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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내 나이가 어때서?···마흔, 잔치는 시작됐다

등록 2018-12-20 09:20수정 2018-12-20 09:35

커버스토리┃마흔

ESC <마흔 문학상> 당선작 두 편
2등 “나를 더 알게 되는 나이 될 것
3등 “대화에 참여하고 체력을 키우자”
클립아트코리아.
클립아트코리아.
ESC가 판을 깔았다. <마흔 문학상>을 연다는 방을 지난 11월29일 처음 붙였다. 내일모레 마흔인 독자부터 엊그제 마흔인 독자들까지 <마흔 문학상>에 많은 관심을 보여줬다. ESC 1면에는 1등 작품을, 이곳 5면에는 2, 3등 작품을 싣는다. 2등 당선 작품은 마흔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3등 당선 작품은 마흔에 용기를 낼 수 있게 한다. 마흔으로의 여정에 든든한 길잡이가 될 것만 같다.

정겨운(서울시 강동구 강동대로)
마흔, 나를 더 알아가는 날들

엊그제 머리를 빗다가 두 뼘이 넘는 길이의 흰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머리카락은 한 달에 1㎝ 정도 자란다는데, 그렇게 계산하면 이 흰 머리카락은 무려 2년 전부터 머릿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문득 세월이 느껴졌다. 사는 게 바빠 자각하지 못했으나 시간은 내 흰 머리카락 끝에 꾸준히 쌓이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곧 마흔이다. 어릴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초현실적인 나이에 근접해가고 있다. 그런데 서른 즈음으로 다가서던 때와 기분이 사뭇 다른 것은 왜일까. 청춘을 강제로 빼앗긴 것처럼 상심했던 서른과 달리 마흔을 앞둔 나는 덤덤하기까지 하다. 나이 좀 먹는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의 여유랄까.

마흔 즈음에 특별히 좋은 것 하나. 더는 거울을 보는 게 그리 불편하지 않다. 10대, 20대에 나는 콤플렉스 덩어리였고, 30대에는 번 돈의 상당 부분을 다양한 스타일링을 위해 바쳤다. 그러고도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들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내게 어울리는 스타일링을 알게 되었다. 나는 목 티셔츠보다는 브이넥 티셔츠가, 하이힐보다는 첼시 부츠가 어울린다. 펌은 내 둥근 얼굴을 커 보이게 하지만, 절대 쓰지 않으려 했던 안경은 사실 내게 제법 잘 어울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잘 어울리는 차림을 하니 20대 때보다 지금이 오히려 더 나아 보인다. 나는 더는 거울 속 내 모습을 엄격하게 비판하지 않게 되었다.

더 잘 알게 된 것은 스타일만이 아니다. 나는 내게 잘 맞는 생활양식, 사람, 음식 등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나는 공연장보다는 미술관을 좋아하고, 마트보다는 도서관에 가는 걸 좋아한다. 나는 소주나 사케보다는 와인과 수제 맥주를 좋아하고 넓고 얕은 인간관계보다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선호한다. 오랜 시간을 거쳐 알게 된 나의 취향들이 오래 입은 잠옷처럼 나를 편안하게 한다.

그러나 더 알게 될 것이 없다면, 그것만큼 지루한 것도 없을 것이다. 마흔이 좋은 건 아직 알아가야 할 게 많기 때문이다. 내가 스키와 스노보드 중에 무엇을 더 좋아할지, 파리와 방콕 중에 어디를 더 좋아할지, 또 앞으로 아이를 몇 명이나 낳을지, 어떤 엄마가 될지, 내 일로 내가 어디까지 나아갈지…. 앞으로 경험할 것들이 무척 궁금해진다. 설사 아프고 힘든 일이 닥칠지라도, 그것이 지나고 나면, 나는 나를 더 사랑하게 될 것을 알기에…. 다가올 모든 일을 반짝이는 눈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흔 문학상> 2등 당선자 정겨운씨에게 ‘어른의 휴식을 위한 숲 속 아지트’로 재탄생한 워커힐 호텔앤리조트의 ‘더글라스 하우스’ 1박 숙박권을 드립니다.

백옥신(부산시 부산진구 전포대로)
마흔인 나에게 예의를 갖추자

그랬다. 십여 년 전 서른이 다가올 때 나는 ‘아, 드디어 서른이구나’와 ‘어이쿠, 서른이라니!’하는 기분 사이에서 남몰래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일찍 시작한 카운트다운 덕분에(!) 날이 갈수록 디데이의 의미와 목적은 흐지부지되고 결국엔 오는 지 가는 지도 모르게 새해 아침을 맞았다.

정작 서른의 의미는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그러고도 또 일 년쯤 지난 뒤에야 무겁게 (그리고 아프게) 다가왔다. 서른의 의미는 서른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마흔의 의미도 마흔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될 테니 ‘내일모레 마흔’ 말고 ‘엊그제 마흔’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떤가. ‘내일모레 마흔’ 잔치에 초대받지 못해서 악담하는 거 아니니 안심해라. 마흔을 지나며 지켜야 할 것은 다음 두 가지뿐이다.

말에 대하여 - 몇 년 전 어디선가 ‘사람들 대화의 반 이상이 실상은 자기 자랑’이라는 말을 주워 읽고는 용기백배하여 말수를 확 줄였다. 남은 반의반이 ‘자식 자랑’이라는 사실까지 깨닫고 나면 누구라도 도전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나는 ‘딱딱해 보이지만 이야기를 나누면 재밌는 사람’에서 그저 ‘딱딱해 보이는 (늙은) 사람’이 됐다.

만국의 마흔이여. 남들과의 대화에 의지를 갖고 참여하라. 나이도 들었으니 이제 말도 좀 줄이라는 등의 꼬드김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런 다짐은 몹시 유치할 뿐이라고 벽에 써 붙이자. (안 붙이면 까먹는다.)

체력에 대하여 - 돈은 쓰지 않으면 쌓인다. 근육은 아니다. 안 쓰면 언젠가 사라진다. 어제 뛰던 건널목을 오늘도 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느 추운 날 길바닥에 엎어져 후회하게 된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의사가 우리에겐 ‘노동’ 말고 ‘운동’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진작 그걸 가훈으로 삼고 벽에 걸었어야 했다. 만국의 마흔이여. 이미 늦었다. 하지만 안 하는 것보다 낫다. 쉽게 관두지 않을 정도의 강도와 흥미를 가진 종목을 찾아라. 지속가능한 운동 계획을 세워 지금 당장 벽에 써 붙이자. (안 붙이면 까먹는다.)

초등학생의 시간으로 치면 마흔은,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갔다가 후다닥 숙제를 마치고 친구들이랑 놀다 들어와 저녁을 먹고 난 즈음이다. 텔레비전에서 막 밤 9시 뉴스를 시작할 즈음. 깜빡 잊은 숙제나 준비물이 있다면 그나마 부리나케 시작할 수 있을 정도. 그래도 괜찮다. 새삼 불행이 닥친 것이 아니다. 그저 하루가 저무는 것이다.

‘마흔인 나’는 다른 사람이다. 그이는 내가 아니다. 처음 만나는 낯선 사이이니 예의를 갖추고 선의를 보여라. 하고 싶은 말은 그뿐. 다른 건 모두 잊어도 그만이다. 걱정하지 마라. 나쁜 것 빼고는 다 좋다. 정말이다.

▶<마흔 문학상> 3등 당선자 백옥신씨에게 특급호텔 더 플라자 객실(디럭스룸) 1박 숙박권을 드립니다.

마흔 40살. 공자는 40살에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다며 ‘불혹’이라 일컬었다. 40살 안팎의 사람을 ‘중년’이라고도 한다. 정여울 작가는 <마흔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마흔은 멀리서 그저 아련히 반짝이기만 했던 삶의 숨은 가능성들이 이제야 그 빛을 발하는 시기다’라고 한다. 설렘과 불안 사이 어디엔가 선 사람들, 마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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