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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참숯에 잘 구운 부챗살같은 맛, 고흥 옥금마을 굴 이야기

등록 2018-12-13 09:20수정 2018-12-13 20:52

커버스토리┃
9가구 거주 고흥군 과역면 옥금마을
자연이 키운 굴 생산
구운 한우 식감이 나
고흥가면 피굴도 맛볼 만
전남 고흥군 과역면 백일리 옥금마을에서 채취한 자연산 굴로 만든 찜. 박미향 기자
전남 고흥군 과역면 백일리 옥금마을에서 채취한 자연산 굴로 만든 찜. 박미향 기자

남도에도 칼바람이 불었다. 해풍 위에 떠도는 송곳 같은 바람은 여행자를 집어삼킬 듯 매서웠다. “어여, 닫아. 찬바람 들어온당께. 얼었네! 어서 왔어?” 지난 6일 서울에서 차로 4시간 이상 걸리는 한반도의 끝자락 전남 고흥군 과역면 백일리 옥금마을. 정순금(74) 할머니가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꾸덕꾸덕 말린 조기 같은 그의 손에선 물컹한 굴 향이 났다. 마을회관은 찬 겨울을 놀리기라도 하는 듯 절절 끓었다. 볼이 빨개지고 언 몸이 녹았다. “꿀 먹어보랑께, 이거이 꿀젖꼭대기여. 이것부터 먹어야재” 순금 할머니가 찐 굴의 껍데기를 벗겨 알맹이를 입에 쭉 밀어 넣어 준다.

전라도 해안 마을에서 ‘굴’은 ‘꿀’이다. ‘꿀’처럼 달다는 의미다. 옥금마을 정순금 할머니가 건넨 ‘꿀’을 씹자마자 동공이 두 배가 됐다. ‘이것 굴 맞아? 소고기 아니야!’ 바다 식품 굴에서 구운 한우의 맛이 났다. 본래 굴의 관자는 쫄깃하지만, 통통하고 부드러운 살은 물컹한 법이다. 옥금마을 굴은 달랐다. 참숯에 잘 구운 한우 부챗살 같은 식감이다. 굴 알맹이의 가장자리인 날개 부위도 까만색이 아니라 옅은 황토색이다. “당연하재, 우리 ‘꿀’은 쫄깃해!” 순금 할머니 옆에 있는 김영자(78) 할머니가 거든다. 이 마을을 안내 한 전남 고흥군청 정동 건설과장은 “이 지역 굴은 고흥에서도 특별하다. 햇볕 쫙 받고 자란 자연산인데, 크기도 크다. 3~6년 자란 굴”이라고 말한다. 6년근 인삼은 들어봤어도 6년산 굴이라니, 의심이 갔다. “자연산이라고요? 진짜요, 진짜요?”라고 재차 묻자 방에 있던 장계심(51) 전 부녀회장이 “정 믿기 어려우면 나가자”고 한다. 그가 김영자(78)·한정자(86)·허덕자(83)·정일순(65)씨를 부추긴다. 주민등록증엔 출생연도가 ‘67’이라고 적혔지만 본래 자신은 1964년에 태어났다는 정씨. 아버지의 실수로 동생의 출생연도와 바뀌었다고 한다. 재밌는 사연이다. 그런 그가 “여긴 축사도 없고 공장도 없어, 청정지역이여. ‘꿀’이 맛날 수밖에 없재”라고 말한다.

고흥군 과역면 백일리 옥금마을의 노인들이 개펄에서 굴을 채취하고 있다. 이들이 채취하는 굴은 드물게 자연산 굴이다. 박미향 기자
고흥군 과역면 백일리 옥금마을의 노인들이 개펄에서 굴을 채취하고 있다. 이들이 채취하는 굴은 드물게 자연산 굴이다. 박미향 기자

10여분 뒤 마을 앞 개펄. 작업복으로 단단히 무장한 할머니 부대가 모였다. 전설 속 아마조네스가 따로 없다. 15㎝ 길이의 나무 손잡이에 단단하게 달린 ㄱ자 모양의 쇠막대기를 든 순금 할머니는 빠른 손놀림으로 ‘꿀’을 캐기 시작했다. 허리가 ‘쪼시개’(전라도에서 굴 캐는 도구를 부르는 지역 말)처럼 됐다. 쪼시개로 껍데기 안에 굴 알맹이를 빼더니 입에 넣어 준다. “여그 여그 이게 다 꿀이야 꿀! 괴기 맛이 나재” 한우 장조림 같다. 옥금마을 굴은 특별하다. 고흥의 다른 지역에선 경남이나 서해안처럼 양식 굴을 생산하지만, 이 지역은 오롯이 자연의 품에서만 자란 굴을 유통한다.

고작 9가구인 작은 마을에 보물이 있었다. “우덜은 손댄 적이 없어, 물 빠지면 나가 캐고 물 들어오면 방에 들어오고 한 게 다여” 순금 할머니의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내 유통하는 굴 대부분은 양식한다.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수하식과 투석식. 수하식은 경남 통영, 거제 등 서해안에 견줘 조수간만의 차가 적고, 수심이 깊은 남해에서 주로 하는 방식이다. 얕은 바다에 세운 틀에 봄철 산란한 굴 종패가 붙으면 배로 10여분 걸리는 바다 양식장에 옮겨 키운다. 24시간 바다 속에 잠긴 채 굴은 큰다. 햇볕을 직접 받지 않기에 색이 맑고, 먹이 활동도 충분히 해 크고 통통하다. 투석식은 종패가 붙을 수 있는 돌이나 나무 발을 개펄에 설치하고, 거기에 붙어 성장한 굴을 채취하는 방식이다. 옥금마을 주민의 굴 생산방식은 언뜻 보면 투석식 같지만, 주민들은 일부러 나무 발이나 돌을 설치하지 않는다. 그저 굴 껍데기를 다시 개펄에 뿌려놓는 게 다다. 그런 점에서 딱히 투석식이라고 정의하기 어렵다. 정동 과장은 “양식 굴이 많이 유통되다 보니 사람들 입맛이 그것에 길들여졌다. 진짜 자연산 굴 맛을 모른다. 더구나 양식 굴은 껍데기가 매끈하고, 자연산 굴은 울퉁불퉁 못생겼다. 그러니 진가를 더 모른다. 여긴 자연산 굴이 나오는 지역”이라고 말한다. 할머니들이 캔 이 지역 자연산 굴은 지역 상인들이 사서 재래시장에서 팔거나 택배(010-6390-0570·문자로만 주문 가능)로 팔린다. 가격은 양식 굴과 비슷하다. 1kg에 1만2천원.

옥금마을 굴은 울퉁불퉁 모양이 못생겼지만 쫄깃한 맛을 자랑한다. 박미향 기자
옥금마을 굴은 울퉁불퉁 모양이 못생겼지만 쫄깃한 맛을 자랑한다. 박미향 기자

옥금마을 주민들이 차려준 굴 밥상. 박미향 기자
옥금마을 주민들이 차려준 굴 밥상. 박미향 기자

19살때 충남의 한 방직공장에 취직했다가 25살에 결혼하면서 고흥에 온 정순금 할머니에게 ‘꿀’은 특별하다. 사고로 세상을 먼저 등진 남편을 그리워할 틈도 없이 ‘꿀’을 까 2남 2녀를 키웠다. 딸들은 “엄마가 죽은 날엔 하늘에서 피가 쏟아질 거다”라며 건강을 챙기라고 신신당부한다. 고흥군 과역면 백일리 옥금마을 굴엔 사연도 많다.

고흥에 가면 반드시 먹어봐야 할 음식이 또 있다. 고흥에만 있는 음식 ‘피굴’. 낯선 이름의 이 굴 음식은 고흥에서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음식으로 도시로 나간 이들이 고향 고흥에 오면 제일 먼저 찾는 음식이다. 70도 물에 굴을 껍질째 20~25분 정도 삶은 다음, 칼로 알맹이를 파낸다. 삶은 물에 알맹이를 씻은 다음, 물은 한 번 더 끓여 식혀둔다. 그 물에 굴 알맹이, 쪽파, 참깨 등을 섞으면 완성이다. 식당 ‘분청마루’ 김순욱(60) 주인은 “반드시 껍질째 삶아야 제맛이 난다”고 말한다. 분청마루에서 맛본 피굴 한 그릇은 신기한 맛이었다. 차가운 물과 더 차가운 굴이 만나 더 찬 겨울을 이겼다. 김씨는 “자연산 굴로 끓여야 물이 뽀얗고 맑다. 너무 진해서 오히려 맹물을 타 간을 한다”고 말한다. 그도 어릴 때 어머니가 겨울 나절 마루에 햇살이 들면 뽀얀 국물에 굴을 밥처럼 만 피굴을 만들어줘서 그것을 맛보며 컸다.

고흥의 전통음식 피굴. 박미향 기자
고흥의 전통음식 피굴. 박미향 기자

분청마루 차림표에 피굴은 없다. 한정식 등의 메뉴를 주문하면 반찬과 같이 나온다. 지금 고흥에선 피굴만 파는 곳은 없다. 식당에 가기 전 미리 주문해야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 됐다. 분청마루(고흥군 두원면 운대리 141-8/061-834-7242), 중앙식당(고흥군 도화면 당오리 540-28/061-832-7757) 다미식당(고흥군 두원면 용산리 818-1/061-835-4931), 소문난식당(고흥군 고흥읍 서문리 218-25/061-833-7787) 등에서 맛볼 수 있다.

2013년 고흥군 봉래면 예내리에 있는 나로우주센터에서 국내 첫 우주로켓 나로호가 발사되면서 유명해진 고흥. 그전까지만 해도 고흥은 인적이 드문 조용한 고장이었다. 지금은 우주인의 꿈을 품은 아이의 손을 잡고 고흥 여행에 나선 가족들이 부쩍 늘었다. 간 김에 피굴 맛도 보면 추운 겨울 남도 여행이 완성된다.

고흥/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바다의 우유’로 불리는 겨울철 제철 식재료다. 칼슘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붙은 별명이다. 바위에 붙어 자라는 굴을 ‘석화’로 부르기도 한다. 굴 생산지는 서해안과 남해안에 고르게 분포해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먹는 굴 종류는 ‘참굴’이다. 9월부터 수확을 시작하지만 보통 11~2월을 굴의 제철로 본다. 김장 속 재료나 국요리, 젓갈 등에 쓰이던 굴은 최근 고급화해 오이스터 바나 유명 레스토랑에 공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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