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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상남자 스타일’의 연애를 하고 싶다고요?

등록 2019-01-04 08:28수정 2019-01-08 16:45

곽정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

Q. 외국 여행 중 만난 꼭 연애하고 싶은 여자
‘들이대라’는 조언 따라 선물 주고 손을 잡았지만
계속 연락해보지만 답장은 오지 않아

A. 왜 상대방의 감정과 의사를 단정짓고 행동하나요
어떻게 ‘들이대는가’보다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
연애를 테크닉으로 접근해서 얻는 건 없을 것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Q 저는 27살 남자입니다. 지금까지 연애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고민은 이런 겁니다. 좋아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그 여자를 처음 만난 건 재작년입니다. 서로 외국에서 만났고, 첫 만남에서 큰 호감을 느껴 메신저 계정을 물어보고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습니다. 그녀는 제게 호감이 없어 보입니다. 아무튼 전 언젠가 꼭 연애해 보고 싶은 상대라고 생각해서 연락을 끊지는 않았습니다. 얼마 전 그녀와 한 번 만났는데, (제가 느끼기에) 분위기도 좋았고, 이야기도 많이 했어요. 그녀도 저를 나쁘게 생각한 것 같진 않습니다.

사실 외국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반해서 립밤 등 아기자기한 선물 몇 가지와 비싸지 않은 작은 핸드백을 샀었지요. 석 달 뒤 외국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 일이 있었거든요. 당시 다시 만났을 때 핸드백만 차마 주지 못했어요. 그녀가 제 맘을 알아차리는 것도 걱정됐고, 고작 두 번째 만남에서 너무 많은 선물을 주면 그녀가 큰 부담을 느껴 저와 멀어질까도 걱정됐어요.

그래서 얼마 전 그녀를 한국에서 만났을 때 그 핸드백을 건네면서 “그때 나 네가 맘에 들어서 이것도 주고 싶었는데, 주지 못했다”라며 줬습니다. 그녀도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받아도 되나?”라고 물어보며 “잘 쓰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 제가 손을 잡았는데, 그녀가 멈칫하며 손을 잡히더니 1분 뒤쯤 우리 사이가 이건 아닌 것 같다며 손을 뺐습니다. 그러고 제가 집에 도착하니 그녀로부터 카톡이 와있었는데, ‘재미있었고 자길 만나러 와줘서 고마웠고, 또 자길 좋게 봐줘서 고맙다, 다음에 맛있는 걸 사주겠다’ 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전 좀 행복했어요. 그녀가 제게 호감을 느꼈다고 볼 순 없겠지만, 그래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사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진 저도 그다지 마음에 확신은 없었어요. 하지만 만나고 난 뒤 더 좋아졌습니다. 이 여자와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습니다. 그래서 그다음 날 전화를 했고, 그녀는 일하는 중이라며 “왜?”라고 해서 제가 “그냥”이라고 답했습니다. 메신저로 ‘네가 좋아서’라고 말하면 안 된다고 인터넷에 많이 나와 있어서일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메신저 문자라도 ‘어제 만남 후로 네가 좀 더 좋아졌어, 전화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걸 하는 후회가 됩니다. 아무튼 그 뒤로 그녀가 경계하는 것 같더라고요. 얼마 전 그녀가 여행을 다녀온 후 만나자고 말했는데 이젠 무시합니다.

사실 제겐 이런 문제가 있는데요. 저는 그 여자도 좋지만 동시에 제가 하고 싶은 연애의 상, 되고 싶은 남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김어준 총수를 좋아했고 그의 연애상담을 참 많이 반복해서 들으며, 저런 남자가 되어야겠다, 연애를 저런 식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자는 절대 우회하지 말고, 간 보지 말고 오로지 직선으로만 들이댄다.’ 멋지다고 생각해서요. 꼭 그런 상을 실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요? 좀 천천히 둘러 갔으면, 그녀도 조금씩 마음을 열었을까 싶지만, 내 마음이 이렇게 확실한데 에둘러가는 건, 살살거리며 친분 쌓기용 문자를 주고받는 건, 재미도 없을뿐더러 밀당(밀고 당기기)이 아닐까 여겨졌어요. 좋아한단 말만 메신저로 하지 않고, 계속 밥 먹고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녀가 거기서 부담을 많이 느꼈는지 절 차단하진 않았지만, 대답은 없네요.

전 기만자일까요? 그녀를 좋아하는 것보다 그녀를 반드시 저런 방식으로 좋아할 수 있는 절 더 사랑하고 싶은 것일까요? 저는 저런 ‘들이대는 남자’가 되고 싶은데, 좀 급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과 급한 것, 또 기다려줄 줄 아는 것과 밀당을 하는 것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겠어요. 지금의 전 뭘 주의하는 게 좋을까요? 또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작가님도 들이대는 남자가 처음에는 별로였는데 좋아진 경험이 있나요? 그리고 전 이 여자와 어떻게든 다시 한 번만 더 만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들이대고 싶은 남자

A 한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지만, 1년 남짓한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이렇다 할 발전이 없는 채로 흐지부지되어 버렸네요. 아마도 당신에게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을 것 같고요. 냉정하고 단호하게 말해서, 이 편지 한 장만으로도 저는 당신이 어떤 이성과도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데 그것을 표현하는 것과 급한 것, 기다려주는 것과 밀당을 하는 것’의 차이점을 모르겠다고 하셨는데요. 네, 이것들을 특정한 기술이나 상태로, 내가 택해야 할 테크닉의 차원으로 본다면 헷갈리기가 십상이겠죠. 이 타이밍인가? 저 타이밍인가? 이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루에 열 두 번도 더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거예요. 상대방도 당신과 똑같이 감정이 있고, 의사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 말입니다. 당신은 계속 ‘그녀는 나를 나쁘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라는 판단 하에 행동해 왔는데, 하나 물어보고 싶네요. 당신은 상대방에게 큰 호감을 느끼니까 이런저런 행동을 하잖아요. 그런데 왜 상대방에 대해서는 ‘나를 나쁘게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 내가 더 다가가도 좋겠다’고 단정하나요? 나쁘지 않으니 고르는 건, 그래요. 편의점에 가서 급히 갈아 신을 양말 같은 걸 고를 때나 하는 생각의 방식이죠. 당신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갖는 감정에 대한 고려가 없어요. 그냥 ‘나쁘지 않아 하면 그다음은 내 몫이야’라고 생각하고 있네요. 관계를 만들어갈 지분이 당신에게 전부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어요.

그러니 맥락도 없이 갑자기 선물을 안겨 주면서 자신을 어필하려고 하는 겁니다. 맥락도 없이 아직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서 스킨십을 시도하고요.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차릴까 걱정하는 소심함은 소심함 대로 있는데 그 와중에 선물을 안겨주자마자 스킨십을 시도하는 이 내면의 불협화음을 어쩌면 좋을까요? 한 번이라도 상대방의 감정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 말대로 몇 번 보지도 않은 사이에, 당신 말대로 그리 비싸지 않은 작은 핸드백 하나 건네더니 갑자기 손을 잡는다면, 어떤 여자라도 당황하지 않았을까요? 아직 이렇다 할 감정선이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나를 당황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호감이 있다가도 사라지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머릿속에 유쾌한 느낌표가 아니라 불쾌한 물음표가 가득해지는 거죠. 한두 번의 물음표는 딱히 문제가 없었을지 몰라도, 매번 나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남자라면 어떤 여자가 그 관계를 더 가져가고 싶겠습니까?

그리고 ‘우회하지 않고, 간 보지 않고, 들이대는 남자’가 되고 싶다고도 하셨는데요. 네 그런 남성상이 멋져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하는 것이 자유이듯이, 상대방도 그런 당신을 부담스러워 하고 피하고 싶어 할 자유가 있지 않나요? 우회하지 않고 직선으로 들이대는 것, 소위 ‘상남자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그런 방법이 소용이 있을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그 방법’을 써서가 아니라 그 외의 모든 것들(서로의 취향, 경제관, 사고방식, 서로의 외모나 성격에 대해 느끼는 매력, 호기심 등)이 어느 정도 합치했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지, 어떻게 들이대는지가 중요할까요? 당신은 그렇습니까? 방식보다 중요한 건 사람 자체이죠. 여자는 그냥 적극적으로 들이대면 못 이기는 척 맘을 여는 소극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아직 모르시는 것 같아 알려드리는데요, 매력적인 남자에게 여자도 먼저 관심을 표시하고 데이트 신청을 합니다. 당신이 잘 보이고 싶은 상대를 제대로 볼 용기는 없고, 직진하라는 조언대로 행동할 용기는 있나요? 그 와중에 인터넷에서 본 조언 때문에 좋다는 말 한마디도 할 자신이 없다니, 당신은 이 와중에 확실한 주관도 없는 것 같네요.

많은 사람이 연애를 테크닉으로 접근합니다. 그러니 밀당을 하라는 사람들이 있고, 또 직진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죠. 누군가를 만나 친밀해지는 이 아름답고도 처연한 시간을 기술적으로 접근해서 얻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 좋은 관계는 내가 진심으로 나다울 때,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그 사람의 고유한 무엇을 함께 나눌 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테크닉은 길거리에서 호객할 때는 먹힐지 몰라도, 연인을 고를 때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어서 깨달으셔야 할 텐데요. 앞으로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낀다면, 그 감정을 바탕으로 그 사람을 조금씩 알아가 보겠다는 마음을 먹으세요. 그 사람을 회유해 당장 연애 상대로 삼겠다는 성급함이나 계획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가 매력적인 사람인지 냉정하게 돌아보십시오. 마지막으로 연애에 대한 편견, 사람에 대한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이런저런 조언들에 휩싸여 혼란스러워하지 마시고, 부디 당신 자신이 되십시오. 그런 노력을 기울이기에 스물일곱은 늦은 나이는 아닙니다만, 적어도 그녀와의 관계에선 이미 많이 늦은 것 같네요. 차단하지 않았다고 가능성이 있겠어요? 다시 만나는 방법을 물으셨는데, 이 질문을 대답으로 대신합니다.

곽정은 작가

※ 사랑, 섹스, 연애 등 상담이 필요한 분은 사연을 보내주세요. 곽 작가가 직접 상담해 드립니다. 보낼 곳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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