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광화문 광장
1980년대 태어난 ‘광화문 토박이’들
20대 독특한 경험 펼치려 귀향
청운동, 신문로 등지에 둥지 마련
1980년대 태어난 ‘광화문 토박이’들
20대 독특한 경험 펼치려 귀향
청운동, 신문로 등지에 둥지 마련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의 주인공 장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10년 만에 고향인 프랑스 부르고뉴로 돌아온다. 다시 떠나려 했던 그는 고민 끝에 고향에 있는 와이너리를 운영하기로 한다. 새로운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다. 장처럼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와 기존의 공간을 의미 있는 곳으로 재탄생시키는 젊은이들이 서울 광화문에도 있다.
1980년대에 태어난 광화문 토박이들. 이들은 유학 등의 이유로 떠났다가 최근 고향, 광화문으로 돌아와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있다. ‘패피’(패션피플)들이 몰리는 압구정동이나 청담동도 아닌, 식도락가들의 천국 이태원도 아닌 광화문 일대를 선택했다. 이유가 궁금해 이들을 만났다. ‘신 광화문 키즈들’이다.
고향 광화문, 지금 내 영감의 원천
지난 10일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3층 건물의 문을 열자마자 은은한 허브티 향이 났다. 간판이 없는 탓에 얼핏 갤러리로 보이는 건물이다. ‘음식에서 문화로 확장’이란 슬로건을 내건 이 공간은 코레스펀던스 박세훈(36) 대표의 사무실이자 ‘다이닝 스페이스’이다. 주방 딸린 개인 사무실인 셈이다. ‘코레스펀던스(Correspondance)’는 프랑스어로 ‘조화’란 뜻. 박 대표는 “요리연구가와 셰프, 푸드스타일리스트 등의 아이디어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하는 일은 레스토랑 컨설팅, 외식업체의 공간 디자인 등이다. 현대백화점 식품관, 오설록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외식업체의 메뉴 선정, 메뉴판과 음식 포장지 제작, 서빙 스타일 지도 등을 했다. “음식에 기반한 체험도 예술”이라는 그가 빚어낸 것들은 아름다웠다. 이 공간을 연 때는 2014년. 청운동에 태어난 그는 전형적인 ’돌아온 광화문 아이’다.
-광화문의 풍경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나?
“4년 전만 해도 청와대 가는 길엔 검문이 많았다. 검문하는 이들의 표정이 지금도 기억난다. 매우 심각해 보여 안쓰러웠다. 지금은 한결 편해 보인다. 광화문 광장은 여러 이슈들로 늘 긴장감이 높았는데 이제는 생기가 돈다. 광장 인근인 청운동, 창성동 같은 동네는 조용하다. 고요함과 생생함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그가 태어난 집은 이 건물 바로 뒤에 있다. 그는 이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정작 한 사람의 사고가 쑥쑥 자라는 20대엔 이곳을 떠났다. 2010년 뉴욕의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서 그래픽디자인과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어릴 때 고향 광화문이 지겨웠다”는 그에게 연어처럼 회귀한 이유를 물었다.
- 왜 돌아왔나? 세련된 음식 관련 일은 강남 등에서 시작하는 분위기인데.
“시대가 바뀌었다. 모바일 발달로 휴대폰 하나면 세계 어디든 여행할 수 있다. 음식이든 미술이든 다 볼 수 있다. 쉽게 얻으니 흥분이 사라진다고 할까. 살던 동네에 대해 소중함을 깨달았다. 동네의 재발견인 셈이다. 외국 생활하면서 광화문이 더 그리웠다. 편찮으신 아버지를 뵈러 온 일이 계기가 됐지만 결국 태어난 이곳에서 나만의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음식 관련 일을 한다. 광화문 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유학 시절 그리웠던 건 어머니가 만들어 준 담백한 나물무침이었다. 된장을 연하게 풀고 시금치, 돼지감자를 넣고 자작하게 끓인 칼국수도 생각났다. 광화문 광장은 북한산, 인왕산으로 둘러 싸여있다. 나물과 칼국수는 그런 자연을 떠오르게 하는 맛이다.”
-이곳 토박이로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해보고 싶나?
"‘광화문 토박이’가 이제는 옛말이 돼버린 것 같다. 20년 전만 해도 저녁이면 고요한 동네였다. 이제는 늦은 저녁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말 그대로 서울 사람의 표본 집합소 같다. 동네 주민들이나 호기심으로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등 상생하는 ‘다이닝 문화’를 만들고 싶다.”
인터뷰 말미에 잣을 으깨 만든 하얀 머랭 쿠키를 내왔다. 잣은 예로부터 조선 왕실에서 귀히 여기던 식재료였다. 이를 서양식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전의 가치와 현재의 이미지를 잘 융합해서 새로운 문화를 제안하는 게 그의 목표다.
뿡갈로의 도전, 광화문의 힘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경희궁 터에서 시작된 길을 따라 광화문 서쪽에 위치한 인왕산을 향해 걷다 보면 적색 벽돌로 지어진 낡은 3층 주택이 나타난다. 1층은 가죽공방인 ’탬버린 프로젝트’, 2층은 식당, 3층은 외국인 전용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고 있는 복합문화 공간 ‘뿡갈로’다. 이곳을 만든 김아람(33)씨는 “외국인 여행객에게 한국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제2의 집을 마련해주고 싶어 가정집을 개조해 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고요한 이 동네에 6년 전 뿡갈로가 들어서자 크고 작은 카페와 갤러리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여행객들은 이곳에서 ‘숨겨진’ 광화문의 매력을 발견했다.
-왜 광화문 광장 인근인 신문로에 공간을 만들었나?
“대학 시절, 수업을 마친 후에 항상 이 길을 걸었다. 이곳이야말로 인왕산이 제대로 보이는 ‘진짜’ 서울 동네인데, 외지인들은 잘 모르더라. 그래서 이곳만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알리고 싶었다. 한국 문화를 궁금해 하는 외국인에게 특히 말이다. 고민 끝에 퇴사했다.”
그는 본래 어느 대기업 계열사인 신용카드회사에 다녔다. “남들은 부러워했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내 꿈을 뭘까’ 고민하다가 어릴 때 걸었던 광화문 광장 일대가 생각났다. “마침 외국 언론에서 ‘동네 사랑방이 사라지면 토착민의 행복 만족도도 떨어진다’는 기사를 봤다. 내 꿈을 다시 떠올리게 한 광화문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 건물을 복합문화 공간이라고 하는데 왜인가?
“갤러리, 공방, 식당, 숙소를 한데 묶었다. 이 공간에서만 지내도 서울 광화문으로 대변되는 라이프스타일을 느낄 수 있다. 전시는 뿡갈로의 벽이나 공방 초입에서 한다. 게스트하우스 겸 갤러리인 셈이다.”
그는 2013년 9월부터 자체 공모전을 열어 역량 있는 신인작가를 발굴해 지난해까지 모두 20여 차례 전시를 열었다. 전시된 작품은 판매됐는데, 그 수익금은 작가에게 전액 지급됐다.
-이런 갤러리 프로젝트도 광화문과 관련된 건가?
“여행객들은 국립현대미술관 등 광화문의 큰 전시 공간만 다닌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작가들의 소규모 전시를 통해 현재의 서울 문화도 그들이 알았으면 한다. 광화문의 다른 얼굴인 셈이다. 게스트하우스에 작품이 걸려 있는 동안 외국인들은 생활 속에 스며든 한국의 예술을 느끼게 된다.
-광화문 일대 동네 주민들과 하는 행사는 없는가?
“1층 공방에서 외국인 관광객, 동네 주민 등을 상대로 하루 클래스 등이 열린다. 동네 주민들은 공방에서 이것저것 하는 걸 재미있어한다. 그래서 이곳을 좋아한다.”
-앞으로 계획은?’’
“동네가 뜨면 프랜차이즈가 많이 들어온다. 획일적인 공간들이다. 이곳도 점점 비슷해져 가고 있다. 그러다 보면 동네의 고유한 색이 사라진다. 앞으로 무엇을 하든 지역의 색을 보존하면서 상생하는 것을 목표로 두려고 한다.”
인터뷰 중간마다 1층 가죽공방에서 웃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주말마다 동네 아이들, 강아지들이 이 공방에서 가죽을 가지고 논다. 이런 게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광화문이 이끈 힘이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사진 임경빈 (스튜디오 어댑터)
광화문 토박이인 코레스펀던스 박세훈 대표.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코레스펀던스 전경.
코레스펀던스 1층. 전문적인 조리 시설을 갖춘 개인 사무실이다.
김아람 뿡갈로 대표.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뿡갈로’ 전경.
‘뿡갈로’ 3층 게스트하우스 내부.
가죽공방 ’탬버린 프로젝트’의 하루 클래스.
광화문 광장
서울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 세종대로 한가운데 길게 조성한 광장. 광화문에서 세종대로 사거리까지, 길이 550m·너비 34m 규모. 시민 휴식처, 집회 장소로 이용됨. 조선 건국 뒤 경복궁을 지으며 앞에 조성한 관가, 육조거리(육조대로)가 시초임. 2021년까지 광장 확장 공사가 이뤄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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