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제트(Z)세대’가 트렌드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포털 검색이 일상인 중장년층 부모 세대와 달리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에서 놀기가 생활인 이들.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이 다르다 보니 생각도 관점도 다르다.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 사이 태어난 제트세대를 둔 부모는 불안하다. 그들을 위해 ESC가 ‘제트세대 아이를 둔 엄마의 관찰기’를 소개한다. 올해 마흔한 살인 <무슨 애엄마가 이렇습니다> 저자 윤은숙씨는 12살·9살 두 아이를 둔 이다. 그가 보내온 관찰기엔 제트세대와 호흡할 수 있는 단초가 숨어있다.
■ 2019년 1월1일
“댕댕댕” 새해 첫날 새벽 보신각의 종이 울렸다. 나는 이제 12살로 접어든 큰아이와 타종 현장을 지켜봤다. 추워서 동동거리는 발걸음. 허옇게 뿜어져 곳곳에 흩어지는 입김들. 무시무시하게 밀려들어 서로 부딪히는 어깨들. 춤을 추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함께했다. 방구석에서. 유튜브로.
이불 속에서 타종 행사를 같이 지켜보는 이들은 꽤 많았다. 실시간 댓글 창에서는 사람들이 분주히 새해 인사를 올렸다. 새해 복을 많이 받으시라는 메시지들로 창은 따뜻하게 데워졌다. 그 중 한 명이 ‘올해는 돼지띠인 나의 해. 더 많이 복을 받자’ 뭐 이런 댓글을 썼다. 그러자 아들은 대뜸 나의 스마트폰을 가로챈다. ‘**님 몇 살이새요?’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 와중에 맞춤법 틀리는! 아오) 바로 답이 왔다. 13살이요. 아들의 손가락이 빨라진다. ‘어 저보다 한 살 많으시네요. 전 12살요.’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새요’(여기도 맞춤법 틀림)
따뜻하고 정겹던 댓글 창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초딩들의 습격이다!!!!!!!!!!’ ‘보신각 타종까지 초딩이!!!!’ ‘초딩 경보 초딩 경보!!!!’ 등등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듣던 대로 성인 네티즌들은 초등학생들을 꽤 두려워했다) 그러나 12살과 13살은 분주한 어른들의 호들갑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온라인 사교계의 에티켓을 잘 익힌 듯, 그들은 점잖았다. 자정이 지나 얼마 뒤 13살은 엄마가 그만 자라고 한다며 퇴장했다. 12살이 안녕히 주무시라는 인사를 건넨다. 그렇게 보신각 타종 유튜브 실시간 채팅장에는 이제 또 한 살 드신 초딩들의 신년하례장이 됐다.
아이들은 자연스러웠지만, 어른들은 한탄했다. 여기에서까지 초딩을 봐야 하냐는 것이다. 그러나 2008년생과 2011년생 아이 두 명을 키우고 있는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다. 그곳이 어디든 네트워크가 있는 그곳엔, 바로 초딩이 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인 2019년이다. 날아다니는 자동차, 복제인간은 없다. 대신 우리 곁에는 신인류가 왔다. 엄마의 뒷목 잡기에 특화된, 호모유튜브쿠스가 그들이다.
■ 어린이 트루먼들이 몰려온다
아들: “안녕하세요. 잭입니다. 오늘은 저희가 공항에 왔는데요. 비행기가 늦게 출발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항에서 이렇게 햄버거를 밥 대신 먹습니다.”
나: (스마트폰을 잡으려 허우적) “으어야. 너 무어(우적우적) 찌그으냐? (양상추 조각 발사)”
아들: “저희 엄마세요. 정말 많이 드시죠? 그래서 배가.....”
나: “야야! 이리 내”
지난 2016년 말 아이가 찍었던 동영상의 한 장면이다. 나의 강력한 통제로 유튜브에는 올라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도 아이는 여전히 끊임없이 동영상을 찍는다. 물론 대부분 내 휴대전화에 모셔져만 있다. 나는 사생활이 노출되는 영상이 올라가는 게 사실 무섭고 꺼려진다. 그러나 아이는 다르다. 길 걷는 것, 밥 먹는 것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찍어서 올려서 굳이 노출까지 하고 싶어 한다.
내가 한 번도 가르쳐준 적이 없음에도 아이는 방송 투의 말이 익숙하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들 특유의 인사법을 그대로 복제한다. 세상없이 친근한 말투다. 분명 아무도 없는데, 기계에다 대고 말하는 건데 그렇게 사근사근할 수 없다. ‘안녕하세요~여러분. 오늘은 ****에 대해 알아볼 거예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너무 오랜만이죠. 오늘은 날씨가 너무 추워요.’ 상대가 없지만, 상대가 있는 것 같은 말투. 나 같으면 어색해서 닭살 100만개를 껴안고 기절할 것 같은 그런 말투를 아이는 일찍부터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나름 경계한다고 했건만, 유튜브는 이미 아이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영상 말미 마지막 멘트도 빠뜨리지 않는다.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마세요’
게다가 얼마 전에는 자신이 혼자 편집기를 다루더니, 음악도 넣고 자막도 넣어 작은 영상을 하나 만들어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가르쳐준 적이 없다. 물론 아직은 나의 통제로 업로드 한 영상 수가 적고, 조회 수도 황량하다. 대략 과자봉지 10개 정도 갖춘 섬마을 슈퍼 같다. 그러나 아이는 언젠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화려한 도시의 쇼핑몰로 바꾸고 싶어 한다. 우리 애도 대한민국 초등학생 대략 95%의 꿈인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꿈이다. 그는 다른 아이들도 각자 자기 채널을 가지고 있다며 자기만 뒤처질 수 없다고 부르짖는다.
찾아보니 주변 아이들도 꽤 많은 유튜브 영상을 올린다. 재밌는 것은 콘텐츠의 내용인데, 대부분 일상과 신변잡기다. 자전거를 타거나, 동네를 탐방하거나, 과자를 사 먹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하는 것이다. 영화 <트루먼 쇼>에 나왔던 트루먼이 강제로 자기의 사생활을 노출 당했다면, 2019년 어린이 트루먼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일상을 올린다. 네트워크 속 본인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뭐랄까, 정말 신인류인가? 너무 궁금해 새로운 인류 중 한 명인 아들에게 유튜브 열풍의 원인에 대해 물었다. 예상과는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떼돈을 벌 수 있다는데.” 생각보다 호모유튜브쿠스의 욕망은 복잡했다.
■ 100만 대군과 조자룡
나의 아이들은 1938년생인 친정엄마가 산 시절을 잘 가늠하지 못한다. 엄마는 명태 간 기름으로 호롱불을 켜고 살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들은 유치원 시절 할머니가 신라시대 사람이냐고 묻기도 했다. 아이에게 기술이 없는 시대는 그만큼 아득하다.
네트워크와 함께 숨 쉬는 아이들이지만, 그 아이들의 엄마 입장에서는 차라리 신라시대가 그립기도 하다. 내가 살던 시절에는 없던 기술이라서, 너무나 변화가 빠른 시대라서 깜깜한 동굴 안으로 성냥개비 하나 없이 끌려들어 간 것 같다. ‘스마트폰이 아이의 뇌를 망친다’, ‘유튜브 노출의 악영향’ 같은 경고성 기사나 연구 결과들이 쏟아지니 암흑만 더 깊어진다.
아직은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고, 아직은 아이의 유튜브 시청시간과 내용을 모니터링하고, 아직은 아이의 게임시간을 제한한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가끔은 나 자신이 조조의 100만 대군을 뚫고 유비의 아들을 구해내 도망가던 조자룡 같다는 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영상물과 게임을 나는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까. 조조의 100만 대군은 돌아갔지만, 디지털 콘텐츠들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해일처럼 몰려들 게 뻔한데.
아이는 종종 내가 너무 고삐를 조인다고 불평한다. 게임과 유튜브를 너무 안 보면 아이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아이의 생일에 초대된 초등학생들은 게임과 유튜브로 함께 어울려 놀았다. 이들은 오프라인에 같이 모였지만, 또다시 온라인 게임 속에서 들어가 서로를 만났다. 구슬치기나 땅따먹기를 하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이들에게 신라시대는 아니더라도 조선시대 사람쯤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편 내가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가 사는 세상은 훨씬 더 기술의 발전이 빨라질 텐데. 내가 너무 아이를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이 떠나지 않는다.
예전에 꿈꾸던 이상적 엄마는 아이들의 세계와 변화를 온전히 이해하고, 우아하게 웃으며 ‘네 꿈을 펼치렴’, 이렇게 말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미지의 세계가 두려워 아이를 내 뒤로 자꾸 숨기려 한다.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아이를 다그치고만 있다. 이제 2019년도 됐는데, 나도 좀 우리 시대의 엄마답게 디지털에 대한 시각을 바꿔보아야 할까?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 나온 말처럼 ‘네트워크는 광활하니까!’ (근데 생각해보니 이것도 1995년 작품이다. 역시 나는 ‘빼박캔트’ 옛날 사람!)
윤은숙(<무슨 애엄마가 이렇습니다> 저자)
제트(Z)세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에 걸쳐 태어난 세대. ‘Z’는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로 ‘20세기에 태어난 마지막 세대’를 뜻한다. 타인의 가치관을 그대로 좇기보다는 ‘나답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한 세대다. 유년시절 스마트폰 등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디지털 원주민’이다. 이 때문에 ‘숨소밍’(숨 쉬듯 소신을 말함), ‘YOU아독존’(유튜브에선 모든 게 가능하다는 주의) 등 이 세대를 가리키는 신조어가 넘쳐난다. 2019년 패션업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이들 제트세대의 성향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