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 신사동 한 카페에 자신이 직접 제작한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나타난 방송인 김새롬(32). 사진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모델과 프로그램 진행자(MC)는 어떻게 보면 모순적인 직업이다. 모델은 자기 색깔을 강하게 드러내야 하지만, 진행자는 자기를 포함해 개성 강한 출연자들을 아울러야 한다. 2000년대 중반, 한국 나이로 18살에 슈퍼모델로 데뷔해 모델과 진행자 역할을 넘나들며 활동해 온 방송인이 있다. 김새롬(32). 10대 때 이미 <문화방송>(MBC) 연예 정보 프로그램 <섹션 티브이(TV) 연예통신> 리포터와 <한국방송>(KBS) <가족오락관> 사회자(MC)로 발탁된 그는 꾸준히 진행자이자 모델로 팬들 앞에 섰다.
김새롬은 개인적인 아픔을 겪고 나서 1년 전 본격 방송활동을 재개했다. 다음 달엔 그가 직접 제작한 립스틱 브랜드를 출시한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카페에 바로 그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나타난 그를 김성일 스타일리스트가 만났다. 김새롬은 “지난 8개월 동안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다 준비했다”며 “(출시를 앞두고) 너무 떨린다”고 말했다. “지나간 모든 일은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30대가 돼서야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고.
정리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사진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김성일 스타일리스트와 인터뷰하는 김새롬. 사진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김성일(이하 김) 슈퍼모델로 데뷔한 16년차 방송인입니다.
김새롬(이하 롬)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악 싫어요! 어떡하면 좋아. 너무 오래됐어.
김 데뷔를 참 어릴 때 했어요.
롬 슈퍼모델 대회도 갑작스럽게 나갔어요. 고2 때 텔레비전 자막으로 슈퍼모델 대회 광고가 흘러갔어요. 엄마가 갑자기 ‘저거 해볼래?’ 묻기에 ‘저런 건 빽 없으면 못 해’ 그러고 말았거든요. 근데 대회 날짜가 2학기 중간고사 기간이랑 딱 겹쳤어요. 시험을 피하고 싶어서 대회에 나갔죠. 생물 과목을 좋아해서 100점 맞고 싶었는데, 그때 공부를 많이 못 했거든요.
김 방송 이미지가 애교스러우면서도 ‘푼수끼’ 있는 4차원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지켜본 김새롬은 똑똑하거든요. 저랑 대화가 통하는 편이에요.(웃음)
롬 네, 이렇게 해서 ‘김성일님’의 자기 칭찬이 플러스 일(+1) 되었습니다.(웃음)
김 캐릭터를 그렇게 잡은 방송 관계자에 불만은 없었나요?
롬 모델 일 시작하고 방송 제안을 갑자기 받았어요. 별로 준비가 안 돼 있어서 이미지 관리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어요. 그때그때 제작진 맘에 들게 방송해서 다음 방송도 해야겠단 생각이 우선이었죠.
김 어린 나이에 그런 (어른스러운) 생각을 다 했네요.
롬 프로그램엔 게스트 역할이 있고 패널 역할이 있어요. 공주님처럼 가만히 앉아 있으면 게스트고, 한 번밖에 못 나가요. 재밌게 망가지고 다른 출연자들을 잘 띄워주면 패널이 될 수 있죠. 자연스럽게 그런 역할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방송인 겸 모델 김새롬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김 방송에서 그런 캐릭터로만 비치는 게 속상하진 않았나요?
롬 제가 친근한 느낌인 게 좋았어요. 사실 그런 캐릭터 되려면 누구보다 상황을 빨리 파악해야 하거든요. 알 사람은 다 알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데뷔 5년 만에 난생 처음 우울증이 왔어요. 아이돌 그룹들이 출연하는 ‘꽃다발’(엠비시·2010년)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였어요. 그들은 가만히 있어도 방송에 많이 나오는데,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저도 같은 또래고 그렇게 못생긴 것도 아닌데 대우가 다르단 걸 느꼈어요. ‘멘붕’(멘탈 붕괴) 와서 우울증 약 먹으면서 활동이 주춤했죠. 어느 날 방송 중 쉬는 시간에 아이돌 친구들이 저한테 와서 한 말이 회복에 도움이 됐어요. ‘언니 너무 부러워요. 우리는 해체하면 연예계 수명이 보장 안 되는데 언니는 혼자 계속할 수 있겠어요’라고 하더라고요.
마냥 밝을 줄만 알았던 김새롬은 인터뷰 초반 “제가 알고 보면 붙임성도 없고 낯가림도 심해서 연예인 친구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그의 취향과 일에 관해 듣다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김 예전 ‘냄새롬’이란 별명 있었죠? (방송계에 김새롬이 쓰는 보디로션이 냄새가 좋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김새롬이 제품명을 공개하지 않자 누리꾼들이 붙인 별명) 그나저나 그 보디로션은 뭐에요?
롬 (웃음) 정말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에요. 그 냄새가 좋아서 10년 넘게 쓰고 있어요. 저는 제 몸에 지니는 건 제가 좋아하는 것만 해야 하거든요. 홈쇼핑 관계자가 무료 제공하는 샘플도 마음에 안 들면 절대 안 쓰는 성격입니다.
김 인간관계도 좁고 깊은 편일 것 같아요.
롬 리포터로 방송을 시작했잖아요. 처음 만난 사람한테 얘기를 끌어내야 하니 상대방을 파악하는 능력이 금방 늘었어요. 공적인, 사적인 자리에서 공감대 끌어내는 건 잘하니까 상대방은 친해졌다고 느끼는 편이었죠. 하지만 제 얘기는 쑥스러워서 안 하니까 의도치 않게 서운해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김 제가 아는 한 유명 진행자도 엄청 내성적이에요.
롬 진행자가 되면 자기 얘기를 안 해도 되잖아요. 가만히 있어도 콘텐츠가 되는 사람도 있죠. 전 제 콘텐츠가 뭘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니까 내 얘기보단 남의 얘기를 끌어내서 캐릭터를 만들어주고 두 사람 캐릭터 파악해서 시너지 만들어내는 진행자가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김 지금은 꿈이 바뀌었나요?
롬 꿈이 바뀐 건 아닌데 여성 방송 진행자가 많지 않고 제게도 기회가 적은 건 현실이에요.
김 32살이면 모델로서는 원로죠. 아직도 런웨이에 오르나요?
롬 2017년 ‘에프 더블유(F/W) 헤라 서울패션위크’에서 강요한 디자이너 브랜드 ‘참스’ 무대에도 섰는걸요. 모델 일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에요. 지금도 잡지 화보 촬영 등 꾸준히 해요.
김 여성 팬들이 많은 걸 느끼죠?
롬 인스타그램 등에는 팔로워 성별 비율이 나오잖아요. 여성 비율이 83% 정도 돼요!
김 난 여성 비율이 95%인데.(두 사람 모두 ‘물개박수’치며 자지러짐) 여성이 좋아하는 여성 방송인이 장수하는 것 같아요. 중간에 사고 한 번만 없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웃음)
포즈 취하고 있는 김새롬. 사진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김새롬은 2015년 8월 결혼하고 1년4개월 만에 이혼하면서 구설에 올랐다. 유명한 요리사였던 전 남편이 경찰 조사 등을 받으면서 그의 이름도 검색 순위에 오르는 등 예상 못한 인생의 위기를 겪었다. 그 뒤 약 1년간 공백기를 보내고 2018년 1월 ‘비디오스타’(엠비시에브리원)로 방송에 복귀했다.
롬 결혼한 29살(한국 나이) 때 (제정신이) 확 돌아 있었어요. 여자 인생 서른이면 끝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무섭고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모든 판단력이 흐려져 있었던 것 같아요. 전 지난 모든 일이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브레이크가 필요한 시기였던 것 같아요.
김 공백기는 어떤 시간이었나요?
롬 공백기에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보통 20대에 자아를 찾잖아요. 그런데 전 20대에 세상살이 처세를 배웠고 30대 돼서야 자아를 찾게 된 거죠. 잔가지를 덜어내면서 제 진짜 줄기와 성격은 이런 것이었다는 걸 알아가고 있죠.
“그래서 자신의 진짜 줄기와 성격은 뭐냐”고 묻자, 김새롬은 잠시 말을 멈추고 쉽게 털어놓기 싫다는 듯 “그걸 지금 깨닫고 있는 중”이라고만 말했다.
김새롬은 오는 4월 자신이 직접 제작한 립스틱을 출시한다. 사진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김 다음 달 출시하는 립스틱 브랜드, 무모할 정도로 모든 걸 혼자 다 준비했다고 들었어요.
롬 레드립(빨간 립스틱)을 정말 좋아해요. 활동이 주춤할 때 뭔가 나만의 새로운 걸 하고 싶었어요. 투자하겠단 사람들도 많았는데 망해도 좋으니 처음부터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혼자 했어요. 제품 만들고 사진 찍고 홍보하고 색깔 고르고 패키지(포장) 디자인까지 제 돈으로 제가 다 했어요.
김 직접 만든 그 립스틱이 당분간 ‘자식’ 같겠네요.
롬 훌륭하게 커야 할 텐데. 훌륭하게 안 커도 사랑할 거예요.(웃음)
김새롬의 립스틱 브랜드는 자신의 이름 ‘새롬’(saerom) 영문 철자를 뒤집은 모레아스(moreas). 10대부터 줄곧 스스로 망가지거나 다른 캐릭터들을 살리던 방송인 김새롬은 30대가 되어서야 자기 이름을 전면에 내걸었다. 이제 그가 빨간 립스틱으로 인생 제3막을 쓰기 시작했다.
스타일리스트
김새롬 프로필
2004년 <에스비에스>(SBS) 슈퍼모델 선발대회 참가.
2005년 <문화방송>(MBC) ‘섹션TV연예통신’ 리포터.
2006년 <한국방송>(KBS) ‘가족오락관’ 진행(MC).
2006년 2006 <문화방송>(MBC) 연예대상 쇼·버라이어티 부문 신인상 수상.
2007년 <티브이엔>(tvN) ‘마릴린’ 진행.
2008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라이프 특별조사팀’ 연기 데뷔.
2009년 <큐티브이>(QTV) ‘순위 정하는 여자’ 패널.
2010년 <패션앤>(FashionN) ‘스위트룸’ 진행.
2011년 <티브이엔>(tvN) ‘환상의 커플’ 진행.
2012년 <엠비엔>(MBN) ‘천기누설’ 진행.
2014년 <헬스메디티브이>(헬스메디TV) ‘원더우먼’ 진행.
2016년 <문화방송에브리원>(MBC에브리원) ‘마담들의 은밀한 레시피’ 진행.
2018년 <채널에이플러스>(채널A플러스) ‘박시연의 멋 좀 아는 언니’ 진행.
2019년 4월 립스틱 브랜드 ‘모레아스’ 출시 예정
정리 김선식 기자 k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