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스포츠실용차’(SUV)의 시대다. 자동차의 크기를 막론하고 판매량이 증가하는 차종은 사실상 에스유브이(SUV)이기 때문이다. 이 추세는 세계적으로 공통된 것이어서 에스유브이 라인업이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느냐로 자동차 업체의 주가가 결정될 정도다.
과거 비포장도로 주파용 자동차였던 에스유브이가 승용차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미국 시장에서의 인기가 시초였다. 1990년대 초 일이다. 실제로 미국에선 왜건(11∼12인승 차)이나 미니밴(3∼5인승 차) 등 에스유브이가 가족용 자동차로 인기가 높았다. 여러 명이 타고 짐도 충분히 실을 수 있다는 장점 이외에도 캠핑 여행을 갈 때 노면의 상태에 상관없이 달릴 수 있다는 점, 겨울철에도 접지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시야가 높아 복잡한 시내에서도 운전하기 편하다는 점 등 에스유브이만의 장점이 남녀 모두에게 받아들여지면서 시장규모가 커진 것이다. 전통적으로 에스유브이보다 해치백(차량의 객실과 트렁크의 구분이 없으며 트렁크에 문을 단 승용차 형태) 소형차가 인기를 끌던 유럽 시장에서도 이제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인피니티는 오래전부터 네모난 성냥갑처럼 생긴 에스유브이의 디자인에 변화를 시도한 브랜드다. 새롭게 등장한 에스유브이인 ‘더 올 뉴 QX(큐엑스)50’도 마치 조형 작품과도 같은 날렵한 외관을 자랑한다. 실내는 더 화려하다. 가죽과 스웨이드, 나무 소재를 다양하게 활용해 마치 부티크 호텔 스위트룸의 거실에 앉아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엔진은 세계 최초로 개발된 가변 압축비 방식을 채택했다. 저속에서는 압축비를 높이고 고속에서는 압축비를 낮춘다. 이렇게 압축비가 바뀌면서 최적의 연료량을 계산해 쓸모없는 연료 소모를 줄이면서도 강력한 힘을 뽑아낼 수 있다. 이뿐이랴. 2ℓ 휘발유의 터보 엔진이면서도 디젤에 버금가는 연비도 자랑한다. 더 놀라운 것은 터보 엔진이면서도 자연 흡기 엔진처럼 회전수 상승이 부드러워 진동이 적다는 점이다. 그래서 느긋하게 달릴 때나 빠르게 달릴 때나 흐뭇한 웃음을 짓게 된다. 운전이 즐거워서다.
인피니티는 일본 자동차 업체 닛산의 고급 브랜드이면서도 본사를 홍콩에 두고 베엠베(BMW) 출신의 독일인 시이오(CEO)를 두는 등 다국적 기업의 분위기를 갖고 있다. 1989년 등장한 직후에는 주로 미국 시장을 노린 차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여러 나라의 요구 조건을 골고루 만족하게 하는 차를 만들고 있다. 미국과 일본 모두 승용 디젤 엔진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한창 유럽과 우리나라에서 디젤이 인기를 끌던 시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디젤 엔진을 사용하는 등 다양한 노력으로 위기를 견뎌냈다.
이 과정을 거쳐 이번에 등장한 ‘더 올 뉴 큐엑스50’과 가변 압축비 엔진은 세간의 유행과 풍파를 뚝심으로 버티며 결국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겨낸,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연비와 성능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인피니티가 이제 소비자의 마음마저 잡을 수 있는지 지켜볼 만하다.
신동헌(자동차 칼럼니스트·<그 남자의 자동차> 지은이), 사진 인피니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