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호정이 지난 14일 신작 <그대 이름은 장미> 개봉을 앞두고 김성일 스타일리스트를 만났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배우 유호정(49)이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로 돌아왔다. 2011년 영화 <써니>에 출연한 뒤 8년 만의 스크린 외출이다. 15년 전 어머니를 여읜 그에게 이 영화는 남 다른 의미였다고 한다. “영화를 찍는 내내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분을 완벽히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지난 14일 김성일 스타일리스트가 유호정 배우를 만나 그의 배우 인생과 가족 그리고 신작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정리 김포그니 기자pognee@hani.co.kr,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실장
김성일(이하 김) 그동안 몇몇 드라마에서 유호정씨 의상을 제가 담당하면서 동료로, 20년 지기 친구로 지내다가 이렇게 인터뷰까지 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네요. 유호정이라는 배우를 처음 제대로 알게 된 게 1992년 무렵이었어요. 그 때 호정씨는 배우 오연수, 김혜수씨 등과 함께 떠오르는 청춘스타였죠.
유호정(이하 유) 과찬이세요.(웃음) 당시 김혜수씨는 한참 위 선배였죠. 오연수씨도 그렇고요. 한번은 데뷔 직후 어떤 광고를 촬영하게 됐는데, 그때 오연수씨가 메인 모델이었고 제가 보조였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오연수씨야말로 스타였죠.
김 1991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고개숙인 남자>로 데뷔한 지 1년 만에 당시 ‘청춘스타 공장’이라 불렸던 <문화방송>(MBC)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 캐스팅됐잖아요. 1987년 연극으로 데뷔했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유 그건 잘못된 정보예요. 1989년 학교(서울예술대) 앞에서 길거리 캐스팅 된 게 연예계와 인연을 맺은 계기였죠. 처음엔 무서워서 피했는데, 그 캐스팅 매니저가 학교에 와서 저를 조교에게 만나게 해달라고 한 거예요. 30만원을 준다고 하니 당시로는 큰 돈이었고, 등록금 벌 수 있겠구나 싶어서 했죠.
김 <우리들의 천국>에는 배우 장동건·염정아·감우성씨 등이 출연했잖아요. 대부분 훗날 스타가 됐죠. 호정씨도 물론이고요.
유 솔직히 제가 스타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흔히 연예인이면 무대 위에서 사회도 잘 보고, 대중 앞에 서는 게 자연스러울 거라 생각하는데, 전 아직도 무대 올라가면 심장이 멎을 것 같아요. 물론 예전보다는 나아졌긴 했지만요.
김 제가 기억하는 유호정씨는 되게 털털한 스타였어요.
유 어떤 면에서 그렇게 느끼셨어요?(웃음)
김 1990년대 중반 당시 제가 일했던 한 패션 브랜드 회사에서 스타를 초청한 행사를 했어요. 그때 호정씨도 왔는데요. 캐주얼한 옷을 입은 호정씨가 배우 이재룡씨의 손을 잡고 나타난 거예요.
유 아, 생각나요. 그 때 이재룡씨와 연애할 때였어요.
김 깜짝 놀랐죠. 연예인의 공개 연애가 지금보다 더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잖아요. 그런데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열린 행사에 유명한 배우 두 명이 손을 잡고 나타났으니까요. ‘저렇게 다녀도 되나. 대단하다’싶었죠.
유 공개 연애를 해야겠다는, 어떤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고요. 그냥 편한 게 좋아서 그렇게 같이 다녔던 것 같아요.
인터뷰하고 있는 유호정.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배우 유호정은 1991년 <한국방송>(KBS) 드라마 <옛날의 금잔디>에서 배우 이재룡과 함께 출연한 것을 계기로 1995년 결혼해 2002년 아들 태연(16)군과 2005년 딸 예빈(13)양을 낳았다.
김 올해 결혼한 지 몇 년째죠?
유 24년 됐어요. 저도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어요.(웃음)
김 유호정씨 집에 가끔 놀러가 보면, 이재룡씨가 엄청 가정적이어서 놀랄 때가 많아요. 호정씨 말이라면 언제나 ‘예스’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두 분이 다툴 때도 있나요?
유 항상 남편이 ‘너 하고픈 대로 해’라고 해서 부딪힐 일이 거의 없었어요. 또 결혼한 지 7년 만에 첫 아이가 생겼잖아요. 애 앞에서 싸우는 건 절대 안 된다고 둘이 합의했어요. 사실 남편도 저한테 불만이 왜 없겠어요. 그런데 티를 안내고 남들 앞에서는 오히려 저를 더 대접해줘요. 제가 배우고 싶은 점이에요.
김 이재룡씨가 선배 배우로서 연기 지도도 해주나요?
유 제가 배우로서 자신감이 없을 때 ‘한 작품만 더 해보는 게 어때’라며 격려해주는 고마운 사람이에요. 덕분에 임신했을 때만 빼고 작품 활동을 쉬지 않고 해온 것 같아요.
<초원의 빛>(KBS), <천사의 키스>(KBS) 등에서 따스하고 바보스러울 정로도 착한 캐릭터를 소화해 인기를 얻은 유호정이지만, 연기의 외연을 넓히고 싶은 배우로서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1999년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청춘의 덫>에서 악역을 맡아 연기 변신을 한다. 약혼자의 전 여자친구(심은하)와 대결구도에 있는 재벌집 딸 ‘영주’ 역을 덜컥 맡은 것이다. 당시 그가 낙점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대중은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유호정이 뜻밖의 독한 역을 맡은 게 생소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드라마가 공개되자 명연기를 펼쳤다는 호평이었다.
김 <청춘의 덫>에서 유호정씨의 연기 내공이 오롯이 드러났다고 봐요.
유 김수현 작가님의 작품이어서 그런 변신이 가능했어요. 그분의 대본은 언제나 완벽하거든요. 감사하죠.
김 배우 인생을 돌아 봤을 때 고마운 사람이 더 있다면요?
유 윤여정 선배님이요. 1994년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작별>을 같이 찍으면서 윤 선배님께 연기하는 법을 제대로 배웠어요. 매주 후배에게 연기를 지도해준다는 게 보통 열정 갖고는 힘든 일이거든요. 심지어 그때 윤 선배님은 육아와 일을 병행하고 계실 때였어요. 저도 육아를 해보니 그때 선배님의 고충을 알겠더라고요. 여러모로 존경하는 분이에요.
김 <로즈마리> 찍으면서 같이 출연했던 배우 김승우씨와 친해졌죠? 나중에 배우 김남주씨에게 소개해줬다면서요?
유 소개팅을 주선한 것은 아닌데, 공교롭게 ‘사랑의 오작교’가 된 셈이죠.(웃음) 남주씨와는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서 연락을 자주 하는 사이가 됐어요. 같이 육아를 하면서 고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옆에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김 유호정씨는 유독 주변에 친구가 많더라고요. 비결이 뭐예요?
유 운이 좋았어요. 요즘 들어 더 깨달아요. ‘내가 참 인복이 있구나’라고요. 10년 전 배우 최지우씨가 우리나이로 제가 50살이 되면 파티를 해주겠다고 했는데, 까맣게 잊고 지냈지요. 그런데 얼마 전 지우씨가 절 위해 깜짝 생일 파티를 열어줬어요. 손 편지를 준비하고, 꽃 장식도 정성을 들였더라고요. 정말 감동해서 울컥 했어요.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의 한 장면. 사진 리틀빅픽쳐스 제공
김 드라마만 거의 30여편 출연했는데, 드라마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요?
유 드라마든 영화든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열심히 읽어요. 편식하는 편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김 영화 섭외도 많이 들어오는데 거절을 자주 한다고 들었어요.
유 영화는 언제나 하고 싶어요. 그런데 들어온 시나리오가 너무 자극적인 게 많았어요. 유괴나 성폭행당한 딸을 둔 엄마 같은 역이요. 읽는 동안 제가 너무 힘들었어요. 읽는 것만도 힘든데 연기를 어떻게 하나 싶었지요. 더구나 촬영하는 몇 개월은 그 역에 푹 빠져 살아야 하는데요. 엄두를 못 냈죠. 그러던 차에 <그대 이름은 장미>가 들어온 겁니다. 모성애를 제대로 다뤘다 싶어서 승낙했어요.
김 어떤 내용의 영화인가요?
유 한 여성의 일대기이자 한 엄마의 이야기예요. 이 영화를 찍으면서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우리 엄마도 예전에 그랬겠구나’라고 이해하게 됐죠. 딸과 손 잡고 가서 보면 좋은 영화예요.
영화 <써니>의 한 장면. 사진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김 전작 <써니>도 한 여성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였잖아요.
유 <써니>는 여성들의 우정을 다뤘다면 <그대 이름은 장미>는 모성애를 잘 표현한 작품이에요. 저도 엄마로서 한번 즈음은 모성애를 담은 따뜻한 작품에 참여해 보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온 거죠.
김 아이들한테 어떤 엄마인가요?
유 이번 영화 찍으면서 딸에게 물어 봤어요. ‘엄마는 나한테 제일 친한 친구’라고 하더군요. ‘친구 같은 엄마?’라고 되물었더니 ‘아니, 제일 친한 그냥 친구! 난 엄마랑 노는 게 제일 재밌어’라는 거 있죠.(웃음) 기뻤어요.
김 <이비에스>(EBS)의 ‘책 읽는 라디오 낭독 시리즈’에도 출연하고, 2000년엔 <유호정의 행복한 집 이야기>도 출간했다고 들었어요.
유 낭독은 누가 부탁해서 한 거고요, 책은 결과적으로는 잘 안 됐지만 좋은 경험을 했죠.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의 한 장면. 사진 리틀빅픽쳐스 제공
김 <그대 이름은 장미> 시사회에서도 살짝 울었다면서요. 요즘 눈물이 많아진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유 지인들이 많이 왔어요. 그것이 감사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죠. 마침 영화의 줄거리도 옛 추억을 되짚는 내용이었던 터라 감동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자녀와 가장 친한 친구라서 행복하다는 배우 유호정. 그가 이번 신작에서 어떤 ‘엄마’를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김성일 스타일리스트
유호정 프로필
1991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고개숙인 남자‘ 출연해 배우로 정식 데뷔.
1993년∼1994년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결혼’, ‘작별’ 출연. ’제29회 백상예술대상’ 티브이(TV)부문 여자신인연기상.
1995년 <한국방송>(KBS) 드라마 ‘바람은 불어도’ 출연.
1996년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자전거를 타는 여자’, <문화방송>(MBC) 드라마 ‘사과꽃 향기’ 출연.
1997년 <한국방송>(KBS) 드라마 ‘폭풍 속으로’,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이웃집 여자’ 출연.
1998년 <한국방송>(KBS) 드라마 ‘거짓말’, ‘천사의 키스’ 출연.
1999년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청춘의 덫’, <한국방송>(KBS) 드라마 ‘해 뜨고 달 뜨고’ 출연.
2000년 <한국방송>(KBS) 드라마 ‘태양인 이제마’ 출연.
2002년 영화 <취화선> 출연.
2003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앞집 여자’, <한국방송>(KBS) 드라마 ‘로즈마리’ 출연. ‘K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 수상.
2006년 <한국방송>(KBS) 드라마 ‘인생이여 고마워요’, <문화방송>(MBC) 드라마 ‘발칙한 여자들’ 출연.
2007∼2009년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사랑은 아무나 하나’, <문화방송>(MBC) 드라마 ‘깍두기’ 출연.
2010년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이웃집 웬수’ 출연. ‘SBS 연기대상’ 연속극 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수상.
2011년 영화 ‘써니’ 출연
2013년 <한국방송>(KBS) 드라마 ‘사랑해서 남주나’ 출연.
2014년 영화 ‘민우씨 오는 날’ 출연.
2015년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출연.
2019년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