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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찍하고 활발한 옛 모습 그대로…첫눈에 반한 칭퀘첸토

등록 2018-03-15 09:50수정 2018-03-15 10:32

[ESC] 신동헌의 으라차차
피아트의 칭퀘첸토
피아트의 칭퀘첸토

초등학생 시절, 누나가 보던 일본 영화잡지 <로드쇼>를 뒤적이다 칭퀘첸토(Cinquecento)를 처음 만났다. <미래소년 코난>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유명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연출한 만화영화 <루팡 3세>에 대한 기사에서 주인공이 타고 있는 작은 자동차가 눈에 띄었다.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뭔가 활기차게 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형태가 인상적이었다. 트렁크가 없는 해치백인데도 뒷부분이 톡 튀어나온 실루엣이 독특했고, 활짝 열린 뒷부분의 해치 도어로 엔진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만화영화인데도, 그 묘사는 상당히 정확했다. 십수년이 흐른 뒤 확인해보니 피아트가 1957년에 처음 생산한 모델로 499㏄ 공랭(空冷)식 2기통 엔진을 차체 뒷부분에 실은 소형차였다. 이름은 배기량을 그대로 이탈리아어로 읽은 것이다. 우리로 치면 ‘오백이’쯤 되려나. 이 차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국민차’로 여겨지는데, 세르조 메르쿠리 전 주한 이탈리아대사가 “이탈리아 사람 중에 칭퀘첸토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던 사람은 없다”고 설명할 정도다. 이탈리아의 오래된 도시에 있는 좁은 골목길에서도 달릴 수 있는 작은 차체, 혈기 왕성한 이탈리아인들이 만족할 수 있는 운동 성능, 옆 사람과 어깨를 부딪쳐야 할 만큼 좁지만, 그렇기 때문에 수다 떨기 좋아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입맛에 맞았던 차. 만화영화에서 차체 뒤쪽의 해치도어를 열고 있었던 이유는 공랭식인 탓에 차체 열기를 식히기 수월하도록 많은 오너들이 그걸 열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만약 독일 사람들이었다면 부족한 냉각 성능을 높이기 위해 기계적인 조치를 취했겠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셔츠의 팔뚝 부분을 걷어 올리듯 뚜껑을 열고 달린다. 그 호쾌한 라틴 감각이 마음에 들었다.

2007년에는 당시의 복고 붐 덕분에 과거의 모습을 재해석한 새로운 모델이 등장했다. 동글동글한 헤드라이트와 빵빵한 차체가 1950년대의 모습을 쏙 빼닮았다. 세계적인 이슈를 불러일으키며 영국 자동차 전문지 <카>가 뽑은 ‘올해의 차’에 뽑히기도 하고, 2009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유럽 사람들은 과거의 연인과 사랑에 빠졌고, 어느 도시를 가나 색색의 칭퀘첸토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몇년 뒤인 2013년에 들어왔는데, 현지 가격(1800만원대)에 비해 지나친 고가 정책(2400만원대)을 쓴 탓에 인기가 시들했다. 첫눈에 반했던 나 같은 사람조차 망설이게 되는 가격이었는데, 잘 팔리지 않자 1년 만에 1800만원대로 할인을 펼친 게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중고차 가격까지 무너지니 그나마 지지해온 마니아들에게 찬물을 부은 셈이었다. 수입품은 가격을 비싸게 책정해야 잘 팔린다는 말이 있지만, 이 차의 경우는 잘못된 가격 책정이 매력을 반감시킨 예다. 깜찍한 디자인과 활발한 달리기 성능에도 불구하고, 칭퀘첸토는 제대로 나래를 펴지도 못한 채 피아트 브랜드와 함께 사라질 위기에 처한 상태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중고차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칭퀘첸토의 안부를 확인한다. 언젠가 꼭 타고 싶어서.

자동차 칼럼니스트·<그 남자의 자동차> 저자, 사진 FCA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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