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 쇠고기 아롱사태나 양지머리 등을 오랜 시간 우린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음식이죠. 단짝은 시큼한 깍두기입니다. 국물 맛이 깊을수록, 육향이 진할수록 깍두기의 신맛은 더 도드라지지요. 반대로 아삭한 깍두기의 맛이 눈을 찡긋할 정도로 시면 국물의 고기다운 감칠맛이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국물과 깍두기는 서로 의지하고 보완하면서 맛의 천국을 만드는 관계죠.
마치 우리 인생 같습니다. 슬픈 일의 고통과 기쁨의 환희가 같은 관계 아닐까요? 뜬금없이 왜 곰탕 얘기냐고요?
최근 <곰탕>이란 소설을 읽었습니다. 그것도 미국 샌프란시스코 어둑한 호텔에서였지요. 태평양 건너 있는 미국은 한국과는 낮과 밤이 바뀐 상태로 여행자를 순결하고 고요한 시간대에 머물게 합니다. 출장차 간 그곳에서 그 고요를 감당할 길 없어 글자 속 번잡한 세상으로 저를 담가버렸습니다. 음식 소설이냐고요? 아닙니다. 제목은 ‘곰탕’이지만 레이저 총으로 사람을 죽이고 죽는 에스에프(SF) 소설입니다. 영화감독이기도 한 김영탁 작가가 쓴 이 소설은 2064년 미래에서 현재로 온 이의 가족관계가 큰 줄기입니다. 그럼 곰탕은 뭐냐고요? 주인공이 현재로 온 이유가 곰탕 때문입니다. 부산의 유명한 곰탕집 제조법을 배워 가려는 거였죠. 사실 소설에선 곰탕이 그다지 중요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전 그 곰탕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곰탕집 주인 노인은 곰탕을 끓이는 시간 동안 굳이 솥단지를 지키고 있을 필요가 없는데도 그저 바라보고 기다리기만 합니다. 꾸준히 오래 기다리는 것, 그것이 비법이었죠.
이번 호 주제는 ‘홈트’(홈트레이닝)입니다. 집에서 하는 운동을 말하는데요. 이른바 홈트 선수들의 사례를 보니 노인의 비법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일단 시작하면 꾸준히 오랫동안 하고, 몸이 바뀌는 것을 기다려주는 것. 이제 맨살을 드러내고 다녀야 할 여름이 코앞입니다. 굳이 체육관을 안 가도 되는 건 정말 다행입니다. 홈트만의 매력이죠.
박미향 ESC팀장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