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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퇴근길 깔깔대고 싶다면? 코미디 극장에 오세요~

등록 2018-11-08 09:19수정 2018-11-13 16:05

커버스토리|농담

최근 스탠드업 코미디 극장 성황
지상파 개그 프로그램 일부 폐지가 한 요인
‘코미디 회식’하는 직장인도 다수
’윤형빈 소극장’. 사진 김포그니 기자
’윤형빈 소극장’. 사진 김포그니 기자
“어제 저녁, 클럽에 갔더니 ‘깜짝 생일파티’라도 열린 줄 알았다. 내 얼굴을 보고 여자들이 한숨 쉬는 소리를 촛불 끄는 소리로 순간 착각했다.” 지난 3일 코미디 전용 극장 ‘제이디비(JDB) 스퀘어’에서 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대니 초가 능숙한 한국어로 자학 개그를 선보이자 객석이 웃음으로 들썩였다. 17년간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을 해온 그가 지난 7월 한국을 찾은 이유는 뭘까. “한국 코미디 시장에도 미국처럼 ’스탠드업 코미디’ 바람이 불고 있다. 실제 전용 극장들이 많이 생겼다.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만큼 국내 스탠드업 코미디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서울 홍대·대학로·강남 일대 코미디 전용 극장을 찾아가 봤다.

“나이 32살에 직장 때려 치고 코미디언을 한다고 하니까 어머니가 기뻐하셔요. 그전까지는 제가 성인용품을 팔았거든요. 여러분도 꿈이 생겼는데 부모님이 반대할 것 같으면 우선 성인용품부터 팔아 보세요.”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 전용 극장 ’코미디 헤이븐’. 스탠드업 코미디언 최정윤(32)씨가 무대 위에 올라, 새로운 직업을 택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사연을 무심한 어투로 말하자 관객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최정윤씨. 사진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스탠드업 코미디언 최정윤씨. 사진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최씨처럼 입담 하나로 좌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이가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이용주(31·<에스비에스> 개그맨 공채 16기), 정재형(30·<한국방송> 개그맨 공채 29기), 김민수(27·<에스비에스> 개그맨 공채 16기), 박철현(26·스탠드업 코미디언) 등이 무대 위에 올라 각자 5∼10분씩 개인적 경험에서부터 19금 성적 농담까지 ’말발’을 과시하며 시선을 잡아 끌었다. 이날 방문이 다섯 번째라는 직장인 조혁진(27)씨는 “지난 주 공연과 비슷한 내용의 농담을 하더라도 관객의 분위기에 따라 어투와 손 동작이 달라져서, 그때마다 색다르게 재밌다“고 말했다.

18~19세기 영국과 미국 등에서 출발했으나, 1970년대부터 미국에서 가장 융성한 스탠드업 코미디는 말 그대로 코미디언이 마이크를 들고 서서 관객에게 농담을 건네는 공연이다. 관객의 반응에 따라 즉흥적으로 말을 ’변주’하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농담의 유형도 다양하다. 보통은 각자의 일상을 농담 소재로 쓰지만, 미국의 유명 스탠드업 코미디언 앨리 웡처럼 남녀 차별을 주제로 사회 비판을 담기도 한다.

한 예로 앨리 웡은 지난해 9월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윈터가든 코미디 극장에서 가진 공연에서 이렇게 ‘농담’했다.

"사람들이 저한테 "앨리, 여기서 공연하는 동안 애는 누가 봐요?"라고 물어 보는 거, 정말 성차별적이에요. 누가 애를 보냐고요? 티브이(TV)가 (애기를) 보고 있습니다, 아시겠어요들? 창문도 열려있고, 애 무릎에 ‘곰 젤리’ 비타민도 올려놨어요. 애는 아주 괜찮다고요."

스탠드업 코미디 전용 극장 ‘코미디 헤이븐’. 사진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스탠드업 코미디 전용 극장 ‘코미디 헤이븐’. 사진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이렇듯 부담스러운 소재마저 웃음으로 소화할 수 있는 언변도 갖춰야 하기에 스탠드업 코미디는 코미디언들 사이에서도 가장 고난도 코미디로 불린다. 그럼에도 최근 몇 년 사이 서울 홍익대 일대 등에는 코미디 극장들이 삼삼오오 들어서고 있다.

2015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개관한, 윤형빈(<한국방송> 개그맨 공채 20기)의 ‘윤형빈 소극장’, 이듬해 개관한 정태호(<한국방송> 개그맨 공채 23기)의 ‘정태호 소극장’에 이어 지난 7월 김대희(<한국방송> 개그맨 공채 14기), 김준호(<에스비에스> 개그맨 공채 5기) 등이 소속된 제이디비 엔터테인먼트가 설립한 ’제이디비(JDB) 스퀘어’가 대표적인 코미디 전용 극장이다. 앞서 ‘코미디 헤이븐’도 지난 6월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코미디언 지망생 및 유명 코미디언들이 정통 스탠드업 코미디를 비롯해 만담, 슬랩스틱(몸으로 웃기는 코미디) 등을 선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해 5월 <에스비에스>(SBS)의 개그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폐지됨에 따라 갈 곳 잃은 코미디언들이 이 분야로 더욱 눈을 돌리면서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이 한층 활발해졌다고 한다. 방송 밖으로 내몰린 젊은 개그맨들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나선 무대다 보니 스탠드업 코미디의 ‘꽃’이라 불리는 애드리브(즉흥 입담)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지난 3일 저녁 8시, ‘제이디비(JDB) 스퀘어’에서 선보인 공연 <옴니버스 스탠드업 코미디쇼>에서도 애드리브 열전이 펼쳐졌다. 이곳에서는 애드리브에 관객이 참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스탠드업 코미디언 김영, 김민기가 만담을 펼치면 관객이 즉흥적으로 끼어들어 대사를 바꾸는 식이다.

김영이 “내가 유미랑 얼마나 깊은 사이인 줄 알아!?”라고 말하자, 김민기가 되받아친다. “얼마나 만났기에?” 이때 관객석에서 “10분~”이라는 말이 나온다. 어쩔 수 없이 김영은 “시..십분”하고 피시식 웃어 버린다. 관객이 하는 말을 그대로 읊어야 하다 보니 우스꽝스러운 순간이 연출되는 일이 많다. 관객도 즐겁고 코미디언도 관객 덕분에 웃는 순간이다.

’더굿시어터’에서 공연 중인 개그맨우먼 김영희. 사진 ’더굿시어터’ 제공
’더굿시어터’에서 공연 중인 개그맨우먼 김영희. 사진 ’더굿시어터’ 제공
4일 저녁 7시 ‘윤형빈 소극장’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아니, 이럴 거면 대본을 왜 짰어요. 형. 왜 자꾸 애드리브 치는 건데?” 공연 중 정찬민이 윤형빈에게 갑자기 푸념을 늘어 놓자, 당황한 윤형빈이 웃음을 꾹꾹 참으며 “대본을 읽으면 그게 연극이지. 스탠드업 코미디는 원래 즉흥적으로 하는 거야”라고 답한다. ’빵’ 터지는 건 관객의 몫이다.

이 극장의 경우 매주 일요일 저녁은 성적인 농담 등 수위 높은 내용 없이 전체 관람가 수준의 스탠드업 코미디와 코미디 상황극을 선보인다고 한다. 스탠드업 코미디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을 위해 개그 아이돌 그룹도 등장했다. 꽃미남 외모를 가진 20대 ‘훈남’ 4명과 원시인 머리를 한, ‘아이돌’이라고 하기엔 어색한 한 명이 한 팀이다. 춤을 추다가 갑자기 자세를 멈춘 뒤 한 명씩 돌아가며 애드리브를 친다. “나는 너의 사랑꾼∼”을 외치며 ‘훈남’ 4명이 차례로 구호를 외치자 문제의 ‘원시인’이 뒤늦게 돌아서며 구호를 외친다. “난 너의 똠양꿍(꾼)!”

모녀가 가면 좋을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도 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코미디 전용 극장 ‘더굿시어터’에는 매주 금요일 밤 10시 <스탠드업 라이브 코미디쇼 인(in) 대학로> 공연에서 김영희(<한국방송> 개그맨 공채 25기)와 젊은 개그맨들이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인다. 어머니, 아줌마, 모녀 등 여성을 소재로 한 농담이 등장하지만 여성을 비하하진 않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불쾌하지 않다.

’정태호 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이창호(사진 왼쪽)와 곽범. 사진 ’정태호 소극장’ 제공
’정태호 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이창호(사진 왼쪽)와 곽범. 사진 ’정태호 소극장’ 제공
요즘엔 코미디 공연을 단체 관람하는 ‘코미디 회식’도 늘었다고 한다. ‘정태호 소극장’의 경우 주로 직장인들이 회식 겸 단체 관람을 위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직장인에 대한 농담이 자주 등장한다.

지난 1일 저녁 8시 연세대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팀 60여명이 회식 장소로 이곳을 찾았다. 회식 때마다 연극, 영화만 보다가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에 있다고 해서 호기심에 와봤다고 한다. 이날 직장 상사·부하 직원으로 분한 이창호(<한국방송> 개그맨 공채 29기)와 곽범(<한국방송> 개그맨 공채 27기)의 만담이 펼쳐졌다.

“이 대리~”, “앗, 대리 부르셨나요? 3만원입니다.”, “아니, 무슨 소리야. 여긴 회사예요. 대리답게 행동하세요. 커피나 타 와요.” “네!(커피를 타면서 종이컵에 침을 뱉는다)” “아니, 이 대리. 그렇게 대놓고 커피에 침을 뱉으면 어떡합니까?”, “앗, 죄송합니다.(뒤돌아서 종이컵에 침을 뱉는다)”

이날 관람한 이들 중에 상대적으로 젊은 축에 속하는 이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중환자실 담당 직원 이지연(27)씨는 “직장의 애로 사항을 개그로 풀어줘서 더 통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며 만족해 했다.

슬슬 날씨가 추워졌다. 따뜻한 실내에서 도란도란 모여 즐겁게 웃으면 좋을 날들이다. 이씨처럼 직장 스트레스를 풀거나, 가족·친구 간의 정을 다지고 싶다면, 퇴근길이나 주말 저녁 코미디 극장으로 가보는 건 어떨까.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꿀잼&농담: 남을 웃기려는 말, 유머가 섞인 말을 뜻한다. 유머의 라틴 어원은 ‘수액, 흐르다’로 상황을 유연하게 만든다는 의미가 있다. 시의적절한 농담은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지만, 부적절한 농담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재미있는 농담은 ‘꿀잼’, ‘유잼’, ‘빅잼’, ‘레전드’로 표현하며, 채팅식 반응은 주로 ‘ㅋㅋㅋㅋㅋㅋㅋㅋ’다. 문화권마다 비슷한 형태의 채팅 용어가 있다. 영미권은 ‘lololoololololo’, 'kekekekekekeke', 타이(태국)는 ‘5555555555', 인도네시아는 ‘wkwkwkwkwkwk’, ‘kwkwkwkkwkw’, ‘hahahhahahaha'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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