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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개 무시’ 당할까 걱정했는데, 힐링만 했네요

등록 2019-07-31 20:32수정 2019-07-31 20:41

커버스토리┃노견·노묘

유기동물 쉼터 겸 애견펜션 ‘허그안 리트릿’
12살 넘는 수십마리의 노견 사는 곳
늙은 반려동물 입양 사연 눈물겨워
펜션 찾은 이들의 개와 즐겁게 어울리는 풍경
사람도 마음의 평화를 얻게 돼
러프 콜리 ‘이사벨’과 ‘고요’ 사이에서 푸들 ‘물결이’를 안고 있는 이정아씨.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제공
러프 콜리 ‘이사벨’과 ‘고요’ 사이에서 푸들 ‘물결이’를 안고 있는 이정아씨.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제공
반려견과 함께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애견 동반 숙소가 분주한 요즘이다. 개 전용 수영장이 딸린 풀 빌라도 국내 수십 곳에 달한다.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소나무숲에 둘러싸인 펜션 ‘허그안 리트릿(이하 허그안)’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조금 특별한 게 있다면 이곳은 유기동물 쉼터와 입양센터를 겸한다. 지난달 26일. 이정아 대표(49)와 그가 품어 안은 개들을 만나러 청도로 향했다. 인도와 미국에서 요가 수행자로 살다 한국에 들어와 요가 스튜디오를 열었던 이정아씨. 그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요가인 ‘도가’(doga)를 국내에 소개한 이다. 7년 전, 사람과 동물이 자연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생활을 택했다.

‘냥 집사’ 12년 차, 개와 교감하는 법은 까마득하게 잊었다. 맞은편에서 개와 반려인이 걸어오면 그들의 산책에 방해되지 않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고 은은한 미소(속으로 불상을 떠올린다.)를 지으며 스쳐 보낼 뿐. 주변에 아는 개도 없어서 유기와 학대를 겪은 개들과는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개들의 의사소통 신호를 설명하는 책 <카밍 시그널>을 펼쳤다. 낯선 사람이 개 위로 허리를 숙이는 행동은 개를 놀라게 할 수 있단다. 개가 하품을 하거나 코를 핥는 동작은 긴장이나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한다. 허그안에는 산신령 같은 눈빛을 가진 노견이 많다. 그들에게 ‘개 무시’를 당하지는 않을까?

펜션에 도착하고 생전 겪은 바 없는 환대를 받았다. 두툼한 앞발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는 큰 개들, 여기 좀 보라고 깡충깡충 뛰는 작은 개들과 인사하느라 두 손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평소 은은한 미소를 코치 하던 마음속 불상은 손이 천개인 천수관음으로 바뀌었다.) ‘누구래? 무슨 일이래?’ 하면서 호기심에 몰려온 개 열 몇 마리에게 둘러싸여 있자니,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한 스타라도 되는 양 으쓱해졌다.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수영장이 있는 데크를 지나 2층 카페로 올라갔다. 개들의 환영을 받으니 내가 무척 좋은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이정아씨에게 안긴 개는 다리가 하나인 ‘미남이’다.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제공
이정아씨에게 안긴 개는 다리가 하나인 ‘미남이’다.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제공
“우리 아이들(개들)이 에너지가 안정되고 사랑 표현을 스스럼없이 하는 이유가, 이곳이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 그래요. 사람들이 쉬러 오는 휴양지와 유기동물 쉘터(임시 집)가 결합한 형태죠. 전 세계에서 드문 케이스일 거예요. 유기동물은 사람과 자주 만나야 보호와 구조, 입양의 순환이 이루어져요. 이런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제 오랜 꿈이었어요.” 이정아씨의 말이다.

커피가 담긴 유리잔에 물방울이 금방 맺힐 정도로 습한 날씨. 시원한 바닥에 누워 꾸벅꾸벅 조는 13살 러프 콜리(개 품종 중 하나) ‘고요’와 10살 ‘이사벨’을 따라 카페 바닥에 주저앉았다. 심장사상충, 심부전, 진드기, 빈혈 등 온갖 질병이 기록된 늙고 지친 한 유기견의 입양 공고를 유기동물 입양 앱 ‘포인핸드’에서 보고 이씨는 바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고요’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웬걸. 보호소에서 나온 고요는 미소 천사 꽃할배라 불릴 정도로 표정이 바뀌었다. 성대 수술을 당하고 새끼를 낳다가 나이가 들자 사람 허리 깊이의 농수로에 버려졌던 개는 ‘이사벨’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개들은 주인이 바뀌면 새 이름이 생긴다. 이씨는 늙고 병들어 입양이 쉽지 않은 대형견과 여생을 함께할 결심으로 마지막 이름을 지어주었다.

래브라도 리트리버 ‘탐’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제공
래브라도 리트리버 ‘탐’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제공
앞발에 철심을 박는 큰 수술을 마친 ‘새벽이’는 새해 벽두의 줄임말이다. 올해 1월1일 펜션 앞에 버려졌던 새벽이는 근심 걱정을 모른 채 해맑은 표정이었다. 사람이 놓은 올무에 다리 세 개를 잃은 ‘미남이’는 한 다리로도 저 가고 싶은 자리로 열심히 몸을 옮긴다. 개 40여마리의 이름마다 다 옮기지 못할 사연이 있다.

허그안의 개들은 숙박객과 그들의 반려견과 어울려 지낸다. 손님들이 자신의 개와 오붓한 휴가를 보내고 싶어 하는 게 아닌지 물었다. “제가 펜션 예약 전화 받을 때 ‘강아지들 많은데 괜찮으시겠냐’ 늘 물어봐요. 처음에는 우려가 컸죠. 많은 유기견이 있는 곳에 어떤 용기 있는 자가 자기 개들을 데리고 와서 돈을 쓸까 싶었어요. 그런데 기우였어요. 먼저 다녀가신 분들의 소개나 허그안 블로그를 보고 개들에 관해 아시는 분들이 주로 방문해요.”

한 마리를 깊이 사랑하게 되면, 그것이 인연이 되어 관심은 그 종 전체로, 또 다른 종으로 넓어진다. 이씨가 그렇고, 또 허그안에 오는 반려인들도 그런 사람들이다. 안락사를 시행하는 보호소에서 허그안으로 개를 데리고 오는 ‘이동 봉사’하는 이들, 그러면서 허그안 개들의 간식거리로 달걀 300개를 삶아 오는 가족, 아픈 개들의 치료비를 모으는 바자회에 물품을 보내오는 이들도 있다. 인연을 맺은 가족들을 초대해 밥 한 끼를 지어 먹이는 ‘밥 데이’도 이곳의 중요 행사다.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이씨의 시선이 고요와 이사벨에게 자주 머문다. 많은 개의 질서를 잡는 리더. 11살 ‘크리슈나’의 체력도 점점 떨어져 간다. 늙고 아픈 개를 돌보는 일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물었다. 이정아씨는 2년 전 여름, 이맘때 떠난 러프 콜리 ‘러쉬’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파트에서 3년 살다 시골로 보내진 러쉬는 땅을 밟지 못하는 ‘뜬장’(바닥이 떠 있는 철창)에서 10년을 살았다. 이씨는 견주에게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내고 러쉬를 데리고 왔다. 10년을 갇혀 지냈던 심장사상충 말기의 13살 노견은 겨울이면 제일 먼저 일어나 눈이 쌓인 마당에 눈 발자국을 한가득 찍어놓았단다. 치매라 불리는 인지장애증후군이 온 후에도 밤낮으로 걷고 또 걸었단다. 러쉬는 2년 반을 더 살고 15살에 이씨의 품을 떠났다.

2층 카페 한쪽을 기부 물품 편집숍으로 꾸몄다.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제공
2층 카페 한쪽을 기부 물품 편집숍으로 꾸몄다.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제공
“노령견 호스피스가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에너지를 쏟는 일은 분명하지만, 이 아이들(개들)에게서 받는 에너지가 훨씬 더 많아요. 세상 모진 풍파를 겪은 애들이 도리어 나를 힐링 시켜줘요. 러쉬가 떠날 때 사자후처럼 크게 울었어요. ‘엄마 나 가요!’ 이러면서 갔어요.” 이씨는 말을 이었다. “어딘가에는 노령견을 돌보는 가족이 있을 테고, 이곳이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되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얼추 마치고 데크 의자에 앉아 녹음이 우거진 산을 마주 보고 있으려니, 래브라도 리트리버(개 품종 중 하나) ‘탐이’가 천천히 다가와 무릎에 살며시 턱을 괸다. 처음 환영 세리머니 악수를 청하던 리트리버 ‘소울이’인가 했는데 그보다 조심스럽다. ‘이제 짬이 좀 나시나요?’ 묻는 눈빛이다. 그 은근한 눈동자가 품은 다정함에 일하러 온 것을 싹 잊어버렸다. 이정아씨에게 물었다. “여기 개 없는 사람이 쉬러 와도 되나요?” 애견펜션에 개 없이 와서 개를 만나도 괜찮을까? 이씨의 대답은 시원했다. “그럼요. 환영이죠.”

청도(경북)/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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