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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꽃차 소믈리에로 변신한 아이돌 “저와 함께 마셔볼래요?”

등록 2018-04-12 10:57수정 2018-04-12 11:44

[ESC] 커버스토리

디베이스·스매쉬 출신 남현준
6년 전 꽃차에 매료돼 소믈리에 변신
꽃차 대중화 위해 직접 만들고 강의
“지금 하는 일 만족···가수 미련 없어”
아이돌 그룹 디베이스 일원으로 활동했던 남현준씨는 현재 꽃차 소믈리에로 활동 중이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아이돌 그룹 디베이스 일원으로 활동했던 남현준씨는 현재 꽃차 소믈리에로 활동 중이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꽃차 소믈리에’란? 꽃차의 재료가 되는 꽃의 특성과 제다법(차를 만드는 방법)을 익히고, 꽃차의 색과 향과 맛을 분별하고 평가하는 전문가를 말한다. 힐링과 웰빙을 추구하는 이들이 늘면서 꽃차 소믈리에는 주목받는 직업 중의 하나다. 최근 <제이티비시>(JTBC) <슈가맨2>에 출연한 디베이스 출신 남현준(38)씨도 꽃차 소믈리에로 변신해 화제다. 2000년대 인기 아이돌그룹 디베이스와 스매쉬 등에서 활동했던 그는 왜 꽃에 매료됐을까.

“꽃차가 있는지도 잘 몰랐어요.”

처음엔 꽃에 관심조차 없었다. 꽃차엔 더욱더. 20대 초반인 2001년부터 디베이스로, 이어 2008년부터 스매쉬로 활동한 그에게 전부는 춤과 노래였다. 정작 그랬던 그가, “지금은 가수, 방송 활동에 미련이 없다”고 한다. 물론 <슈가맨2>에 출연하기까지 준비 과정과 방송 출연, 뒤풀이까지는 그에게 옛 추억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방송 이후 타임머신에서 내려와 현실로 돌아오기까지 심적으로 한달이 걸렸지만, 그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너무 행복하다”며 웃었다.

백목련꽃차는 봉우리 상태에서 한 잎씩 손으로 펴서 만든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백목련꽃차는 봉우리 상태에서 한 잎씩 손으로 펴서 만든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지난 8일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 ‘눈으로 마시는 꽃차’에 찾아갔을 때, 그는 백목련 꽃봉오리를 다듬고 있었다. 인적이 드물고 공기가 깨끗한 산에서 직접 채취한 것이다. “식용꽃은 깨끗한 지역에서 채취하거나, 유기농 재배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털이 복슬복슬한 바깥 부분은 벗겨내 세심히 닦고, 꽃봉오리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열어 활짝 핀 것처럼 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꽃차라는 것이, 금방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구나! 굳이 이런 과정이 필요한지 물었다. “첫째는 아름답게 먹기 위함이죠. 둘째는 꽃잎이 벌어져 있지 않으면 건조할 때 수분이 빨리 날아가고, 골고루 익혀지지 않아요. 셋째는 꽃잎만 식약처에 식용으로 등재돼 있어서 나중에 꽃술을 제거할 때 편하거든요.”

그가 꽃차를 접한 건 6년 전. 플로리스트인 여자친구 공방에 놀러 갔다 시들어져 버려지는 꽃을 본 것이 계기다. “안타깝고 속상했어요. 오래 곁에 두고 꽃을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여자친구 제안으로 꽃차 강좌를 듣게 됐어요.” 때마침 그룹 스매쉬를 떠난 뒤라 이후 인생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첫 수업 때 마신 목련꽃차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셈이다. “너무 맛있었어요. 그래서인지 매년 이맘때쯤 목련꽃을 다룰 땐 감회가 남달라요.”

공교롭게도 요즘 같은 환절기엔 백목련차가 제격이다. 그는 “봄철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천식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효과가 있다”며 “어릴 적부터 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차를 마신 뒤부터 사라졌다. 두통과 집중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그가 기자에게 목련꽃차를 건넸다. 향이 달콤하고, 맛도 부드러웠다. 꽃잎 한장일 뿐인데, 향과 맛이 꽤 진하고 그윽했다. “꽃잎 하나를 진하게 내리려면 물 500밀리리터, 연하게 마시려면 1리터가 필요해요. 그것도 서너 번까지 우릴 수 있어요.”

백목련꽃차는 봉우리 상태에서 한 잎씩 손으로 펴서 만든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백목련꽃차는 봉우리 상태에서 한 잎씩 손으로 펴서 만든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차의 재료가 되는 꽃들은 의외로 많다. 식품공전에 등재된 꽃만 해도 100여가지다. 널리 알려진 국화를 비롯하여 벚꽃, 매화, 진달래, 자두꽃, 살구꽃, 사과꽃, 쑥꽃, 연꽃, 치자꽃, 장미꽃, 백합, 카네이션, 팬지, 맨드라미 등이 모두 꽃차의 재료다. 꽃차 소믈리에가 대단한 것이, 이런 꽃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독성을 감별해야 할 뿐 아니라 차를 만드는 방법까지 해박한 정보와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꽃차협회 상임이사 겸 수석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도 끊임없이 꽃차의 특성과 제조법을 연구하고 실험한다. “조선시대 사약으로 쓰였던 투구꽃과 천남성이 약으로 쓰일 때가 있어요. 꽃들 역시 어떻게 제다를 하고 어떤 용법으로 마시느냐에 따라 약이나 독이 될 수 있어요. 저 역시 많은 시행착오 끝에 저만의 제다법을 개발하고 있는걸요.”

인터뷰 도중 꽃차 주문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은 꽃차를 주문하실 수 없어요.” 안타깝게도, 방송 출연 이후 주문이 쇄도해 그나마 남아 있던 재고마저 바닥났다. 목련꽃차 작업이 마무리되면 벚꽃차를 만들 계획이다. 그는 “모두 수작업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공장에서 찍어내듯 대량 생산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꽃들의 개화 시기는 보통 2~3주. 이때 맞춰 꽃을 채취하거나 구입(유기농 친환경 제품)해 단기간에 만들지 않으면 제작까지 꼬박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꽃차가 만들어지기까지 ‘9증9포’의 과정을 거친다. 즉, 9번 찌고 9번 식힌다는 뜻이다. 꽃 속에 약성이 있어 무탈하게 마시기 위해서는 덖(볶)거나 쪄서 약성을 완화시키는 것이 필수다. 꽃마다 특성이 다르고, 너무 많이 덖으면 꽃이 갖고 있는 고유의 향과 색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온도와 덖는 횟수가 중요하다. 물론 꽃차의 향과 맛에도 영향을 미친다. “꽃차 소믈리에마다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는데, 일종의 경쟁력이죠. 제 경우 백목련을 5번 덖어요. 덖는 횟수가 늘어나면 목련의 매운 향이 사라지고, 고유의 흰색과 노란빛이 붉거나 검게 변하거든요.”

아이돌 그룹 디베이스 일원으로 활동했던 남현준씨는 현재 꽃차 소믈리에로 활동 중이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아이돌 그룹 디베이스 일원으로 활동했던 남현준씨는 현재 꽃차 소믈리에로 활동 중이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꽃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우울한 기분을 없애준다. 하지만 꽃과 생활해야 하는 꽃차 소믈리에는 다르다. 작업실에서 하루 종일 홀로 꽃과 씨름해야 하는 일은 절대 녹록지 않다. 아이돌 출신이기에, 적응이 힘들지 않았을까. 그는 “어릴 땐 친구들과 마시는 술과 그 술자리 분위기를 좋아했다”며 “지금은 조용하고 안락한 곳을 찾아다니는데, 미처 몰랐던 내성적인 내 취향과 성격을 꽃을 접하면서 알게 됐다”고 했다. 조급하던 성격도 느긋해지고, 마음에 안정도 되찾았다. 이제는 인생의 성공도 부와 명예, 인기가 아니라 ‘평온하지만 느리게 사는 삶’에 진짜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백목련꽃차.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백목련꽃차.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그가 고향인 강원도 원주에서 새 작업실을 마련한 지 꼭 일주일. 아직 정리가 덜 된 듯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한쪽 벽에 진열된 10여가지 꽃차 병만큼은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매화, 진달래, 산목련, 홍매화, 아카시아, 겹작약, 그라비올라, 카네이션, 뚱딴지꽃 등으로 만든 차들이다. 가장 처음에 만든 꽃차들이라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한다. “작업실의 모든 벽을 제가 만든 꽃차로 채우는 게 꿈이에요.” 뚱딴지꽃차라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는 “해바라기를 닮은 국화과 꽃인데, 꽃이 예쁜 데 반해 뿌리가 못생겨서 ‘뚱딴지 같아’ 생긴 이름”이라며 “비타민C가 많아 변비와 당뇨,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꽃차는 녹차와 달리 마실 때 특별한 예법이 없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물의 양과 온도를 조절해서 마시면 된다. 즉, 향이 좋아 산 꽃차라면 향을 즐기고, 맛이 좋아 구입한 꽃차라면 혀로 음미하면 된다. 마음 수련을 할 목적이라면 천천히 마시면 그만이다.

꽃차를 자신의 카페에서 판매할 계획도 있는지 물었다. “그럴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꽃차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제 지식을 알려주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그것만으로 꽃차 대중화가 앞당겨진다고 보거든요. 솔직히 카페에 공급할 만큼의 물량을 만들 여력도 안 되고요.” ‘100% 수제’. 그가 고수하는 ‘눈으로 마시는 꽃차’의 제조 원칙이다. “꽃차 소믈리에는 꽃을 죽이는 직업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직업이에요. 그만큼 정성껏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마음이 담긴 꽃차라야 맛과 향이 뛰어날 테니까요.”

홍매화차.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홍매화차.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꽃을 사랑하고, 꽃차를 향한 그의 열정이 절로 느껴졌다. 그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꽃차라며 홍매화차를 건넸다. 그의 말처럼 피로가 풀리고 절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꽃차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원주/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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