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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개구리 먹는 이 VS 소고기 먹는 사람

등록 2018-03-21 19:53수정 2018-03-21 20:05

[ESC]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김태권 그림.
김태권 그림.

앙숙으로 유명한 영국과 프랑스. 영국에서는 프랑스 사람을 “프로그”(frog·개구리)라고 낮추어 부른대요. ‘개구리고기를 먹는 사람’이라는 뜻이라나요. 한편 프랑스에서는 영국 사람을 “로스비프”(rosbif)라고 놀린다고 합니다. 영국요리 로스트비프에서 온 말이래요.

두가지 점에서 얄궂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는 로스트비프가 맛있는 음식이라는 사실. 영국 음식이 별로 맛이 없다는 것은 굳이 프랑스에서 놀리지 않더라도 영국이 먼저 나서서 인정하는 터. 그런데 겉은 익고 속은 발그레, 육즙이 좔좔 흐르는 로스트비프는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가요. 따뜻한 음식과 함께 먹어도, 식은 채 차갑게 먹어도 훌륭합니다. 얇게 저며 빵에 끼워 먹어도 그만이지요.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비프(beef)라는 단어의 내력입니다.

옛날에 영어 공부할 때 고기 이름을 외우며 혼비백산한 경험이 있죠. 소는 옥스(ox)와 카우(cow)인데 소고기는 비프(beef), 돼지는 피그(pig)인데 돼지고기는 포크(pork), 양은 램(lamb)인데 양고기는 머튼(mutton). 같은 영어인데 어찌 이리 다를까요. 오히려 프랑스어 뵈프(bœuf·소)나 포르(porc·돼지)나 무통(mouton·양)과 비슷해요. 어찌 된 영문일까요?

중세 영국의 역사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어요.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는 잉글랜드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입니다. 노르만 사람 윌리엄이 바다를 건너와 잉글랜드를 다스리던 해럴드왕을 물리쳤지요. 잉글랜드의 왕족과 귀족이 윌리엄이 데려온 사람들로 바뀌었습니다. 노르만 사람들이 사용하던 중세 프랑스어 어휘가 영어에 들어온 사연이지요.

작가 빌 브라이슨에 따르면 이렇게 계급에 따라 어휘가 달라졌다고 하네요. 잉글랜드의 농민에게 ‘소’란 밭을 가는 가축, 그런데 노르만에서 온 귀족에게 ‘소’는 식탁에 오를 먹을거리. 서민이 쓰는 잉글랜드 말은 가축 이름이 되고, 귀족이 쓰던 프랑스어는 고기 이름이 되었습니다. 잘사는 사람이 고기를 먹던 시절의 일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확 바뀌었어요. 이제는 육식이 부자의 전유물이 아니지요. 기름진 정크 푸드를 서민이 먹고 부자는 채식을 하는 시대입니다. 옛날에는 “복스럽다”거나 “풍채 좋다”는 말이 부유한 사람을 가리켰지만 요즘은 가난한 사람 가운데 비만이 많습니다. 비만과 함께 건강도 문제가 됩니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미 비만을 질병으로 규정했지요. 서민층은 몸을 챙길 여유가 없으니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 상황에 한몫 보태는 것이 ‘공장식 축산’입니다. 고기 값을 내리기 위해 동물을 비좁게 가둬 기르지요. 고기 값이 내리니 가난한 사람이 기름에 튀긴 고기를 먹고 끼니를 때웁니다. 동물은 학대받고 사람은 비만에 시달리고, 동물한테도 사람한테도 못할 짓이네요. 지금 같은 대규모 축산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지적도 나오고요. ‘동물복지’가 주목받는 요즘입니다.

그렇다고 유발 하라리가 최근 <가디언>에 썼듯 “공장식 축산이 어쩌면 역사상 가장 끔찍한 범죄”라고 잘라 말하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네요. 돈이 없어 값싼 고기를 먹는 가난한 사람은 ‘끔찍한 범죄자’란 말인가요? 부자만 고기를 먹던 중세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겠지요. 그래서 육식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떤 고기를 먹느냐는 문제는 오롯이 개인의 윤리적 결단에 달려 있으니까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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