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소재를 활용한 토즈의 감각적인 트렌치코트 스타일. 사진 토즈 제공
1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한결같이 우리의 사랑을 받아 온 트렌치코트. 시대와 트렌드,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불멸의 패션 아이템이 바로 트렌치코트다. 이제 트렌치코트의 계절이 돌아왔다. 화사한 봄꽃들 사이로 치렁치렁 늘어진 트렌치코트를 입은 이들이 눈에 띈다. 올해 트렌치코트의 트렌드는 무엇일까?
옷 입기에 공식은 없다. 개인의 개성과 취향에 트렌드라는 조미료를 살짝 더해주면 된다. 트렌드를 어느 정도 수용했느냐에 따라 매년 스타일이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취향이 크게 변하지 않는 이상 자신이 추구하는 스타일을 고수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특정 계절이 돌아오면 자동으로 떠오르고, 반사적으로 손이 가고, 한 번쯤은 입고 싶은 아이템. 바로 트렌치코트다. 봄과 가을, 간절기에 가장 입기 적합한 아우터인 트렌치코트는 패피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가장 많이 언급하는 패션 아이템이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흥미진진한 트렌치코트의 역사와 전통, 수십년간 열렬하게 사랑한 전 세계 팬들 때문이다.
디테일을 배제한 간결한 디자인의 로우 클래식 트렌치코트. 사진 로우 클래식 제공
전투가 만든 패션
트렌치코트는 유래부터 범상치 않다. 우아한 부티크가 아닌 전쟁터에서 탄생한 패션이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탄생한 코트라니.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트렌치코트라는 명칭은 군인들이 몸을 피하는 ‘참호’(trench)에서 유래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연합군은 한겨울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야 했다. 1914년 영국인 토머스 버버리는 영국 국방부의 정식 승인을 받고 트렌치코트를 개발했다. 당시 추위와 변화무쌍한 날씨를 견디기 위해서는 보온성과 내구성, 방수성을 갖춘 의복이 필요했다. 트렌치코트가 개버딘 소재로 만들어진 이유다. 날실의 밀도가 조밀하고 탄탄한 능직 소재인 개버딘은 뛰어난 방한·방수 기능을 갖춰 군복으로 적합했다.
가죽 소재를 활용한 토즈의 감각적인 트렌치코트 스타일. 사진 토즈 제공
트렌치코트의 디자인적인 특징은 실용성을 기반으로 한다. 오른쪽 가슴에 부착한 ‘건 플랩’(gun flap)은 비바람을 막을 수 있고, 장총을 쏠 때 옷이 마모되는 것을 방지한다. 바람이 스며드는 것도 막아준다. 손목 부분에는 ‘커프스 플랩’이라고도 부르는 스트랩을 달아 조일 수 있게 디자인했다. 작업할 때 걷어붙인 소매를 고정하기 위해서다. 쌍안경이나 물통 등을 쉽게 매달기 위해 어깨에 견장을 더했다. 어깨와 소매의 경계선이 없는 래글런 스타일로 소매를 제작했다. 활동하기 훨씬 편하다.
트렌치코트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승전을 위한 고육지책이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귀향한 군인들은 실용성과 스타일 모두 만족스러운 트렌치코트를 일상에서 즐겨 입었다. 내구성이 훌륭한 개버딘 소재의 트렌치코트는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대를 이어 입는 아이템이 되고 말았다. 지금처럼 여성도 즐겨 입는 패션 아이템이 된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다.
깅엄 체크 프린트로 경쾌함을 살린 마이클 코어스 컬렉션. 사진 마이클 코어스 제공
트렌치코트 인기의 조연
트렌치코트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데는 무비 스타들의 역할이 컸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영화배우들이 앞다퉈 트렌치코트를 입고 스크린에 등장한 것이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빗속을 뛰어다녔고, 그보다 앞선 영화 <외교 문제>에서는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트렌치코트를 입고 관능적인 모습을 뽐냈다.
영화 <애수>의 로버트 테일러,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 <영웅본색>의 주윤발 등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화면을 아름답게 수놓았는데, 그 모습은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으며 남성성의 상징으로도 비췄다.
100년 넘게 꾸준히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이유에는 실용성과 트렌치코트 특유의 멋스러움이 있다. 편안한 청바지에도, 각진 슈트에도, 심지어 스웨터 셔츠와 레깅스에도 잘 어울린다. 이뿐만 아니다. 성별은 물론이고 나이도 제한이 없다. 젊은 세대는 그들대로, 인생의 황혼기인 세대는 그들대로 트렌치코트로 멋을 낸다. 이런 이유로 패션 브랜드들은 매년 신제품 트렌치코트를 출시한다. 시즌 트렌드를 반영해 소재와 실루엣, 디테일에 약간의 차이만 있다. 외형에 큰 변화는 없다.
길고 넉넉한 실루엣의 트렌치코트를 입은 알렉산더 왕 컬렉션. 사진 알렉산더 왕 제공
올봄 트렌치코트 유행은?
매년 입는 트렌치코트를 올봄 조금 색다르고, 트렌디하게 입고 싶다면 어떤 스타일을 고르면 좋을까? 이른 봄에는 아침과 낮, 저녁나절의 기온 차가 크다. 이럴 때 입을 만한 트렌치코트는 가죽 소재로 만든 것이다. 가을·겨울용 소재였던 가죽이 올봄 변신하고 있다. 얇고 광택을 더한 의류가 출시되고 있다. 이런 트렌드를 트렌치코트에도 적용한 제품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가죽 소재의 트렌치코트는 초겨울까지 입을 수 있다. 그러니 올봄 색다른 디자인을 찾고 있다면 가죽 트렌치코트가 제격이다.
가죽 소재와 체크 패턴을 혼합한 마이클 코어스 컬렉션. 사진 마이클 코어스 제공
가장 대중적인 트렌치코트인 베이지 계열의 코트를 이미 갖고 있다면 패턴이 들어간 제품을 눈여겨보는 것도 좋다. 마이클 코어스는 이번 시즌 다양한 체크 패턴의 트렌치코트를 선보였다. 브라운 컬러는 중후하고 클래식한 느낌을, 블루 톤의 체크는 경쾌하고 캐주얼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좋다. 트렌치코트를 우아하게 연출하고 싶다면 지방시나 끌로에의 런웨이를 참고해도 좋겠다. 품이 넉넉한 사이즈의 트렌치코트를 아우터가 아닌 원피스처럼 연출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코트에 부착된 스트랩이나 얇은 가죽 벨트로 허리 라인을 강조만 해도 우아함이 배가 된다.
트렌치코트의 변주는 무궁무진하다. 어떤 방식으로 스타일링을 하느냐에 따라 팔색조 같은 매력을 선보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트렌치코트의 가장 큰 매력이다. 트렌드와 상관없이 인기인 불멸의 아이템 트렌치코트와 함께 화창한 봄 날씨를 만끽해보는 것은 어떨까.
오피스 룩에 잘 어울리는 심플한 트렌치코트를 선보인 브룩스 브라더스. 사진 브룩스 브라더스 제공
신경미(패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