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송현씨는 아나운서 출신으로 최근 수중전문 유튜브 채널 ‘송현씨 필름’을 운영한다.
2006년 <한국방송>(KBS) 32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한 최송현(36)씨는 2008년 5월 돌연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는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살면서 미쳤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면 너는 단 한 번도 목숨 걸고 도전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라며 퇴사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도전을 강조했던 그는 배우로 활동하다 2015년에는 ‘국제프로다이빙강사협회’(PADI)에서 주최하는 스쿠버다이빙 강사 시험(IE)에 합격했다. 아나운서에서 배우, 그리고 수중 전문가로 변신을 거듭한 그 원동력이 궁금했다.
손에 쥔 것을 포기하고 밑바닥부터 경력을 새로 쌓는 일은 쉽지 않다. 배우 최씨는 부러워하는 공중파 아나운서를 스스로 그만뒀다. 당시 나이 스물여섯 살이었다.
2007년 <한국방송>(KBS) 연예대상 엠시(MC) 부문 여자신인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전도유망한 상황이었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아나운서를 꿈꾸는 고등학생 팬들의 팬레터를 받을 때는 미안함마저 느꼈다. 다른 사람이 꿈꾸는 자리를 뺏은 기분마저 들어 죄책감도 생겼다. 그런 무거운 마음은 퇴근 후 배운 도예나 그림에서 털어냈다. 빚고 그리다 보니 혼란스러웠던 머리가 정리됐다.
일과 분리돼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했던 시간은 매우 소중했다. 비로소 원하는 길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아나운서로 활동한 지 1년 반 만에 그는 모든 걸 내려놓고 배우로서 인생을 다시 시작했다. 이후 최송현은 2009년 영화 <인사동 스캔들>에서 미술품 사기범, 2011년 <티브이엔>(tvN)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에서는 변호사로 열연했다.
배우 최송현씨는 아나운서 출신으로 수중전문 유튜브 채널 ‘송현씨 필름’을 운영한다.
시련도 있었다. 2012년 당초 주연급으로 참여했던 한 드라마에서 단역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아직 대표작이 없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한다. 그는 촬영이 일찍 끝나는 날엔 틈틈이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이번에도 ‘퇴근 후 놀이’가 그를 다른 세상으로 이끌었다. 3년 전에는 국내 여배우로는 유일하게 스쿠버다이빙 강사 자격증도 땄다.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갤러리 ’프리바아워’에서 그를 만났다.
-스쿠버다이빙 전문가로도 활동 중이던데,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 일 끝나고 다양한 분야를 배우는 걸 좋아해요. 취미도 결혼처럼 타이밍이 있는 것 같아요. 스쿠버다이빙은 몇 년 전 드라마 촬영할 때 한 스태프분이 다이빙이 너무 재미있다고 말씀하신 게 문득 기억나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래서 촬영 끝나자마자 배우기 위해 달려가곤 했죠. 열심히 다녔어요.”
최송현씨가 모레아 섬 근처에서 혹등고래를 촬영하고 있다. 사진 최송현 제공
-촬영 일정이 불규칙해서 새로운 분야를 배우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일이 불규칙해서 학원에 못 가는 날에는 집에서 연습했어요. 예전에 그림을 배웠을 때는 아예 집안 거실에 큰 식탁을 놓고 화실처럼 만들었어요. 새벽에라도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까 좋았어요. 여가시간에 방 안에 누워 있어 봤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다양한 취미 활동이 삶을 생기 있게 만드는 것 같아요. ”
-막상 스쿠버다이빙을 해보니 정말 삶이 달라지던가요?
“당시 심적으로 힘들었을 때였죠. 스쿠버다이빙을 배워 보니 스트레스가 풀리더라고요. 당시 모 드라마에 주연급으로 출연했는데 갑자기 단역이 됐거든요. 원래 극중에서 친오빠가 죽고 난 다음 오빠의 친구와 올케언니와 제가 삼각관계가 되는 스토리였죠. 극에서 오빠가 안 죽으시는 거예요. (웃음) 동료 배우들이 위로해주셨죠. 주변에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런 상황이 저를 다소 우울하게 만들더라고요. 스쿠버다이빙은 일종의 환기가 됐던 것 같아요. 살면서 그렇게 숨 쉬는 것에 집중한 적이 없었어요. 제게 집중하게 됐죠.”
-스쿠버다이빙 등 일 이외의 했던 취미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신기루를 좇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요. 매일을 진지하게, 열심히 살다 보면 불안함도 가시지 않을까요. 취미가 그런 생활을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됐어요. 그리고 원래 겁이 별로 없는 성격이에요.”
그는 성취감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아나운서 1년 차에 당시 인기 예능프로그램 <상상플러스>의 사회자를 단박에 따냈을 때보다 작은 배역이라도 따내기 위해 노력하는 지금이 더 즐겁다고 한다.
스쿠버다이빙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최송현씨. 사진 최송현 제공
지난 해 모레아 섬 근처 배 위에 있는 최송현씨. 사진 최송현 제공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
“모든 역할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한번은 <티브이엔>(tvN) 시트콤 <감자별 2013QR3>을 찍을 때 감독님이 걱정하더라고요. 여배우인데 너무 망가지면 다음 작품이 들어오겠느냐고요. 그런데 몸을 던져 코믹한 연기를 하자 스태프들이 막 웃었어요. 참 기쁘더라고요. 뭐든 열심히 하면 시너지가 납니다.”
-어떤 식으로 시너지 효과가 나나요?
“일과 취미를 병행할 때 업무 스트레스를 오히려 줄일 수 있어요. 힘들어도 일이 끝나면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할 수 있으니 힘이 나고요. 어떤 취미는 비싼 비용을 치르기도 하죠. 취미 생활하기 위한 돈을 버는 형국이 될 때도 있죠. 그래서 일하는 게 남과 다른 의미에서 즐거워지기도 하더군요. (웃음)”
스쿠버다이빙을 하다 보니 이제 그는 ‘어류 박사’라는 별명도 생겼다. 바다에서 만난 물고기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다. 최근에는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송현씨 필름’이라는 수중 전문 채널도 운영한다. 세계 각국의 바닷속 어류를 설명해주는 동영상 채널이다.
지난 5월 최송현씨가 타히티 모레아 섬 근처에서 프리다이빙을 하고 있다. 사진 최송현 제공
모레아 섬 근처 바다 속에 있는 최송현씨. 사진 최송현 제공
-일에 지친 이들이나 퇴근 후 뭔가를 하고 싶은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취미는요?
“조직생활이 잘 맞지 않고 내성적이신 분이라면 도예나 그림 그리기를 추천해요.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이라면 스쿠버다이빙을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수중 전문가로서 질 좋은 수중 동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어요. 국내에는 아직 수중 관련 콘텐츠가 부족하더라고요.”
-배우 생활을 병행하며 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감사한 마음으로 진지하게 임하면 되지 않을까요.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24시간 더 살았으니까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요.”
여전히 그의 하루는 빈틈없이 돌아간다. 동영상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일주일에 세 번 학원에 다닌다. 해외 팬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방송통신대학에서 중국어, 일본어도 공부한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일을 마친 뒤 취미 겸 다양한 분야를 들여다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며 웃었다. 앞으로가 더 궁금해진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사진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놀이 인간으로서의 삶의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의지적인 활동이다. 따라서 막연한 휴식은 놀이가 아니다. 일정한 육체적·정신적인 활동을 통해 정서적 공감과 정신적 만족감이 전제돼야 한다.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저녁의 삶이 보장되면서 요즘은 ’심야 놀이’가 대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