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는 유명한 공원이 그리 많지 않다. 지역민의 일상 공간이기에 대외 홍보가 대대적으로 이뤄진 곳이 적다. 하지만 차근차근 살펴보면, 조성 배경이 흥미롭거나 디자인이 멋진 공원이 수두룩하다. 역사적 의미가 감동을 선사하는 곳도 있다. 여름이 한풀 꺾이기 시작하는 요즘, 천천히 지역 공원을 어슬렁거려보자.
소소한 특별함이 있는 경기도 일대 공원
경기도 안양시의 삼덕근린공원
경기도 안양시에 위치한 삼덕근린공원에는 여느 공원과 달리 공장 굴뚝이 있다. 왜일까? 본래 두루마리 휴지를 만들던 삼덕제지 공장이 있던 곳이기 때문이다. 1961년 설립된 삼덕제지의 소유주 전재준 회장은 지난 2003년 공장을 이전하면서 “공원을 지어달라”는 당부와 함께 부지를 안양시에 기부했다. 그래서 빡빡한 도시의 숨통을 틔워주는 공원이 들어서게 되었다. 주차장 건립 등 실용적인 기능의 공간으로 조성하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기부자의 뜻이 관철돼 굴뚝이 있는 독특한 풍경의 공원이 탄생했다. 굴뚝은 더 이상 연기를 내뿜지 않지만 삼덕근린공원에 특별함을 더해주는 경관 요소가 됐다.
경기도 시흥시의 웃터골 근린공원
경기도 시흥시에는 굴뚝같은 독특한 시각적 요소는 없지만 이용하는 주민들로 인해 특별해진 웃터골 근린공원이 있다. 합리적 기준에 따라 조성된 택지개발지구의 여느 근린공원처럼 평범하지만 최근 ‘웃찾사’라는 주민모임이 만들어지면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리 공원’이 되고 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오래된 시설물에 페인트칠과 청소를 하고 화초류도 심는다. 공원은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기에 관리가 소홀해지면 빠르게 황폐해진다. 주민이 주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관심과 손길을 보태면 공원은 반짝반짝 윤이 더 나고 특별해진다.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공원의 생태 균형
충청북도 청주시의 원흥이 두꺼비생태공원
충북 청주시의 ‘원흥이 두꺼비생태공원’에서는 도시와 자연이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03년 봄, 택지개발이 착공되기 직전 구룡산에서 동면한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알을 낳기 위해 원흥이 방죽으로 몰려가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그러나 택지개발로 두꺼비 산란지는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충북지역의 여러 시민사회단체는 '원흥이생명평화회의'를 구성해 사업 주체인 토지공사와 1년 넘게 싸워 생태공원 조성이라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시민 5만여명의 두꺼비 서식지 보존 촉구 서명, 청주 시내 ‘3보 1배’ 등 시민들의 참여가 큰 역할을 했다. 이 공원에서는 두꺼비들이 산란기에 산에서 내려와 방죽까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폭 30m, 길이 200여m의 두꺼비 길을 볼 수 있다. 방죽과 인근 구룡산 사이에 나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세종호수공원
세종호수공원에서는 또 다른 방식의 ‘도시와 자연의 관계 맺기’를 볼 수 있다. 계획도시 세종시는 자연이 도시를 품고 도시가 다시 자연을 품은 형태다. 도시 안쪽의 중앙녹지공간에는 원수산, 전월산이 자리 잡고 있고 금강과 미호천이 흐른다. 국내 최대 규모라는 세종호수공원도 있다. 축구장 62배, 수심이 3m인 인공호수인 세종호수공원은 정부청사, 도서관과 연결되어 있어 시민 생활의 중심이 되고 있다. 호수 안에는 수상무대섬, 축제섬, 물놀이섬, 물꽃섬, 습지섬 등 다섯 개의 섬이 있어, 경관도 이용프로그램도 흥미롭다. 카약 무료 체험도 있다고 한다. 참고로 세종호수공원은 ‘2017 대한민국 국토경관디자인대전’에서 ‘국토교통부 장관상’을 받았다.
땅의 이력을 볼 수 있는 전주시와 광주시의 공원
전라북도 전주시의 덕진공원
켜켜이 쌓인 시간이 경관으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지방의 오래된 공원을 찾아보는 일은 소중한 경험이다. 아름다운 연꽃이 핀 덕진공원이 그런 곳이다. 비 오는 날마저도 한 폭의 그림 같은 덕진연못의 풍경은 사진가들의 단골 소재가 돼왔다. 신라시대 도선대사가 허한 지세를 막아 기맥이 흘러나가지 않도록 덕진제를 쌓았다고 전해지는 공원이기도 하다. 공원과 이어진 건지산에 이씨 시조 묘소가 있어 조선시대에는 왕조의 성소 공간으로 보호됐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정치적, 종교적 의미보다는 위락, 휴식의 장으로 그 가치가 부각되면서 공원으로 지정됐다.
광주광역시의 푸른길공원
광주광역시의 푸른길공원에서도 땅의 이력을 읽을 수 있다. 서울 경의선공원이나 경춘선공원의 형님 격으로 철로가 공원으로 조성된 곳이다. 도심을 통과하던 경전선 철로가 시민들의 요구로 외곽으로 이전되면서, 그 부지에 경전철을 놓자는 의견, 도로를 넓히자는 의견, 주차장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제시됐었다. 1998년 2월 폐선부지 주변 주민 300여명은 시의회에 ‘폐선 부지를 녹지조성, 공원, 자전거도로 설치’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후 3년여간의 갈등과 논란을 거치며 공원화로 결정됐고 지금의 푸른길공원이 탄생했다. 비록 철도는 남아 있지 않지만 도심을 동그랗게 달리는 푸른길공원은 그 자체가 도시의 이력이다.
부산시와 대구시의 역사를 기록하는 공원
부산광역시 부산시민공원
미군 부대 하야리아 캠프가 있던 곳으로 2006년 캠프가 폐쇄되면서 부산시민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미국의 유명한 조경가인 제임스 코너가 기본계획을 수립한 이 공원의 곳곳에는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사관 숙소와 유사한 블록으로 만든 ‘흔적 퍼걸러’, 부대 안 나무 전봇대를 태양광 조명으로 재활용한 ‘기억의 기둥’, 미군의 영화관이었다는 ‘흔적극장’, 식사, 연회, 부대의 공식 행사가 열리던 장교클럽을 리모델링한 ‘부산시민공원 역사관’ 등은 과거의 시간을 ‘지금 여기’에 새긴 듯하다.
대구광역시의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의 시민 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1999년에 조성된 공원이다. 1998년에는 22.5t의 ‘달구벌 대종’이 설치되어 ‘제야의 종’ 타종행사도 이 공원에서 한다. 향토 서예가들이 쓴 이육사·박목월·조지훈·이호우·윤동주의 시비와 이언적·김굉필·서거정·이황·정몽주·서상일·서상돈·이상화의 명언비가 있는 오솔길도 있다. 흥미롭게도 이 공원은 국내 최초의 스마트공원기도 하다. 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증강현실(AR)·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을 활용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시민들은 공원 내에서 무료로 무선랜(와이파이)을 이용할 수 있고 증강현실(AR) 기술로 공원 내 주요시설, 대구시 행사 등을 접할 수도 있다.
김연금(조경작업소 울 소장)
공원 디자인, 그리고 조경가
사람들은 공원도 디자인 하냐고 묻는다. 공원에 놓이는 퍼걸러(지붕 위에 나무를 가로, 세로로 얹어 덩굴성 식물을 올린 서양식 정자나 길), 벤치, 담, 건축물 같은 것은 디자인하겠지만, 길이며 연못은 원래 있던 게 아니었냐는 것이다. 공원을 디자인하는 조경가의 일이란 나무를 심는 거 아니냐는 질문도 받는다. 아니다. 공원도 디자인한다. 어떻게 길을 내야 할지, 어디에 언덕을 만들지, 연못은 어디쯤 어떤 형태로 파야 할지, 겨울엔 어떤 경관이 연출되어야 할지, 여름엔 이용자들에게 어떤 감흥을 주어야 할지를 고민하며 조경가는 땅과 경관을 디자인한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서울숲도, 서서울호수공원도 조경가가 섬세하게 디자인한 결과다. 공원 디자인도 당연히 시대적 흐름을 따른다. 공원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뉴욕의 센트럴파크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영국 풍경화식을 따랐다고 한다면, 정형적 선형이 돋보이는 프랑스 파리의 라빌레뜨공원은 사람의 손길과 감각에 따라 확실히 디자인된 것임을 명확히 드러낸다. 공원 풍경에 새겨진 조경가의 의도를 읽으면 더 즐거운 공원 산책이 된다.
김연금(조경작업소 울 소장)
공원
시민의 휴식을 목적으로 조성한 넓은 정원이나 장소를 뜻한다. 과거엔 공원을 주로 산책하는 공간으로 여겼다. 최근에는 직장회의, 독서, 요가 등 그 사용 영역이 확장됐다. 도시에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에 사람들이 부담 없이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펼쳐 보이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유명 건축가 토드 윌리엄스는 "공원은 메마른 도시의 영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