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아(가명·43·회사원)씨는 새해부터 가계부 쓰기를 결심했다. 지난가을 우연히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을 듣고, 저축액이 절대적으로 작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혼 13년차, 맞벌이, 부부 월평균 소득 600만원. 그럼에도 지난 3년간 모은 돈이 한 푼도 없다. 아파트 대출금 일부를 갚았지만, 씀씀이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셋의 교육비도 만만치 않은데다, 워낙 주머니에 있는 돈은 써야 직성이 풀리는 부부의 성격도 한몫했다. 한씨는 일주일간의 영수증을 토대로 가계부를 썼다. 하지만 가계부도 잘 쓰는 법이 있다는데 확신이 안 섰다. 그래서 ‘가계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가계부 분석해보니…스튜핏
■ 최현진 신한금융투자 WM사업부 과장 “어처구니 스튜핏!”
“마트에서 무려 한번에 13만1000원을 쓰셨군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뭘 샀는지 기록돼 있지 않네요. ‘싸다’ 싶어 충동적으로 구입한 것도 있죠? 저렴하다고 생고기를 대량으로 구입하면 남게 됩니다. 먹고 남은 걸 냉동실에 넣어둔다면 그냥 생고기가 아닌 값싼 냉동고기를 산 셈이에요. 잊지 마세요. 당일 필요한 식재료만, 당일 구입하는 습관을 들여 보세요. 일주일에 하루쯤 ‘무지출 데이’를 정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아예 충동구매를 부추기는 대형마트를 끊으면 어때요?”
■ 박혜경 다온세무회계사무소 세무사 “베리베리 스튜핏!”
“커피 값을 보니 밥값 못지않게 비싸군요. 가성비 좋은 대체재가 분명 있을 텐데요? 일주일에 커피 값만 3만원 이상 쓰셨다면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맛이 크게 뒤지지 않는다면 저렴한 브랜드 커피 또는 스틱 커피를 애용하세요. 고급 커피집의 커피와 견줘 가격 차가 10배나 됩니다. 향수는 연일 사셨네요. 향이 달라 사셨을 텐데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요?”
■ 최미영 <아내 CEO 가정을 경영하라> 저자 “슈퍼 울트라 스튜핏”
“일주일 동안 택시를 무려 네 번이나 타셨네요. 금액을 보니 아주 가까운 거리군요. 걷거나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만한 곳도 택시로 다니셨네요. 그런 습관부터 버리셔야 돈이 모입니다. 택시비가 3, 4천원 정도라고 우습게 보면 안 됩니다. 쌓이면 화들짝 놀랄 만한 금액이 됩니다. 졸졸 새는 물이 둑을 무너뜨리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스튜핏’ 줄이고 ‘그뤠잇’ 늘리는 가계부
한정아씨는 세 명의 전문가에게 타박(?)을 듣고 궁금증이 더 커졌다. 어떻게 하면 가계부를 잘 쓸 수 있을까? 재테크의 기본은 가계부라고 하지 않던가. 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더니 깨알 정보가 돌아왔다.
Q 신용카드, 체크카드, 현금, 자동이체 등 지출 경로에 따라 가계부를 쓰고 있어요. 잘하는 건가요?
“경로보다는 고정지출과 변동지출을 구분해 쓰세요. 고정지출은 관리비, 교육비, 저축, 보험료, 통신비, 대출 등 고정적으로 매달 나가는 비용이죠. 급여가 들어오는 날이나 그 다음날에 일괄 빠져나가도록 이체일부터 조정하는 게 좋아요. 그러고 남은 돈이 생활비, 즉 변동지출이 되는 겁니다. 그 비용 안에서 지출을 조절하면 가계부 작성이 더 쉬워집니다. 생활비 통장을 따로 만들어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잔액과 지출의 흐름이 한눈에 보입니다.”
Q 하루 지출액과 잔액 표기 없이 지출 내용만 적고 있는데?
“기록보다 중요한 건 분석과 반성, 행동의 변화입니다. 쓰지 않아도 될 지출을 했거나 충동적인 소비를 했다면 반성하고 개선해야 합니다. 특히 지출 항목 중에서 값이 싸고 가성비 좋은 대체재가 있다면 무조건 갈아타야 해요. 예를 들어, 고급 카페에서 1만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가계부에서 드러났다면, 3천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걸로 바꾸면 어떨까요? 액수도 같이 적어야 실감이 나서 더 줄일 수 있어요. 그래야 ‘그뤠잇’이 될 수 있어요.”
Q 지출 항목을 단순화시키면 가계부 적기가 수월해질까요?
“네 그렇죠. 단순화시켜 적으면 훨씬 일목요연하게 지출 항목이 눈에 들어옵니다. 특히 식구가 5명으로 많으니까 쌀, 물, 라면 등으로 나누지 말고, ‘식비’로 통일해 보세요. 영화, 책, 음반 구입 등은 ‘문화비’로 묶으세요. 단, 옷값(옷·신발·미용실·액세서리 등), 외식비(커피·간식 등) 등은 충동구매와 연결될 수 있으므로 구체적으로 적으세요. 가계부를 보니 향수 두 개, 옷, 가방 등 불필요한 소비가 많아 보여요. 그런 건 빨간색 볼펜 등으로 적어 눈에 띄게 하면 좋아요. 하루 지출에 대한 총평이나 일주일 소비에 대한 한 줄 메모를 적어 보세요. 새는 돈 막는 데 요긴하답니다.”
Q 여러 장의 신용카드를 사용해요. 그걸 다 적다 보면 머리가 복잡해져요. 카드마다 혜택도 많잖아요. 남는 장사를 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가계부와 가장 잘 어울리는 건 현금카드나 체크카드입니다. 신용카드 개수를 줄이세요. 월 수입 내에서 균형 잡힌 소비를 가로막는 주범입니다. 신용카드는 내 소득보다 더 많은 한도를 주기 때문에 ‘소득>지출’ 관념을 잊게 만듭니다. ‘혜택이 많아 카드 쓴다?’ ‘포인트도 쌓이고, 할인도 받고, 소득공제도 받으니 이득 아니냐?’ 싶지만, 이런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아예 그 혜택을 받지 않고 덜 쓰는 게 가계에 도움이 됩니다. 가계부를 쓰기로 결심했다면, 현금카드와 체크카드 사용만을 추천합니다.”
Q 책, 인터넷, 애플리케이션 등 가계부를 작성하는 방법이 다양해요. 수기 가계부가 좋을까요?
“정답은 없어요.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고르세요. 하지만 가급적이면 수기 가계부를 권합니다. 기록의 의미 외에 ‘지난달 모임이 너무 많았구나’ 등 성찰의 기회를 갖게 해주기 때문이에요. 어찌 됐건 ‘김생민의 영수증’ 조언처럼 ‘스튜핏’을 줄이고 ‘그뤠잇’을 늘리는 것이 가계부를 쓰는 첫번째 목적입니다.”
가계부: 가정의 수입과 지출을 기록하는 장부. 제3자의 시각에서 가족 혹은 개인의 소비습관을 파악할 수 있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기에 유용하다. 수입과 지출을 적은 뒤에는 분석과 반성, 변화가 필요하다. 요즘에는 종이가계부뿐 아니라 스마트기기용 가계부 앱도 많다. 한국 가계부의 시초는 어사 박문수(1691~1756) 집안에서 쓴 <양입제출>로 알려져 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 도움말: 최현진 신한금융투자 WM사업부 과장(<부자 되는 가계부 첫걸음> <월급쟁이 부자되는 재테크 첫걸음> <돈 공부 입문> 저자), 박혜경 다온세무회계사무소 세무사(<2018 세무사가 알려주는 돈 버는 가계부> 저자), 최미영 <돈 버는 가계부> <아내 CEO 가정을 경영하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