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8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마음서점에서 고운별 강사가 수지 에니어그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마음서점 제공
‘뇌 과학’은 최근 빠르게 발전 중이다. 뇌를 완벽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 인간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멈출까? 아닐 것이다. 자기 탐색은 인간의 멈출 수 없는 활동 중 하나다. 탐색의 도구는 여럿이다. 이 도구들을 기자가 직접 써봤다. 고개를 갸웃거릴 때도, 끄덕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나는 정말 나를 잘 몰랐구나. 나를 더 잘 돌봐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말이다. 단, 주의하자. 기자가 써 본 도구들은 자기 탐색의 보조 도구라는 걸!
‘나는 어떤 사람일까?’ 자신이 궁금한 사람이 찾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앞날이 궁금한 사람은 명리학이나 점성술 전문가를 찾기도 한다. 자신의 과거나 현재, 미래의 ‘일’이나 ‘사건’이 아닌 ‘자신’이 궁금한 사람은 성격이나 기질을 파악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가장 대중화했고, 접근성이 높은 방법으로는 엠비티아이(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와 에니어그램이 있다. 최근에는 그림을 그려 자신의 성격과 기질을 파악하는 방법도 많이 찾는다. 세 가지 방법 가운데 에니어그램과 그림 심리검사를 기자가 직접 체험했다.
먼저 밝히자면, 기자는 ‘성격검사’에 아주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혈액형별 성격’과 다를 바 없다고 여겼다. 엠비티아이나 에니어그램은 터무니없는 라벨링(이름 붙이기) 놀이었다. 자신을 이해하는 도구라는 데는 도통 동의할 수 없었다. 의심해야 제품(기사)을 만들 수 있는 게 직업(기자)인 사람이어서 인걸까? 의구심을 잔뜩 품은 채 여러 검사를 해봤다.
에니어그램(Enneagram)은 신비로운 역사를 지녔다. 그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하다. 기원전 2500년께 중동 일대에서 ‘고대의 지혜’로 구전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서구에 처음 소개되었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대중화하기 시작했다. 에니어그램은 각자의 ‘본질’을 찾는 과정이다. 그 본질은 9가지로 나뉜다. 기자는 에니어그램 가운데서도 ‘수지 에니어그램’을 해봤다. 수지 에니어그램은 여성운동가인 조현순 한국여성시이오(CEO)센터 대표가 고안했다. 기자가 참여한 수지 에니어그램 프로그램을 이끈 고운별 강사는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 청소년과 여성들이 체크리스트식 에니어그램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든 게 수지 에니어그램”이라고 설명했다.
프로그램은 180개의 카드 가운데 ‘나의 모습’이나 ‘내가 바라는 모습’이 적힌 카드를 고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덥석덥석 골랐더니 거의 60장을 골랐다. 고운별 수지 에니어그램 강사는 “카드를 많이 고른 건, 그만큼 심리적인 에너지가 강한 편인 걸 드러낸다”라고 말했다. 프로그램은 장장 6시간 진행됐다. 9가지 유형의 본질의 특징을 자세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가장 고개를 많이 끄덕인 건 ‘각 유형의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대처’였다. 무엇보다 나와 다른 본질을 가진 이의 행동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이다.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렇게 행동할까?’ 하는 부분이 조금 풀렸다고 할까! 기자의 본질은 ‘1번 유형’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운별 강사는 “1번 본질을 지닌 사람들을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라고 해요. 있는 길이 아니라 없는 길까지 만들어 가는 거죠”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카드로 본 지금 나는 본질의 힘이 많이 떨어진 상태로 보인다고 고 강사는 덧붙였다. 기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고 강사는 이렇게 다독인다. “항상 에너지가 가득 찰 수 없잖아요. 이럴 때가 있는 거예요.” 그제야 마음이 좀 편해졌다.
연남동 심리 카페의 도인종 대표가 그림 심리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연남동 심리 카페 제공
‘그림 심리검사’도 해봤다. 집(House), 나무(Tree), 사람(Person)을 그려 ‘에이치티피(HTP) 그림검사’라고 부른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연남동 심리카페’에서 도인종 대표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 안내에 따라 집, 나무, 사람에 더해 가족과 함께 무엇인가를 하는 그림을 그렸다. 바로 그림에 대한 해석이 이어질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다. 그림 카드로 간략하게 엠비티아이 성격 유형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뒤 몇 가지 질문과 답, 대화가 이어졌다. 도인종 대표는 “본인의 ‘성격’은 E○○○ 유형인데, 본래의 ‘기질’은 I○○○ 유형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라며 입을 뗐다. 그는 “엠비티아이는 ‘자신이 바라는 나’를 선택할 수 있기에 이런 불일치가 있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E는 ‘외향형’, I는 ‘내향형’이다. 분명히 ‘외향형’일 것으로 생각했던 기자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자 도 대표는 설명을 이어갔다. “본래의, 타고난 부분들이 저마다 있죠. 이렇게 둘이 다르게 나타날 때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필요 때문에 키워진 ‘성격’이 드러난 것일 수 있어요.”
그림 심리검사지만, ‘그림’만 살피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도인종 대표는 “그림만 보고 결론을 내지 않는다. 참여자와 대화를 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대화하면서 하는 ‘답변’도 중요한 단서 중에 하나다. 중복된 단어, 표현 등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 상황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이걸 종합해 중복된 내용을 도출하고, 어떤 경향이나 상태를 파악한다”라고 말했다.
그림 심리검사에서 이정연 기자가 그린 사람과 나무. 사진 이정연 기자
기자는 수지 에니어그램과 그림 심리검사 외에도 엠비티아이 유형검사도 했다. 3가지 모두 ‘같은’ 결론과 해석이 나오지 않았다. 성격검사는 ‘혈액검사’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엠비티아이나 에니어그램 검사를 할 때엔 나의 상태를 정직하게 답할 수도 있지만, ‘내가 되고자 하는 나’를 그리며 답할 수도 있다. ‘자기 보고식 검사’의 한계다. 그래서 이 3가지 검사는 엉터리라고 봐야 할까? 직접 경험한 바로는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양한 질문에 맞닥뜨려보는 기회였다. 그 기회가 ‘나를 아는 길’에 이르게 한다. 내가 어떻게 주변을 인식하고, 선택을 내리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다른 사람의 선택과 행동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진다. 변상우 서울예대 교수(예술창작기초학부·학생상담센터장)는 당부한다. “성격유형검사는 응답으로 나온 결과보다는 각 도구가 제시하는 문항을 통해 자신에게 질문하며 관심을 가져보는 시간을 갖는 것, 그 과정이 사실상 가장 중요하다. ‘나’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탐색은 늘 옳다. 다만, 이 도구들을 자기 탐색의 보조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SC] 편안한 마음으로 나를 알아가요
성격검사나 심리검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반드시 본격적인 심리상담센터를 가야 하는 건 아니다. 최근에는 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들 검사를 진행할 수 있는 장소들이 늘고 있다. 이 가운데 기자가 수지 에니어그램과 그림 심리검사를 받을 수 있는 장소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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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서점 일상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가벼운 심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다. 광고 등 상업 사진작가로 경력을 쌓다 공허함과 우울감을 느끼던 정혜란 대표는 심리상담의 도움을 받고 운영하던 사진관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상담심리를 공부한 뒤 마음서점을 차렸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문 연 지 2년째인 마음서점에서는 수지 에니어그램, 마음 카드 워크숍 등이 열린다. 마음 카드 워크숍에서는 감정을 적은 다양한 ‘카드’로 내 마음을 알아가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정 대표는 “연인이나 가족이 함께 마음 카드 워크숍을 하면 상대방에게 예상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는 걸 알고 놀란다. 이런 마음을 꺼내놓기 어려운데, 카드가 좋은 도구가 된다”라고 말했다. 마음서점 인스타그램(@maum_official_)에서 진행 프로그램 등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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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 심리 카페 그림 심리검사를 해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심리상담소’나 ‘심리치료센터’가 아니라는 걸 도인종 대표는 강조한다. “섬세한 성격과 관련한 글을 쓰는 작가이면서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이다.” 카페 안내 글이다. ‘나들이 심리성격, 커플 심리성격, 관계 심리성격’ 등의 ‘메뉴’가 있는 카페다. 모든 검사는 그림검사와 함께 진행한다. 도인종 대표는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1시간 이상 상담을 받고 간다. 그림검사만 딱 하고 마는 검사가 아니다. 내가 던지는 질문에 방문자가 답을 하고,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1시간을 훌쩍 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방문 최소 하루 전 예약을 해야 한다. 당일 예약은 할 수 없다. 예약은 네이버 플랫폼으로 할 수 있다.
이정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