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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출근보다 싫은 것은 세상에 없다

등록 2019-01-23 20:00수정 2019-01-23 20:53

박상영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일러스트 윤수훈.
일러스트 윤수훈.

올해 서른한 살인 박상영 소설가는 위트 넘치는 문장과 시대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으로 이미 20~30대 팬을 많이 거느린 우리시대 젊은 작가입니다. 2016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단편소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가 당선되면서 등단한 그는 직장인 생활도 여러 해 한 사람입니다. 그가 재미와 위로가 촘촘히 박힌 글로 독자 여러분을 2주에 한 번씩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새벽에 일어나 에스프레소 더블 샷을 내려 마시고, 간단히 오믈렛을 해 먹는다. 아침의 달뜬 기분을 잃기 전에 두 시간 정도 초고 집필을 한 후, 목이나 어깨가 뻐근해질 때쯤 자리에서 일어난다. 조깅 옷으로 갈아입고 현관 앞에 선다. 새로 산 러닝화가 발에 가볍게 감긴다. 집 근처 호수에 도착한다. 조금 쌀쌀한 대신 미세먼지가 없어 조깅을 하기 좋은 날씨이다. 발목 스트레칭을 한 후 달리기 시작한다. 호수를 두어 바퀴 달리고 나면 어느덧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러너스 하이’. 나는 터질 것 같은 호흡 속에서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작가의 오전이라면 적어도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 개뿔.

세상에 출근보다 더 싫은 게 존재할까? 다들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서른 몇 해를 살아본 결과 이보다 더 싫은 건 없었다. 채근하듯 울려대는 알람을 끄면서 하루를 시작하면 일단 욕부터 튀어나온다. 10년 전에 라식수술을 한 뒤로는 아침마다 눈 뜨기 힘들 정도의 건조함을 느낀다. 나는 침대 옆 협탁을 감은 눈으로 더듬어 인공누액을 찾아 눈에 집어넣는다. 교양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피부과 전문의는 한국 남성의 대부분은 지성 피부이며, 자신이 지성인 걸 모르고 있을 뿐이라고 하던데 아침에 내 피부를 보고도 그 말이 나오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 나는 건조하다. 각막과 입술을 포함한 온몸이 건조하고, 건조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종종 참을 수 없이 간지럽다. 빙하처럼 추운 욕실로 들어가 건조한 몸에 미지근한 물을 끼얹으며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살아 있음의 거지 같음을. 새로 바꾼 보디로션의 점도가 높아서 그런지 걸을 때마다 바지가 달라붙는 거 같은 기분이 들고, 나는 등 언저리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그러나 분명히 간지러운 부분을 긁기 위해 노력하며 영하의 거리로 나선다. 우리 집에서 회사까지는 도어 투 도어 50분 내외의 시간이 소요되며 총 세 번의 환승을 거쳐야 한다. 이는 서울 시내 직장인의 평균에 한없이 가깝다. 이미 만원이 된 채로 정류장에 멈춰 선 버스에 몸을 구겨 넣으며 나는 오늘 하루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다. 내 인생에 대한 희망을 저버린 것과 같은 방식으로. 내 목 뒤에 닿는 모르는 사람의 입김. 어디선가 풍겨오는 썩은 내. 나는 양치질과 샤워, 빨래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죽일 수 있는 살인면허가 발급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도 쉬이 고개를 들거나 신경질이 가득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볼 엄두를 내지는 못한다. 냄새의 출처를 추적하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그가 아주 높은 확률로 이 공간에서 가장 덩치가 큰-즉 도리 없이 뚱뚱한-남자인 나를 범인으로 지목할 것만 같다. 높은 확률로 적중하는 피해 의식. 있잖아요. 당신. 날 왜 그렇게 봐? 저 매일 아침 샤워하고요, 디오더런트(체취 제거제)에 향수까지 뿌리고 다니거든요. 일주일에 한 번씩 세탁도 하고, 수건에서 걸레 냄새나는 게 죽기보다 싫어서 없는 살림에 건조기까지 장만했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보실 필요 없거든요?

출근 버스에 퍼진 타인 체취 싫어
커피 한 잔 들고 사무실 도착

됐다. 됐어.

그렇게 회사에 도착한 것이 8시40분 무렵. 나는 곧장 사무실로 올라가는 대신 회사 1층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들른다. 메뉴는 언제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1월부터 12월까지 메뉴에 변화는 없다. 속에 천불이 나는 것 같은 열기를 느끼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만성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을 진단을 받은 지 3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아침에 찬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습관을 도저히 끊을 수가 없다. 5만명쯤 앉았다 일어난 거 같은 소파에 기대앉아 한숨을 내쉬며 홀짝이는 커피. 언제나 부족한 나의 수면을 대체해줄 생명의 포션. 한숨 돌렸나 싶으면 시계는 어느덧 8시55분. 나는 반쯤 남은 커피를 한 손에 든 채 부랴부랴 사무실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선다.

이미 대부분의 팀원이 출근을 한 상태이고 나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가방을 내려놓고, 데스크톱 전원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조용히, 정말 개미조차 들을 수도 없을 만큼 작은 소리로, 책상 서랍에서 칫솔과 치약 세트를 꺼내고, 치약을 짠다. 누구보다도 당당한 자세로, 그러나 구두 굽 소리만은 나지 않게 사뿐사뿐 화장실로 향하는데, 내 맞은편 자리에 앉은 (만년 대리인) 오가 나를 불러 세운다. “저기 박 대리, 내가 그전에도 말했던 거 같은데.” “네?” “출근 시간이 9시까지라는 건 9시까지 도착하라는 게 아니라, 십오분 정도 일찍 와서 9시까지 업무 준비를 마치라는 의미라고.”

나는 빙긋 웃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럼 계약서에 출근 시간을 ‘8:45분’이라고 적어놓으시든가요. 나는 다시 자리에 엉거주춤하게 앉아, 사내 메신저에 로그인을 하며, 일을 하는 척을 한다. 치약을 묻혀놓은 칫솔은 책상에 올려놓은 채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 마이클.”

팀장 타박으로 업무 시작
밤에 작가, 낮엔 직장인인 나

마이클은 미국인처럼?시간에 딱 맞춰 출퇴근을 하며 높은 직급의 사람들에게 그다지 고분고분하지 않은 태도로-회사에 다닌다는 의미에서 최 차장이 내게 붙여준 별명이다. 누가 봐도 비난의 의도가 명징한 멸칭이지만 뭐, 그들이 나를 뭐로 부르던 마이클이 아니라 마이클 할아버지라고 불린다고 한들 나로서는 알 바 아니지만 다만, 별명을 부를 정도로 친근한 사람으로 인식해 자신들의 사교 활동에 내가 동참하기를 슬쩍 강요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내가 가만히 양치질을 하러 갈 타이밍을 보는데, 팀장님이 말을 얹는다.

“아냐, 상영씨 저번에 보니까 새벽같이 회사 앞에 와서 커피 마시고 있던데?” 그놈의 커피. 아니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그의 말이 맞는다. 마감을 할 때의 나는 매일 5시에 일어나 회사 근처의 카페에 각을 잡고 앉아, 출근 시간까지 글을 쓰곤 한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비밀 하나.

나는 2016년 등단해 작년에 첫 번째 책을 낸 소설가이다.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는 사무직 사원으로 일하는 동시에 나머지 자투리 시간을 짜내고 짜내 글을 쓰고 있는 ‘투잡’ 노동자이다. 사무실 사람 대부분은 내가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작가인 것조차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해야만 한다. 뭐 대단한 이유 때문은 아니다. 내가 쓰는 소설에 자이툰 부대에서 섹스를 하는 동성애자들, 인스타그램에 빠져 사는 관종, 죽도록 바람을 피우는 연인들, 불법 촬영물의 피해자, 자해를 하는 아이가 등장하기 때문에? 어차피 내가 작가라고 해봤자 굳이 내 책을 사볼 사람이, 아니, 자기 돈을 주고 소설책을 사볼 만한 사람이 우리 회사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단 하나라도 더 알 수 있는 정보를 주고 싶지는 않다. 이런 나의 바람이 가닿기라도 한 듯, 사무실에서의 나는 그저 털 난 정물이나 다름없다. 국문과 대학원을 나온 살찐 박 대리로 통할 뿐이다. “박 대리 그렇게 일찍 여기까지 와서 뭐 해? 설마, 운동?”

팀장의 물음에 최 차장과 오 대리가 동시에 크게 웃는다.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따라 웃는다. 웃으며 조용히 칫솔을 들고 사무실 밖으로 나간다. 화장실로 최대한 신속하게 들어가 입안에 텁텁하게 껴 있는 백태와 커피 찌든 때를 닦아낸다. 거울 앞에 선 남자의 얼굴은 잔뜩 부어 있고, 볼살이 늘어져 심보가 고약해 보인다. (형상은 본질을 반영한다.) 칫솔을 쥐고 있는 손은 사람 손인지 짐승 손인지, 쓰다만 지우개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뭉툭하며, 셔츠의 아래 단추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다. 그마저도 인터넷 큰옷 전문 사이트에서 1+1 떨이 행사 때 남은 제품들을 구매한 터라 한눈에 보기에도 구리지만, 괜찮아. 이건 작업복이니까 심미적인 욕구까지 충족할 필요는 없다고. 그런데 왜 당장이라도 거울을 깨버리고 싶은 걸까. 견딜 수 없다.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마음을 안고 하나도 중요하지도, 쓸모 있지도 않은 일들을 처리하며, 가끔은 몰래 메신저를 하며 오전 시간을 보내고 나면 12시 종이 울린다. 팀원들은 지갑과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는데, 나는 자리에 앉아 있다. 팀장이 나를 흘끗 보며 말한다. “박 대리는 오늘도 혼자 먹어?” “네.” “도시락을 싸다니는 건가?” 백 번은 더 물었던 질문을 또 하고 앉아 있다. 아마도 함께 밥을 먹지 않고 팀에서 겉도는 내게 대놓고 눈치를 주는 것이겠지. 나는 팀장의 면박 따위는 하나도 눈치채지 못한 사람처럼, 누구보다도 순수한 표정으로 “점심 맛있게 드세요”라고 대답한다.

비로소 찾아온 정적. 사무실에 나 혼자 남았다. 그럴듯한 도시락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다만 책상 서랍 속에 소분해 놓은 단백질 파우더가 있을 따름이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사무실은 고래뱃속처럼 고요하다. 나는 마치 대단한 죄라도 짓는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대며 셰이커에 단백질 파우더를 담는다. 그리고 정수기로 가 셰이커에 물을 받아 정신없이 흔든다. 그리고 사무실 냉장고, 검은 비닐봉지에 담겨 있는 오래된 냉동 고구마 하나를 꺼내온다. 그리고 행여 누가 볼까 봐 차가운 고구마를 씹으며 이따금 목이 막힐 때면 단백질 셰이크로 퍽퍽한 고구마를 넘겨 먹는다. 이것이 지난 2년 동안의 내 점심 식단이다. 그렇다, 나는 다이어트 중이다. 오천만 인구 중 절반은 항상 다이어트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토록 눈치를 보는가. 고백할 게 하나 더 있다. 지난겨울, 나는 대리로 진급했으며, 기어이 100㎏을 넘어섰다. 둘의 연관 관계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몸무게가 세 자릿수를 찍은 뒤로는 아예 체중계에 올라가는 것을 포기했으므로 어쩌면 지금은 더 나갈 수도 있다. 왼쪽 무릎의 통증이며, 한 층만 계단으로 올라가도 죽을 것처럼 뛰는 심장, 버스나 지하철의 의자가 비좁게 느껴지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고, 심지어는 시중 브랜드에서 살 수 있는 옷들이 거의 없어졌다. 아침은 아메리카노 한 잔, 점심은 단백질 셰이크에 고구마 한두 개인 사람이 어떻게 이런 몸무게를 가질 수 있는지 나로서도 미스터리이다.

점심에도 다이어트···팀장은 면박
야식 유혹 못 떨쳐 지금 100㎏

거짓말이다. 내가 왜 이런 몸무게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앞서 고백한 나의 만성 질환(위염과 역류성 식도염, 목과 허리 디스크)외에도 내가 앓고 있는 고칠 수 없는 병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야간성 폭식증. 이미 온 국민에게 상식 차원의 병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지만, ’야간성 폭식증’이야 말로 나의 생활 리듬을 설명해줄 수 있는 가장 명료한 단어다. 퇴근을 하고, 서너 시간 남짓 회사 근처의 카페에서 글을 쓰고 집에 돌아오면 자정이 다된 시간. 씻고 침대에 누우면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허기가 몰려온다. 자제해야지, 오늘 밤은 기필코 굶고 자야지, 마음먹어본다. 애써 눈을 감아도 허한 느낌 때문에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간단한 견과류나 따뜻한 우유 혹은 삶은 달걀을 섭취하면 된다고? 나라고 안 해 봤겠는가. 아몬드 열 주먹을 입안에 쑤셔 넣는다고 한들, 산불처럼 번지는 이 허기를 해소할 수는 없다. 결국 나는 핸드폰을 들어 배달 앱을 켜고 만다. 오늘의 메뉴는 순살 반반 치킨. 40~50분 뒤에 내 방 안에 찾아드는 기름의 향. 고독하고도 따뜻한 인생의 맛. 도대체 내가 왜 웃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시시껄렁한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치킨 한 마리를 비우면 비로소, 내가 그토록 바라던 잠이 오기 시작한다. 지금 바로 누우면 어김없이 위산이 역류할 거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는 없다. 지금 자지 않으면 내일 출근도 어림없을 테니까. 나는 기어이 침대에 눕는다. 내일 밤은 기필코 굶고 자야지, 생각하면서.

박상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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