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의 뚜두뚜두 춤을 브로드댄스학원 이지선 강사에게 배우고 있는 이정연 기자.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케이팝(Kpop)과 미국 음악 순위 집계 차트인 빌보드. 어색하지 않은 조합이 됐다. ESC가 들여다 본 아이돌의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겉핥기에서 벗어나 기자들이 그 세계에 직접 뛰어들었다. 빌보드 차트에 오른 블랙핑크의 ‘뚜두뚜두’의 춤과 방탄소년단의 노래 페이크 러브’를 배워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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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연 기자의 뚜두뚜두 춤 배우기 : 두 번 생각해~, 착각하지 마~
귓가에 떠나질 않는 노래가 됐다. 블랙핑크의 ‘뚜두뚜두’. 6월 말 공개된 뒤 빌보드 차트 ‘핫 100’에 올랐다. 고백하자면 ‘뚜두뚜두~’를 빼고는 가사도, 멜로디도 제대로 몰랐다. 벼락치기 노래 학습에 돌입했다. ‘뚜두뚜두’의 뮤직 비디오를 쉼 없이 돌려보고, 이어폰을 꼽고 무한 반복해 들었다. 몸이 들썩들썩하고, 반복되는 가사(후크)를 흥얼거렸다. ‘이 춤 배우는 거 할 만 하겠다! 진짜 재미있겠다!’ 여러 춤을 배워봤지만, 케이팝 댄스는 첫 도전이었다. 망설여지기보다 설다. 그러나 곧 뚜두뚜두의 이 가사가 나를 울렸다. ‘두 번 생각해~, 착각하지 마~’ 그렇다. 할 만 하겠다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브로드댄스학원‘을 찾았다. 이곳에서 지난 6월 말 이지선 강사가 뚜두뚜두 안무 완성반을 운영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1시간30분 동안의 강습이 시작됐다. 8박자 씩 나눠 이지선 강사가 안무를 설명했다. 골반을 오른쪽으로 빼고, 허벅지를 손으로 쓸어내리면서 무릎을 살짝 굽히는 게 거의 두 번째 동작. 수없이 돌려본 블랙핑크의 방송 무대 영상에서 분명히 봤던 동작인데, 거울 속 나의 동작은 그것과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단 8박자의 안무를 배우자 설렘은 달아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커졌다. ‘괜히 배우겠다고 했나봐. 제 시간에 다 배우지도 못할 것 같은데…’
32박자 정도의 안무를 배운 뒤 노래에 맞춰 춤을 춰봤다. 서너 번 노래 없이 이 강사가 말로 하는 박자에 맞춰 하다 보니 익숙해진 안무였으니, 그나마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 강사가 음악을 켰다. ‘오, 할 만 하다.’ 그런데 두 번 반복한 뒤 이 이 강사가 말했다. “그럼 속도를 좀 올려볼까요?” ‘???’ 제 속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맨 처음에는 원래 노래 속도의 70%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 속도에 맞췄으니 할 만 할 수 밖에. 제 속도의 85%로 뚜두뚜두를 재생했다. 10분 동안 배웠던 동작은 다 어디가고 허우적거림만 남았다. “잘 하고 계세요.” 좌절하는 내게 이 강사는 말했지만, 나는 안다. 강사의 자질 중에 중요한 것은 동기 부여와 독려라는 것을… 그리고 드디어 제 속도에 맞춰 춤을 췄다. ‘아이돌 여러분, 블랙핑크, 정말 존경해요!’ 속으로 외치며 허우적댔다. 재생속도 85%의 허우적거림은 탈춤 같았다면, 100%의 허우적거림은 개업하는 가게 홍보를 위해 문 앞에 놓는 풍선 인형 같았다.
강습은 1시간30분간 거의 쉼없이 이어졌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그 뒤 1시간가량 물도 한 방울 못 마시고 강습에 정신없이 몰입했다. ‘아이돌은 체력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준비 운동을 꽤 했다고 생각했는데, 무릎과 허리 관절의 뻑뻑함, 허벅지와 등 근육의 뻐근함이 덮쳐왔다. 부인할 수 없는 몸의 신호였지만, 재미는 커져갔다. 허우적거림이든, 탈춤이든 뚜두뚜두 1절 중 절반가량을 배워 처음부터 노래와 맞춰 춤을 춰보니 그제야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다. 팔을 크게 휘젓거나, 골반을 이쪽 저쪽으로 크게 돌리며 앉는 몇몇 포인트가 될 법한 동작을 할 때야 ‘아, 저 동작 뚜두뚜두구나’라고 알아볼 정도였지만 말이다.
드디어 후렴구의 ‘뚜두뚜두’ 가사의 동작을 배웠다. 1절의 클라이맥스다. 한 손씩 가슴 앞으로 내민 뒤, 엉덩이와 함께 양팔을 당기는 동작은 ‘뚜두뚜두’ 가사가 나올 때 딱 맞춰 해야 한다. 이 동작이라도 블랙핑크처럼 잘 해보고 싶었다. 손가락까지 힘을 딱 주고, 엉덩이와 팔을 힘껏 튕기고 당겼다. 거울 속 모습은 아주 조금 멋있어 보였다. 그러나 이지선 강사의 동작을 쉼 없이 커닝하느라 눈이 한 쪽으로 쏠린 넙치가 된 기분이었다. 동작에 힘을 딱 준, 넙치가 된 댄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강습 일정을 다 마치고 무한반복 해놓은 뚜두뚜두 노래만 강의실에 울렸다. ‘내가 이 춤을 다시 출 일이 있을까? 재미는 있지만…’ 의기소침해지려는 찰나, 마음에 이 가사가 콕 박혔다. ‘거침없이 직진 굳이 보진 않지 눈치’ 그래, 직진이다! 그 뒤로 3일 간 퇴근 뒤 뚜두뚜두의 춤을 췄다. 반려묘 하모도 신나서 따라 하는 눈치였다. 거실이 신나는 무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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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석 교육생의 페이크 러브 노래 배우기 : ‘오늘만은’ 나도 아이돌이다!
11년 전, 제이와이피(JYP) 엔터테인먼트 오디션에 발을 디뎠던 그 날의 떨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돌을 꿈꿨던 15살의 난 어느덧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 됐고, 누구나 생각하는 길을 좇다 보니 꿈은 자연스레 흐릿해졌다. 하지만 티브이에 나오는 아이돌을 볼 때면 가끔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 아쉬움이 몰려왔다. 화려한 무대는 둘째치더라도 전문적인 장비를 활용해 아이돌 노래를 제대로 해봤으면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간절함은 결국 하늘을 움직인다고 했던가! 내 어릴 적 꿈을 실현해볼 기회가 생겼다. ‘아이돌처럼 노래해보기’ 체험 기사를 쓰게 된 건 순전히 내 강한 염원 때문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킹 스튜디오에서 방탄소년단의 페이크 러브를 부르고 있는 정민석 교육 연수생. 사진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킹 스튜디오는 케이팝(KPOP) 가수가 실제 사용하는 녹음실에서 아이돌 앨범을 제작했던 기술진의 도움을 받으며 녹음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외국인을 상대로 케이팝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 스튜디오는 뮤직비디오도 제작해준다.
지난 12일,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스튜디오를 찾았다. 지하 1층에 있는 작업실에 들어선 순간, 큰 화면에 떠 있는 ‘유 캔 비 올소 어 케이-팝 싱어!(You can be also a K-pop singer!. 당신도 케이팝 가수가 될 수 있다.)’라는 말이 눈길을 끌었다. ‘내가 고른 노래, 방탄소년단의 페이크 러브(FAKE LOVE)를 소화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에 용기를 북돋아 주는 문구였다.
‘잘 할 수 있어! 나도 한때 아이돌을 꿈꾼 사람이잖아’라고 속으로 혼잣말하고 있을 때 조관희 엔지니어가 나타났다. 헛기침하면서 노래 할 준비를 하는데 그가 녹음실 여러 개를 먼저 보여줬다. 벽엔 그와 작업한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앨범이 걸려 있었다. “아는 가수가 있느냐?” 퇴근길에 한잔한 아버지의 흥얼거림 속에서 튀어나왔던 가수가 눈에 들어왔지만 알은체를 안 했다. (나는 아이돌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다! 원로 가수는 노 땡큐!) “엔지니어와 충분히 친해져야 더 좋은 성과물이 나온다”는 그에 말에 ‘조 엔지니어는 형이다, 형이다, 형이다’를 속으로 되뇌었다.
녹음실로 발걸음을 옮기자 드라마에서만 봤던 장비와 방음벽이 눈에 들어왔다. 진짜 ‘알엠(RM.랩몬스터)이 된 듯 기분 좋은 착각에 빠졌다. 먼저 ‘페이크 러브’를 들어봤다. 값비싸 보이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지민의 소름 돋는 고음은 방송이나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들었던 것과는 달랐다. 환상적인 음률에 부담감이 더 커졌다. 그래도 애써 자신 있게 여느 가수들처럼 헤드셋을 끼고 “아아” 마이크 점검부터 하면서 녹음을 시작했다.
노래 연습을 도와준 조관희 엔지니어(사진 오른쪽)와 정민석씨. 사진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노래의 처음 부분의 박자를 맞추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반주는 세련된 음률이었다. 그 위에 얹어진 날것의 내 목소리는 신기했다. 낯설고 어색했다. 나 자신이 음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엔지니어는 “잘한다”고 칭찬을 하며 다독여줬다. 그때부터 긴장감도 점차 사라져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으면서...” 실제 보컬 출신이기도 한 그는 나의 불안정한 음정에 조언을 해주며 유연하게 내 성량을 끌어냈다. 극적인 실력 향상은 없었지만, 전보다 호흡이 안정됐고 박자가 딱딱 맞았다.
7명이 함께 부르는 곡의 특성상, 조 엔지니어는 나에게 여러 가지 주문했다. “가성으로 할 수 있어요?” “랩이 너무 정직한데 건방지게 한번 불러볼래요?”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쌓았던 실력을 총동원했다. 랩 특유의 박자는 타기 어려웠지만, 열심히 하다 보니 덕분에 내가 부른 노래가 더 맛깔나게 변화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성에 쌓아 올린 가성은 세련되기까지 했다. 점점 내 목소리에서 지민이 느껴졌다.
녹음이 끝날 무렵, 그는 “마지막 단어를 말할 때 숨을 같이 내뱉어 봐라. 한층 더 멋있어진다”고 말했다. 녹음 초반, 헤드셋에 딱 붙어 마치 얼어붙은 것 같았던 내 손은 온데간데없었다. 이리저리 손짓하며 박자를 타고 있었다.
오로지 내 목소리로만 녹음된 노래를 들으며 지난날 소심하게 꿈꿨던 가수의 꿈을 이룬 듯했다. 노래방에서 발라드만 주구장창 불렀던 나로서는 애창곡 하나가 늘었다. 지금도 길가에 울려 퍼지는 이 노래를 들으면 자신 있게 흥얼거린다. “페이크 러브”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정민석 대학생 교육연수생
아이돌
노래와 춤을 특기로 하는 하이틴 그룹. 10대 청소년이나 청년들이 주요 팬층이다. 연예기획사 오디션을 보고 연습생으로 들어가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 데뷔한다. 지망생은 100만명 남짓이지만, 그 중 데뷔할 확률은 1%, 성공할 확률은 0.01% 정도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케이팝(KPOP) 열풍을 이끄는 주역이며, 최근 방탄소년단이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음반 차트 1위를 하면서 화제가 됐다. ‘아이돌(idol)’이라는 영어는 원래 ‘신화적인 우상’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