽃에 매달린 벌. 김선식 기자

벚꽃길이 드문드문 이어졌다. 509번 지방도에서 대청호반로로 길을 옮기면 다시 화려한 벚꽃길이다. 말 그대로 ‘호반 벚꽃길’, 왼쪽에 호수를 끼고 벚꽃길을 달렸다. 대전, 청주, 옥천, 보은에 걸쳐 있는 대청호는 호수 길이 80㎞, 저수 면적 72.8㎢로 국내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다.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을 지나 대청호 전망대까지 약 45㎞를 지나왔다. 대청호 길이 절반 넘게 대청호 둘레 벚꽃길을 달린 셈이다. 대청호 전망대에서 금강 따라 신탄진 나들목(IC)으로 가는 길은 덤이다. 그냥 지나가기만 해도 운치 있다.

대전·청주·보은(충북)/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에 걸린 현수막. 김선식 기자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에 걸린 현수막. 김선식 기자

대청호 벚꽃길 가는 길

대전광역시 동구 신상동 신상교차로에서 571번 지방도를 탄다. 주촌동, 오동을 지나 충북 보은군으로 들어간다. 회남대교를 건너 남대문교 직전 청남대, 구룡산 월리사 방향으로 좌회전해 509번 지방도로 빠진다. 염티재를 넘어 괴곡삼거리에서 청남대 반대방향, 문의 나들목(IC) 방향으로 간다. 문의사거리에서 대청댐, 신탄진 방향으로 좌회전해 대청호반로를 타고 대청댐 전망대 방향으로 간다. 다른 지역에서 올 땐 대전 나들목으로 들어와 벚꽃길 드라이브를 하고 신탄진 나들목으로 나가면 된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드라이브 전에 걷기 좋은 길이 있다.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 출발점인 신상교차로 근처다. 대청호반길 5-1코스인 흥진마을 ‘갈대밭 추억길’이다. 왼쪽으로 호수를 바라보며 한바퀴 도는 약 3㎞ 평평한 흙길이다. 다 걷는데 1시간이면 충분하다. 주차는 동구 신상동 362-4번지 근처 폐도로에 할 수 있다.

염티재를 오르는 자동차. 김선식 기자
염티재를 오르는 자동차. 김선식 기자

대전·청주·보은(충북)/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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