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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그림같은 풍경 뒤 역사 흔적 빼곡한 가을 간이역

등록 2018-10-11 09:21수정 2018-10-12 20:15

커버스토리│가을 간이역
마음 평화 찾아 떠나는 가을 여행
소박한 볼거리 많은 간이역 가볼 만
향나무·은행나무 등 아름다운 자연
추억 품은 그림 같은 풍경들
근대사 흔적도 가득···지금을 돌아보게 하는 여행
경기 양평군 지평면 일신리의 폐역인 구둔역이다. 코스모스 피어난 철길에서 젊은 연인 한쌍이 손을 잡고 걷고 있다. 이병학 선임기자
경기 양평군 지평면 일신리의 폐역인 구둔역이다. 코스모스 피어난 철길에서 젊은 연인 한쌍이 손을 잡고 걷고 있다. 이병학 선임기자

가을 하늘이 높아 보이는 건 들판이 몸을 낮추기 때문이다. 벼들은 고개를 숙이고, 감나무 가지는 땅을 향해 늘어졌다. 나뭇잎은 떨어져 낮은 곳에 쌓인다. 쌓였다가 흩어져 더 낮은 곳으로 간다. 모두 낮추니 세상은 푸른 하늘 아래 자못 평화로워 보인다. 요즘 여행 테마는 힐링이 대세다. 치유든 회복이든 재충전이든, 기본은 욕심을 버리고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있다.

깊어가는 가을 이맘때, 눈높이를 좀 낮추고 소박한 볼거리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생각해볼 만하다. 가을이라면 평온한 휴식을 위해 굳이 특별한 장소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 푸른 하늘 아래 깔린 그저 눈에 들어오는 눈부신 풍경만으로도, 몸의 휴식을 얻고 마음의 양식을 거둘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니, 다들 ‘가을 여행’, ‘가을 여행’ 하는 것이다.

‘휴식과 양식’이 기다리는 가을 들판 한 귀퉁이에 소박한 볼거리, 간이역도 있다. 철길 뻗은 곳이면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역 건물이다. 아담하고 허름하고 촌스럽지만, 정겹고 예쁘고 친근한 철도 정거장이다. 멈춰 서는 열차가 뜸하거나 아예 없고, 여느 여행지에 비해 찾는 이는 적어 한적하면서 볼거리는 짭짤한 가을 간이역으로 떠나보자.

경북 군위군 산성면 화본역. 열차카페와 급수탑 앞에 서 있는 연인. 특히 화본마을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로 유명하다. 이병학 선임기자
경북 군위군 산성면 화본역. 열차카페와 급수탑 앞에 서 있는 연인. 특히 화본마을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로 유명하다. 이병학 선임기자
이맘때 간이역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커다란 은행나무·벚나무·향나무·느티나무 들에 둘러싸인 작고 오래된 역사(驛舍), 박공지붕(경사가 급한 지붕) 밑 미닫이 출입문 ‘드르륵’ 열고 대합실로 들어서면, 반기는 작은 포스터 크기의 열차시간표·여객운임표, 그리고 서너 사람이 앉아도 비좁아 보이는 긴 나무의자…. 승강장 안쪽에선 철길 따라 한없이 코스모스들이 달려가고, 쪽빛 하늘 흰 구름도 달려간다. 탈 사람도 마중 나온 사람도 여행자도 역무원도 가끔 시계 보는 것 말고 특별히 할 일이 없어 보이는 기다림의 시간이 간이역에 고여 있다.

하루 서너 번이라도 열차가 서는 간이역은 그렇고, 폐역이 되어 옛 역사와 일부 철길만 남은 곳들은 좀 다르다. 젊은 쌍들은 예쁜 그림 같은 간이역 풍경 속에 빠져 구석구석 눈에 담고 가슴에 담고 인생샷도 담는다. 나이 든 쌍들은 그 옛날의 고향 역, 어린 시절 외갓집 역, 학창시절의 통학열차 역, 군 시절의 휴가열차 역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는다.

간이역이 아름다운 추억만 품고 있는 곳은 아니다. 오래된 간이역들에는 일제강점기 수탈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는 것도 알아두면 좋다. 일제가 한국인의 교통 편의만을 위해 철도를 깔지는 않았다. 대륙 침략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한반도의 곡물·광물·임산물의 일본 반출을 위해 철도를 곳곳에 개설했다. 특히 호남평야 일대의 철도와 역들의 역사(歷史)는 ‘곡물 수탈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이역 주변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일본식 가옥들, 일본인이 운영하던 대형 정미소, 미곡창고 등이 그 흔적들이다. 아픈 역사를 돌아보면, 지키고 보존해야 할 것들이 새로 보인다.

그림 같은 가을 간이역들을 찾아가려면 무궁화 열차를 타고 가야 할까? 그렇지 않다. 아니, 가볼 만한 간이역들 중에는 열차를 타면 여행이 더 불편해지는 곳들이 많다. 열차 간격이 뜸한 곳이 대부분이고, 열차가 정차하지 않거나 선로가 바뀌어 아예 열차가 다니지 않는 폐역도 많기 때문이다. 몇 곳의 간이역을 함께 둘러보려면 자가용을 이용하거나 버스 등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좋다.

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간이역

행정적으로 분류하는 철도역의 하나. 역장을 배치한 보통역과 달리, 역장을 두지 않고 여객 또는 화물을 취급한다. 철도공사 직원이 배치돼 있으면 ‘배치 간이역’, 없으면 ‘무배치 간이역’으로 부른다. 일반적으로는 폐역을 포함해, 작고 조용하고 정겨운 시골 역을 가리킨다. 대부분 간이역엔 일제강점기 수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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