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선주를 스타일리스트 김성일이 만났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보컬 트레이너의 트레이너’, ‘가수들의 선생님’으로 불리는 박선주(47)씨는 말 그대로 ‘음악의 신’이다. 19살, 강변가요제에서 화려하게 데뷔한 뒤 돌연 미국 유학길에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뉴욕에서 음악과 심리학을 공부했다. 스스로 가수이면서 김범수, 윤미래, 보아 등 최고 가수의 노래를 프로듀싱한 싱어송라이터(자작 가수)이기도 하다. 2004년 방송된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은 배우 박신양의 중저음의 목소리도 그의 지도의 결과물이었다. 극 중 노래 장면도 그의 손길을 타자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마술봉이 됐다. 최근에는 한국과 일본, 중국 등에서 싱어송라이터와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 중이다. 글 백문영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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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이하 김) 1989년에 데뷔했네요. 내년이면 가수 인생 29년이군요. 대단해요. 그런데 왜 음반은 5장밖에 없나요? 발표한 곡의 수가 많지 않네요.
박선주(이하 박) 1993년 미국으로 떠난 유학 생활이 생각보다 길어졌어요. 대중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향도 한 몫했지요. 다른 가수에게 잘 맞는 노래를 찾아 주는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에 재미를 느낀 것도 이런 성격 때문인 것 같아요.
김 강변가요제에서 부른 ‘귀로’는 정말 폭발적 인기를 얻었지요. 그래서 오히려 다음 앨범에 대한 압박감이 컸을 것 같은데요.
박 음악에선 완벽을 추구하는 편입니다. 다른 데선 실수도 많이 하는데. (웃음) 그런 이유로 다른 가수처럼 많은 앨범을 쉽게 낼 수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해요.
김 특히 가사가 시 같아요.
박 발표하고 만든 곡이 약 200곡 돼요. 곡을 쓰면 자연스럽게 가사가 떠오르는 경우가 많아요. 삶이 녹아드는 가사가 좋더라고요. ‘가사로 멜로디를 만드는 사람’으로 ‘박선주’를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김 박선주를 보면 노래 만들고 부르는 밥 딜런이나 한국의 최백호 같은 느낌이 들어요.
박 제가 음악적으로 지향하는 바이기도 해요. 작곡가라는 타이틀은 어쩐지 좀 부담스러워요. 스스로 작곡가라기보다는 싱어송라이터라고 생각해요.
김 2012년 강레오 셰프와의 결혼을 발표해 놀란 이들이 많아요.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고 부르짖던(?) 박선주의 돌발 발표에 저도 무척 놀랐거든요.
박 이런 말을 하면 오해하실 수도 있지만, 사실 전 아이를 갖고 싶었지 결혼 생각은 없었어요. 바닥부터 시작해서 가수로서 남부끄럽지 않은 경력을 쌓았는데도 어느 날 허무함이 밀려들더라고요. 친구처럼, 인생의 동반자처럼 함께 지낼 아이가 갖고 싶었지요. 그런데 강레오씨도 같은 생각을 하는 거예요. 둘 다 처음엔 결혼은 안 하고 아이를 낳아 늘 연인처럼 지내면서 키우자 했지요. 그러다가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밀려 결국 하게 됐어요. 지금도 서로의 생활을 잘 지켜주면서 지내려고 노력해요. 결혼해도 너는 너, 나는 나! (웃음)
김 딸이 두 사람한테 매우 특별하겠네요?
박 우리는 딸이라는 소중한 존재를 가진 특별한 관계로서 연대의식이 있어요. 레오씨는 아이의 생각을 ‘훔치는’ 대신 최대한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고 싶은 대로 놓아주는 좋은 아빠죠. 내 생활을 존중해주는 최고의 파트너기도 해요.
스타일리스트 김성일이 만난 가수 박선주.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김 아티스트로서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박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아티스트로서, 엄마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고될 때도 많아요. 그래도 아이의 눈을 통해 볼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이 놀라워요. 새로운 시각으로 보이는 세상이 있거든요. 집에서도 종종 곡 작업을 하는데, 아이한테 제일 먼저 들려주고 평가를 부탁해요. 아이가 가장 정확한 평가자이기도 해요. 가장 냉정하고 깐깐한 관객이죠.
김 박선주의 곡 중 가장 인기를 끈 것은 뭔가요? 저작권료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박 1996년 디제이디오씨(DJ DOC)가 발표한 ‘슈퍼맨의 비애’와 그 앨범에 실린 9곡 모두 큰 인기를 얻었지요. ‘스테디셀러’는 역시 2006년에 발표한 4집 앨범의 ‘남과 여’입니다. 가수 김범수의 피처링(다른 가수의 노래 작업 등에 참여해 일부분을 맡는 일)이 돋보이는 곡이기도 했어요. ‘사랑 그놈’, ‘너의 집 앞에서’도 지금까지 사랑해주시는 분이 많은 곡입니다.
김 박선주표 음악의 인기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요?
박 사랑과 남녀관계에만 치우치지 않는 가사 덕이 아닐까요. 봄부터 여름, 가을, 겨울을 아우르는 ‘스토리텔링’ 가사가 아무래도 공감을 얻은 것 같아요. 작사나 작곡에만 치우치지 않고 편곡까지 직접 하다 보니 곡 제작 과정도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고요.
김 배우에게도 노래를 가르쳤는데 가수와 다른 점이 있나요?
박 배우는 기교는 없지만 감성이 풍부해요. 노래를 부르면서도 표정과 목소리로 연기를 하는 것 같아요.
김 지금까지 가르친 이 중 기억에 남는 이가 있나요?
박 모든 제자가 특별하지만 배우 이병헌은 정말 특별했어요. 노래를 단 한 번도 불러보지 않았다는데, 일취월장하는 것이 느껴졌어요. 일본의 오리콘 차트(일본에서 가장 지명도 높은 음악 순위 차트)에 오르기도 했지요. 배우가 ‘아시아 신인 가수상’을 받은 일은 이례적이죠.
스타일리스트 김성일이 만난 가수 박선주.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2008년 한류스타 이벙헌은 일본에서 발표한 싱글앨범 <언젠가>가 오리콘 데일리와 위클리 차트에서 단숨에 2위에 올라 가수로서도 인기를 확인했다. 당시 1주일 만에 3만7000여장이 팔렸다고 한다.
김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애착이 가는 노래가 있어요?
박 개인적으로 가장 아깝게 생각하는 곡은 손호영의 ‘운다’라는 곡입니다. 그가 솔로 가수로 데뷔하면서 발표한 곡인데, 내 욕심보다 사랑을 받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김범수의 ‘기억을 걷다’도 참 아끼는 곡이죠.
김 지금 주로 중국에 머물고 있다고 들었어요.
박 중국에서 학교에 다니며 중국어에 익숙해지는 연습 중입니다. 한국 시장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 시장을 개척하려고요. 제대로 된 싱어송라이터를 양성하고 싶어요. 내가 선두 주자가 돼야 후배들이 편하게 길을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19살 데뷔해서 결혼하기 전까지, 박선주씨는 아티스트로서 온전한 삶을 살았잖아요. ‘인생 1막’인 셈인데, 지금은 ‘인생 2막’을 사는 것 같아요. 반은 가족에게, 나머지 반은 아티스트 세계에 내준 것처럼 사는군요. 아이가 커서 독립하면 어떤 삶을 살고 싶어요? ‘인생 3막’이 되겠군요.
박 지금까지 후배를 가르치기는 했어도, 키우지는 못했다는 반성을 해요. 다시 온전한 아티스트로 살 수 있게 되면 ‘인디’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진짜 ‘인디 아티스트’를 발굴해서 키우고 싶어요. 나는 맨땅에서 고생하며 시작했지만, 후배들에게는 제대로 된 무대를 만들어주고 싶죠. 음악을 하면서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목표예요.
박선주 프로필
1989년 <문화방송>(MBC) ‘강변 가요제’에서 ‘귀로’로 데뷔
1990년 1집 앨범 ‘소중한 너’ 발표
1993년 미국으로 유학
2001년 귀국 후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
2006년 5집 앨범 ‘드리머(Dreamer)’ 발표
2012년 유명 스타 셰프 강레오와 결혼
2017년 <문화방송>(MBC)의 <복면가왕> 출연
정리 백문영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