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브랜드 ‘앤디앤뎁’을 이끌고 있는 부부 디자이너 김석원(사진 왼쪽), 윤원정(오른쪽)씨. 내년이면 출시 20주년이다. 사진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아방가르드’에서 ‘미니멀리즘’으로.” 1999년 국내 패션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패션 브랜드 ‘앤디앤뎁(ANDY & DEBB)’을 두고 나온 말이다. 디자이너 김석원·윤원정 부부가 출시한 이 브랜드는 아이엠에프(IMF) 금융 위기 직후, 주춤했던 국내 패션 흐름 속에서도 기존에 없던 디자인을 선보여 주목 받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패션 디자이너들이 ‘아방가르드’로 일컬어지는 형이상학적 디자인을 주로 구현했다면, 젊은 디자이너 부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김성일 스타일리스트는 “한국 패션의 미니멀리즘(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문화적 흐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갓 서른 살이었던 신인 디자이너들이 쏘아올렸던 유의미한 ‘옷’들도 내년이면 출시 20주년을 맞는다. 그간의 얘기를 듣기 위해 김 스타일리스트가 지난 15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이들의 작업실을 찾았다.
정리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김성일(이하 김) ‘앤디앤뎁’을 처음 봤던 순간이 생생해요. 1990년대 후반이었죠? 등장하자마자 떠오르는 ‘샛별’이었잖아요.
윤원정(이하 윤) 1999년 1월에 처음 저희 브랜드를 선보였죠.
김 당시 서울 강남구 청담동이 패션을 선도하는 동네였거든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그 일대에서 앤디앤뎁의 옷을 입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과장해서 말하면 하나의 문화 현상같았죠.
김석원(이하 석) 그래서 그때 언론에서 저희 브랜드를 두고 ‘청담동 며느리 룩’라는 별칭을 붙여주셨죠(웃음).
김 ‘청담동 며느리 룩’이 뭔지 잘 모르는 독자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이를테면 검은색 에이치 라인 원피스에, 흰색으로 마감 처리돼 있는 검은색 가디건을 걸치는 식인 거죠. 검은색과 흰색을 활용한 단아한 정장 차림, 거기에 단화를 신고 머리띠를 한 모습을 상상하면 돼요.
윤 여성분이라면 머리 길이도 중단발이어야 하고요(웃음).
김 국내 ‘패션 피플’ 사이에서는 그때 어떤 공식이 있었거든요. 격식 있는 자리에서는 항상 앤디앤뎁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거죠.
석 실제로 부모님 고객들이 자녀들을 위해 옷을 많이 구입하셨어요. 졸업식이나 선 볼 때 입으라고요.
김 처음 브랜드를 출시하면서, 이렇게 성공할 줄 예상했나요?
석 뉴욕에서 패션 유학을 마치고 1998년 겨울, 한국에 왔을 때는 IMF 금융 위기가 막 지난 시기였거든요. 한국의 패션 중심지였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경우 이미 패션 매장들이 다 빠진 상태였어요. 불황의 한 가운데에서 매장을 열어야 했으니까, 성공을 확신하기 어려웠죠.
김 텅텅 빈 청담동 거리에 갓 서른 살 된 젊은 디자이너 부부가 매장을 열었을 때 그 충격이란(웃음). 흥미로운 대목은 당시 외국 유학 갔던 20대 젊은이들이 IMF 터진 뒤 국내로 돌아와서 이 옷을 입기 시작했다는 거에요.
윤 실제로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등에서 유학 중이었던 젊은이들이 대거 귀국하면서, 국내 문화의 경향에도 일종의 변화가 일었던 것 같아요. 한 예로 본격적으로 레스토랑 문화가 시작됐죠. 청담동에 이태리, 프렌치 식당들이 갑자기 들어섰던 게 생각나요. 그 전까지는 양식을 먹으려면 호텔 안에 있는 식당을 가야 했거든요. 옷의 격식을 차려야 하는 레스토랑들이 늘어난 것도 저희 브랜드가 각광받을 수 있었던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고 봐요.
석 ’귀향’한 유학파들이 해외에서 겪었던 문화적 감수성을 국내에서 찾으려고 하니까, 자연스레 레스토랑, 와인바 등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저희도 본능적으로 느꼈죠.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전환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걸.
김 누가 봐도 패션사업을 시작하기에는 어려운 시기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어요. 부부이기에 앞서 동업자로서 협업을 잘 해냈는데, 비결이 있다면요.
석 솔직히 동업하기 전까지는 서로의 디자인 스타일에 대해 잘 몰랐어요. 동업 초반에는 치열하게 다퉜어요. 저는 중성적인 느낌의 패션을 좋아하는 반면 ‘데비(윤원정)’는 좀 더 여성스러운 느낌을 선호했거든요.
김 갈등은 어떻게 해결했어요?
석 처음에는 각자 만들고 싶은 옷을 선보였어요. 제 경우 무채색에 단순한 옷이었다면, 데비는 파스텔 색에 낭만적인 옷을 만들었죠. 그런데 고객들이 그 두 스타일의 옷들을 한 데 구입해 섞어 입으시더라고요. 각자의 색을 지키면서도 이렇게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었죠.
앤디앤뎁은 15일 김성일과의 인터뷰에서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진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패션 경향도 시시때때로 변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서는 고상한 정장 차림보다는 청바지에 티셔츠 등으로 가볍게 멋을 내는 차림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김 매출에 영향이 있었을 것 같아요. 디자인에도 변화를 줘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나요?
윤 그런 고민도 해봤죠. 하지만 패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결국 유행은 돌고 돌잖아요. 결국 ‘우리의 색을 지키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죠.
석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려고도 노력했어요.
김 방법을 찾았나요?
석 온라인 플랫폼 등을 활용한 서브 브랜드를 출시했죠.
‘앤디앤뎁’은 2012년 ‘뎁(DEBB)’을, 2016년에는 ‘콜라보토리(COLLABOTORY)’등의 서브 브랜드를 선보였다. 20대 밀레니얼 세대를 대상으로 한 브랜드다. 김석원씨는 “앤디앤뎁이 고가 브랜드이다 보니 제한된 고객층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 아쉬웠다”며 출시 이유를 설명했다.
김 다양한 브랜드를 시도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윤 약 20년 간 한 자리에서 버텨 온 브랜드의 디자이너로서 어떤 책임감이 있었어요. 끊임없이 도전해야 된다고요. 그러려면 다양한 ‘현지’ 브랜드를 성공시켜야겠죠. 디자이너들이 건강한 창조를 연속해야 그 나라의 패션도 탄탄해진다고 봐요.
석 저도 그 나라에 가야만 구입할 수 있는 ‘현지’ 브랜드의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까운 일본만 보더라도 현지 디자이너들만의 어떤 힘이 남아 있거든요. 한국도 디자이너들이 다양하게 자기 색깔 내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어요.
김 장기적으로는 어떤 디자이너로 남고 싶나요?
석 시대와 상관없이 한결같은 정체성을 가진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앤디앤뎁’다운 그런 옷이 미래에도 있길 바라요.
윤 20년 전 저희 옷을 즐겨 입었던 한 여성이 최근 장성한 딸과 함께 쇼핑을 하러 오는 경우가 많아요. 어떤 분은 며느리를 데리고 오기도 해요. 이처럼 여성들이 패션을 통해 교감하는 장면을 바라보는 건 디자이너로서 의미있는 일이에요. 앞으로도 그런 순간이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스타일리스트
앤디앤뎁 프로필
1999년 ‘앤디앤뎁’ 출시 -
2004년 제8회 서울패션인상 올해의 신인 디자이너상 수상
2005~2006년 윤원정 앤디앤뎁 이사, 수원대학교 미술대학 패션디자인과 학과장
2009년 김석원 앤디앤뎁 대표, 제 2회 ‘코리아패션대상’ 지식경제부장관 표창 수상
2010년 서울패션위크 10주년 ‘10인의 헌정 디자이너’ 선정 감사패
2016년 제9회 코리아패션대상 대통령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