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 코리아' 이미지를 이용해 편집함.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직장, 학교, 가족 모임 등에서 모욕적인 말을 들었을 때 많은 사람은 침묵하거나 웃어넘기곤 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나서 당황했기 때문이다. “왜 그때 가만히 있었을까?”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야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에이~ 농담으로 하는 소리겠지’ 애써 상한 기분을 다독이며 가해자를 변호해보지만 어째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욕하는 타인의 무례함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모욕’대처법을 소개한다.
최근 한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우먼 김숙이 취한 태도가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한 남자 방송인이 “얼굴이 남자 같다”는 무례한 평을 한 것이다. 김숙은 듣고 “어, 상처 주네?”라며 무심하게 답한 게 화제가 됐다. 감정적으로 화내지 않고도 곧장 사과를 받아낸 이 장면은 한동안 인터넷에서 ‘무례한 사람을 대하는 법’의 모범 사례로 회자됐다.
언제 어디서 듣게 될지 모르는 생활 속 무례함이나 욕을 김숙처럼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더 없을까?
직장인 정미영(가명)씨는 한때 직장 상사 때문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사내에서 이른바 ‘갑질’로 유명했던 그 상사는 정씨가 출퇴근 인사를 해도 눈 한번 마주치지 않았고 그가 사소한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머리가 의외로 나쁘네?”라며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년’자만 안 했을 뿐 ‘열여덟(18) 사람’ 등 거의 욕인 말을 오전 내내 하다가도 다른 동료와 합석한 점심에선 뜬금없이 칭찬하는 등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는 그의 가파른 기분을 살피는 게 일상이 되면서 말라가기 시작했다. 그의 반응, 표정, 손짓 하나하나에 웃고 답해주고 반응해줬다. 주인의 작은 손짓에도 반응하는 애완견이 된 기분이었다.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다가 우연히 들은 법륜스님의 강연에서 “나쁜 말은 쓰레기다. 누가 쓰레기를 던지면 그 자리에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라는 얘길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너는 욕과 무례함이라는 쓰레기를 줬지만 나는 받지 않겠다’는 자세로 상사가 어떤 말을 하든지 감정의 동요 없이 “네, 알겠습니다”하곤 돌아서서 금방 잊었다. 그때부터 상사는 오히려 정씨에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적당한 ‘거리 두기’가 성공한 셈이다.
현재 무례한 언행에 시달리고 있다면 스스로 상황을 주도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침묵하거나 감정적으로 구는 등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대응하지 말고 우선은 가해자와 대화하라는 것이다. 특히 가해자가 직장 상사일 경우 감정을 드러내면 본인 평판에 흠만 될 수 있으니 더 신중해야 한다. 이와 관련 미국의 자기관리 전문가 크리스틴 포래스는 <무례함의 비용>에서 ‘직장 상사에게 상처받은 걸 갚아 주겠다’는 마음을 버리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는 일기에 ‘직장 상사와 다투려는 이유가 과연 내 미래에 도움이 될까’라고 적으며 분노를 삭였다고 한다.
정씨처럼 감정을 배제하고 ‘거리 두기’를 했다면, 다음 단계는 대화에 나설 차례라고 한다. 이때 감정이 상했다는 걸 언급하기보다는 상사의 특정 언행이 업무 성과를 저해한다고 말하는 게 좋다고 한다. 부하 직원의 문제 제기가 편하지는 않을 터이다. 혹시 직장 상사가 감정적으로 나온다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해해요”라면서 공감을 표시하며 대화를 이끌어가는 게 효과적이다.
학교 친구, 직장 동료 등 비교적 동등한 관계에서 욕이나 무례한 말을 들었을 때는 어떤 대처가 현명할까? 질문 의도가 불쾌하지만 대답은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딴청 부리며 되묻는 방법을 추천한다. “너, 남자 친구 많지?”라는 질문에는 “남녀공학을 졸업했으니 많지. 왜?” “왜 그런 생각 했어?” 하고 되물어보라는 거다. 앞뒤 안 맞는 대답을 하다가 스스로 논리가 빈약함을 깨닫고 급히 화제를 돌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식의 ‘선 긋기’ 답변도 대처법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결혼을 대체 언제 할 건가?”라는 물음에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답하는 식이다. ‘무대응’ 전략도 좋은 대처법으로 꼽힌다. 무례한 말을 들었을 때 ‘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나 봐’라고 무덤덤하게 취급하고 “그렇게 생각하는군. 알겠어”라고 대화를 바로 끝내는 방법도 있다. 모든 부정적인 말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다가는 상처만 남기 때문이다.
권위적이거나 시대착오적인 발언을 하는 동료나 상사에겐 “혹시 지금이 몇 년도인가요?”, “고조선에서 온 거야, 뭐야” 같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받아치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평소 농담을 자주 하는 이로 인식되게 해 놓는 것도 일종의 대비책이 될 수 있다. 엉뚱한 답을 해도 상대방이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무례한 발언을 점검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욕은 무례함의 다음 단계’라고 한다. 때로는 도에 넘는 무례한 말이 법의 심판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현행법상 모욕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네가 최순실이냐?” 지난해 12월 김아무개씨는 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한 직장 동료에게 이런 말을 했다가 큰코다쳤다. 당사자로부터 모욕죄로 고소당해 15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김씨의 경우 일반적인 욕설은 안 했지만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사건의 장본인을 상대에 빗대기만 해도 유죄를 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로 남았다.
현재 법원은 모욕을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으로 본다. 실제로 모욕죄로 처벌받은 사례를 보면 ‘X같은 잡년’, ‘결혼 열두 번 할 년’, ‘사이비 기자년’ 등 피해자의 평판을 비난하는 욕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모든 모욕적인 상황을 소송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모욕죄가 성립하려면 문제의 발언이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나와야 한다. 한 예로 법원은 피해자와 딸, 사위, 매형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족 간에 욕설이 오고 간 경우엔 공연성(많은 사람 앞에서 보일 수 있는 성질)이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단둘이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다만 욕설 내용이 사회적인 상식 수준을 넘어섰을 때 피해자는 민법상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몸짓도 모욕죄에 걸릴 수 있어 아무리 화가 나도 몸가짐을 조심하는 게 필요하다. 불특정 다수 앞에서 상대방이 갑자기 침을 뱉거나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린다면 이 역시 모욕죄로 고소가 가능하다. 또한 모욕적 의도가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면 폭행죄를 물을 수도 있다. 상대방의 귀에 대고 큰소리를 지르거나 삿대질을 하며 위협적인 말을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계속 전화를 걸어 벨을 울리게 하는 행위도 역시 문제가 된다.
고소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욕을 하더라도 대응하지 않고, 휴대전화로 이를 촬영하거나 녹음하는 게 좋다고 전문가들은 권한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진술을 녹음하거나 확인서를 받아 놓는 것도 소송에 도움이 된다. 법무법인 한별의 이수희 변호사는 “상대로부터 욕을 듣더라도 참는 게 최선이다.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함께 욕하면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수백만원의 벌금을 물게 될 수도 있다”고 조언한다.
“상대방의 '진의가 뭘까' 고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상대의 말을 두 번 세 번 곱씹으면서 괜히 넘겨짚지 마세요. 해야 할 일에 집중하세요.” 무례함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과거 유엔(UN) 사무차장보 재직 당시 한 방송 토크쇼에서 한 말이다. 전문가들도 모욕이나 무례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지름길로 자기 계발을 꼽는다.
글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도움말 이수희 변호사(법무법인 한별), 이지훈 변호사(법무법인 허브), 참고자료 <무례함의 비용>,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욕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 또는 남을 저주하는 말. 이명희 일우재단 전 이사장과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녹취 파일에 다량 포함돼 이른바 ‘대한항공 갑질 사태’를 촉발했다. 주로 분노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하며, 사용자 입장에서는 그로 인해 억압된 감정을 해소하는 효과도 있다. ‘ㅆ, ㄲ, ㅍ, ㅃ, ㅊ’ 등 거센소리가 많이 들어간다. 어원을 신체적 결함이나 질병, 특정계층 비방, 성적인 것에 두는 경우가 많고, 지나친 욕설은 대인관계를 망가뜨릴 수 있기에 주의를 요한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