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김나래씨가 독특한 사선 트임의 스트랩 치마를 입고 있다. 제트세대의 패션 아이콘인 김씨가 평소 즐겨 입는 스타일이다. 사진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패션은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표현 수단이다. 1990년대 패션 트렌드를 이끌었던 엑스(X)세대(1970년대 출생)가 ‘배꼽티’를 입어 시대적인 자유로움을 보여줬다면, 요즘 제트(Z)세대는 어떤 옷을 입을까. 최근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선정한 〈2019년 밀레니얼-Z세대 주요 트렌드 키워드〉에 따르면 ‘나다움’을 드러내는 게 제트세대 패션의 주요 특징이라고 한다. 좀 더 자세히 제트세대 패션을 알기 위해 지난 4일 제트세대의 패션 아이콘으로 알려진 모델 김나래(25)씨를 만났다.
“입었을 때 가장 편안하면서 개성을 잃지 않는 옷을 입는 게 바로 제트세대 스타일이죠.” 모델 김나래씨의 말이다. 그는 17살일 때 <온 스타일>의 모델 서바이벌 리얼리티 프로그램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첫 시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후 모델, 유튜버, 패션 브랜드 ‘날리썸머’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티피오’(T.P.O.·시간+장소+상황)에 따라 입는 옷 스타일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런 패션 스타일을 지난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려 인기를 끌자 제트세대의 패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날 김씨는 흰색과 회색이 섞인 긴팔 티셔츠에 치마와 검은색 항공 점퍼를 입고 나타났다. 누가 봐도 무난한 복장이지만, 소매나 목 라인 등 미시적인 부분에 독특한 디자인을 입혀 개성을 드러냈다. 그가 입은 사선 트임의 스트랩 치마는 1990년대 유행했던 ‘아방가르드 패션(고정관념을 깨는 패션)’를 떠올리게 했다. 김씨는 “복고풍의 옷을 일상복처럼 무심하게 착용하는 ‘뉴트로’(옛 문화를 재해석한 것)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도 바로 제트세대”라고 한다.
패션 브랜드 전문가 송지연(28) ‘팀 엠지엠티’ 대표는 “제트세대의 부모는 문화적 소비활동을 활발히 했던 엑스(X)세대다. 부모를 따라 제트세대도 유년 시절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결과, 엑스세대가 즐겨 입던 아방가르드 패션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들이 뉴트로 패션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청청’(청바지+청재킷’ 패션. ‘카이’(KYE) 제공
그래서일까. ‘구제 옷(중고의류)의 성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 청계천로에 있는 동묘시장은 주말마다 구제 옷을 고르는 제트세대로 북적인다. 옛날 유행했던 옷과 지금의 세련된 의상을 ‘믹스 앤 매치’해 입는 걸 좋아하는 제트세대에게는 동묘시장은 의류 천국인 셈이다. 구제 옷을 소화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김씨는 “어렸을 적 고향에서 할머니가 입은 것 같은 굵은 분홍색 털실로 된 구제 스웨터에 벨벳 소재의 검은색 잠바를 걸친 뒤 유명 브랜드의 체인 크로스 백을 매면 힙(멋진)한 분위기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뉴트로 패션이 제트세대에게 각광받으면서 1990년대 유행했던 ‘청청 패션(청바지+청재킷)’을 요즘 식으로 입는 것도 덩달아 인기다. “서로 색감이 다른 청바지와 청재킷을 입는다. 여기에 검은 색 목 티셔츠를 입으면 힙해 보인다.” 김씨의 조언이다.
딘드밀리 패션. ‘nutellike‘ 인스타그램 갈무리
딘드밀리 패션. ‘chai-ing-’ 인스타그램 갈무리
‘딘드밀리’(가수 딘+힙합래퍼 키드밀리)패션도 빼놓을 수 없는 제트세대의 스타일로 꼽힌다. 구제 옷 가게에서 고른 듯한 낡은 옷들을 자유롭게 겹쳐 입는 식의 ‘그런지’(Grunge·지저분한) 패션은 1990년대에 반짝 유행했다가 지난해 ‘힙스터’로 유명한 딘과 키드밀리가 입으면서 ‘딘드밀리 패션’으로 제트세대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좋아하는 힙합 가수의 옷을 따라 입는 것도 제트세대의 패션 성향이다.
힙합 가수는 제트세대에게는 부모세대의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에이치오티(HOT)와 다를 바 없는 존재다. 그들이 입은 옷을 공유하면서, 그들의 철학이나 일상을 지지하는 것이다.
패션 인플루언서 안아름씨가 미국 거리에서 산 빈티지 티셔츠.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최근 한국패션협회가 발표한 ‘2018년 10대 패션뉴스’에 따르면 기성세대의 옷을 자기만의 색깔로 변형해 입는 식의 트렌드를 문화 전반에 전파한 것도 제트세대라고 한다. 부모세대가 입는 등산복을 일상에서 ‘믹스 앤 매치’해 입는 ‘고프코어’(Gorpcore·투박하고 못생긴 아웃도어 패션)나 ‘스트리트 패션’이 대표적이다. 송 대표는 “패션업계의 주 소비층인 제트세대 덕분에 최근 기성복과 고가의 명품 브랜드 옷보다는 ‘카이’(KYE), ‘에이지’(AGE), ‘파인드 카푸어’(FIND CARPOOR), ‘디스 이즈 네버 댓’(THIS IS NEVER THAT) 등 신생 스트리트 브랜드가 대세로 떠올랐다”고 한다.
실험정신이 투철한 제트세대지만 유행에 아예 무관심한 건 아니다. 지난해 중순 가수 선미의 ‘꽃무늬 원피스’, 올해 초 가수 현아의 ‘체스트 백(몸에 밀착된 채 사선으로 매는 가방)’ 등이 유행하자 제트세대는 곧바로 색다르게 반응했다.
꽃무늬 원피스에 벨트를 두르거나, 체스트 백의 줄을 체인으로 바꾸는 등 ‘유행템(유행 아이템)’을 자기 식으로 수정해 걸쳤다. 유행을 따르면서도 남의 눈치 안 보고 이것저것 실험해보는 것이 제트세대의 패션 원칙인 셈이다. 운동화를 신어도 밑창이 독특해야 하고, 명품 브랜드의 가방보다는 복주머니 모양의 어찌보면 촌스러워 보이는 가방을 자랑스럽게 든다.
가재 모양의 부츠. 사진 ‘메종 마르지엘라‘ 제공
그러다 보니 제트세대에겐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옷을 입는 게 패션 승자가 되는 지름길인 셈이다. 그래서 기성복을 찾기 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패션 브랜드를 찾는 게 더 중요해졌다.
제트세대인 김씨도 평소 즐겨 찾는 곳이 있다. 바로 인터넷 쇼핑 사이트 ‘쎈스’(SSENSE), ‘육스’(YOOX) 등이다.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외국의 다양한 독립 패션 브랜드를 직접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제트세대는 ‘신발에도 힘을 준’ 세대다. 차분한 느낌의 무채색 정장에는 빨간색의 운동화로 포인트를 주거나, 흰 티·청바지 조합에 가재 모양의 은색 부츠를 신는 식이다.
이렇듯 자기표현이 강한 제트세대는 외국여행을 갈 때도 나라별 어울리는 옷차림을 고심해 여행 가방을 싼다. 김씨도 미국 엘에이(L.A)에 갈 때는 화려한 장신구와 반짝이는 소재의 미니 원피스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라임색의 화려한 프릴 원피스를 챙긴다. 어떤 옷을 가져가야 할지 고민될 때는 인스타그램 등 에스엔에스(SNS)에서 현지 스타들의 패션을 미리 봐두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김포그니 pogn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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