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서유진(22)씨의 하루는 에스에스(SNS) 인스타그램 검색으로 시작해서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를 보는 것으로 끝난다. 지난 3일 인스타그램에서 점심 식사를 해결할 맛집을 검색한 뒤 버스에 올라탄 서씨는 곧바로 유튜브에서 ‘온도’의 ‘브이로그’에 접속했다. 브이로그는 ‘비디오’(video)와 ‘블로그’(blog)의 합성어로, 영상이 올라가는 블로그를 말한다. 브이로거들은 유튜브, 아프리카티브이 등의 플랫폼을 활용해 주로 일상을 올린다. 서씨가 브이로거 온도의 영상을 재생하자 ‘집순이’를 자처한 온도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거나,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밀크티 잼을 만드는 일상이 잔잔히 펼쳐졌다.
이어 서씨는 이날 점심 식사를 한 맛집 이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해시태그하고 친구에게 “브이로그 온도 봤어? 대박이야”라며 디엠(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서씨는 귀갓길에 집 근처 마트에 들러 우유, 생크림, 홍차 티백 등 좀 전에 브이로그에서 등장했던 밀크티 잼 재료들을 구입하는 걸 잊지 않았다.
자기 전에도 ‘영상 라이프’는 계속됐다. 유튜브에서 뷰티 유튜버 ‘혜인’의 채널 ‘혜인스 쇼윈도’(HEYNEE 's showwindow)의 영상을 클릭하는 건 서씨의 하루 중 마지막 일과다. 유튜버 혜인이 화장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템’으로 소개한 화장품이 괜스레 탐난다. “티브이(TV)에서 연예인들이 출연한 화장품 광고를 보면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로 느껴져 관심이 썩 안 갔는데, 혜인스 쇼윈도는 다르다. 영상으로 자주 접하다보니 친근하게 느껴져 더 신뢰가 간다.” 서씨의 말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같은 화장품을 구입하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잠들 수 있었다.
“서씨는 전형적인 ‘제트(Z)세대’다.” 문화마케팅 전문가 이경선(44) 컬처마케팅연구소(CUMI) 대표는 “유년 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한 덕에 유튜브 등을 보며 성장한 ‘디지털 원주민’인 제트세대는 물건의 가치를 매기고 소비하는 방식이 이전 세대와는 뚜렷하게 다르다”며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도 부모 세대와는 차별성이 높은 신인류”라고 말한다. 긴 통화보다는 단발성 온라인 메시지를 편하게 생각하고, 대기업 상품이나 유명 연예인보다는 일반인의 영상·사진에 등장하는 상품이나 인물을 더 선호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지난 1년 국내 소비시장은 제트세대가 점차 구매력을 가지면서 마케팅과 유통의 지형이 크게 바뀌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제트세대는 연령대로 보면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후반 태어난 이들을 말한다.
최근 국내 패션업계에서 등장한 주요 키워드도 제트세대다. 지난해 12월 한국패션협회가 ‘2018년 패션뉴스’ 3500여건과 주요 포털에 등장한 패션 관련 빅데이터 80여만개를 분석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패션업계의 기획·생산·유통·마케팅 등 전반이 제트세대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건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개인)의 도약이다. 한국패션협회 손지은(26) 주임은 “유튜브·인스타그램·아프리카티브이 등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일부 인플루언서는 제트세대 사이에서 웬만한 연예인을 넘어서는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며 “패션업체들은 앞 다퉈 이들을 초청한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늘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국내 금융업계도 소비의 핵심 연령층으로 떠오른 제트세대를 겨냥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지난해 12월 신한은행의 자체 분석에 따르면 제트세대의 소비증가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데, 2014년에 견줘 42%(2018년) 늘었다고 한다. 신한은행은 제트세대가 ‘혼밥’(혼자 밥을 먹는 행위)을 즐긴다는 걸 주목하고, 편의점 지에스(GS)25와 함께 이벤트를 진행했다. 신한은행 빅데이터센터 관계자는 “신한은행 모바일뱅킹 앱 쏠(SOL)을 최초 가입한 고객 3만명에게 해당 편의점의 인기 도시락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만든 것도 간편한 편의점 도시락을 선호하는 제트세대의 앱 가입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며 “앞으로 제트세대의 주머니를 열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이들이 주로 활동하거나 좋아하는 브이로그 등을 홍보 창구로 활용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2019년 새해부터 제트세대를 이해하려는 기성세대의 관심과 분석이 넘쳐난다. 올해를 전망하는 각종 트렌드 강연의 주제도 제트세대다. 지난해 12월13일에 열린 ‘2019 티-콘’(T-CON. 트렌드 콘퍼런스)이 대표적이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주최한 ‘엠제트(MZ) 세대로 총칭되는 밀레니얼 세대(1980~2004)와 Z세대(1995~2004)의 현재 모습과 2019년 전망’에 대한 마케팅 연구보고서 공개 행사였다. 이 행사를 진행한 송승화(31) 책임 매니저는 “중장년 국내 기업 브랜드 마케팅 관계자들이 대거 모였다. 티켓 1000장이 일주일 만에 매진됐다”며 “제트세대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체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최근 발간된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아클릭의 ‘제트(Z)세대의 스마트폰 이용행태 분석’ 보고서, 케이티(KT)경제경영연구소의 ‘제트(Z)세대를 위한 통신상품 진화 방향’ 보고서 등 봇물 터지듯 발표되고 있다. ESC도 그 물결에 동참해봤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그래픽 김은정 기자 ejkim@hani.co.kr
제트(Z)세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에 걸쳐 태어난 세대. ‘Z’는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로 ‘20세기에 태어난 마지막 세대’를 뜻한다. 타인의 가치관을 그대로 좇기보다는 ‘나답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한 세대다. 유년시절 스마트폰 등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디지털 원주민’이다. 이 때문에 ‘숨소밍’(숨 쉬듯 소신을 말함), ‘YOU아독존’(유튜브에선 모든 게 가능하다는 주의) 등 이 세대를 가리키는 신조어가 넘쳐난다. 2019년 패션업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이들 제트세대의 성향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