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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민해경 “노래로 선한 영향 미치는 사람 되고파”

등록 2018-01-31 19:44수정 2018-02-01 17:10

[ESC] 김성일이 만난 완소 피플

4년 만에 싱글음반 들고나와
데뷔 40년차 ‘위 러브 유’로 가요계 똑똑
1995년 결혼 후 활동 뜸해
다시 노래로 희망 전하고 싶어

검은색 스카프와 분홍색 티셔츠. 1980~90년대 국내 가수 최초로 파격적인 란제리룩을 선보였던 민해경은 십수년이 흐른 현재까지 패셔니스타로서 뛰어난 감각을 선보였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검은색 스카프와 분홍색 티셔츠. 1980~90년대 국내 가수 최초로 파격적인 란제리룩을 선보였던 민해경은 십수년이 흐른 현재까지 패셔니스타로서 뛰어난 감각을 선보였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민해경(56)은 한국의 ‘마돈나’였다. 서구적인 외모,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허스키하면서도 폭발적인 가창력을 가진 그는 1980~90년대 최고의 ‘디바’로 불렸다.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내 인생은 나의 것’ 등 발라드는 물론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 ‘보고 싶은 얼굴’ 등 댄스곡까지 섭렵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최초의 란제리룩을 선보이는 등 파격적인 의상과 안무는 늘 화제에 올랐다. 올해도 어느덧 데뷔 40년. 신곡 ‘위 러브 유’를 발표하며 오랜 공백을 깨고 대중 앞에 섰다. 지난 1월19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민해경의 오랜 팬인 김성일이 그를 만났다.

김성일(이하 김) 나 지금 너무 떨려. 누나 데뷔했을 때부터 팬이었어. 내 인생을 좌지우지했던 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 ‘해바라기’(2인조 포크음악그룹) 이주호가 작곡한 ‘날이 가면’이란 노래를 참 좋아했어. 이주호 버전이 부드럽다면, 민해경 버전은 세련되고 강해. 굉장히 독특했거든. 어쨌건 계은숙, 민해경은 내가 꼽는 디바 랭킹 1, 2위야. 가수 데뷔는 어떻게 하게 된 거야?

민해경(이하 민) 옛날, 가수는 요령과 기교보다는 그냥 노래를 잘 부르면 됐어. 노래를 자기만의 색깔로 잘 소화하느냐 여부로 판가름 났지. 업소, 소위 ‘밤일’하면서 입소문이 나면 매니저나 음반사 관계자가 데려가서 데뷔시켰어. 내 경우도 그랬고.

목소리가 좋으면 외모가 어떻든 가수가 될 수 있던 시기였네? 지금은 아무리 노래 잘해도 외모가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가수 데뷔가 쉽지 않잖아!

당시(1980~90년대) 가수는 얼굴보다 무조건 목소리. 노래 못하면 가수 데뷔해도 금방 외면당하던 시기였어. 그런 점에서 나나 계은숙씨는 행운인 거지. 삼박자를 다 갖추고 있는 가수라고들 했으니까.(웃음)

지금 보니까 누나 배우 이나영하고 닮은 거 같다! 지금도 누나 얼굴은 트렌디해.

눈이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나야 영광이긴 한데….

옛날엔 가수 지망생들이 집에서 카세트테이프에 자신이 부른 노래를 녹음해서 기획사에 보내 데뷔하기도 했잖아?

그랬지. 당시 내가 소속한 회사가 그래서 가수 신승훈 놓쳤잖아. 회사에 카세트테이프를 보냈는데, 들어보지도 않고 버린 거야. 워낙 그런 카세트테이프가 많이 들어오니까.

신승훈 놓치고 엄청 아쉬워했겠어.

그땐 심수봉 언니 놓친 걸 더 아쉬워했어. 대학가요제 보고 ‘쟤 잡아 데뷔시킨다’며 접촉했지만 무산됐거든.

검정색 스카프와 분홍색 티셔츠. 1980~90년대 국내 가수 최초로 파격적인 란제리룩을 선보였던 민해경은 십수 년이 흐른 현재까지 패셔니스타로서 뛰어난 감각을 선보였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검정색 스카프와 분홍색 티셔츠. 1980~90년대 국내 가수 최초로 파격적인 란제리룩을 선보였던 민해경은 십수 년이 흐른 현재까지 패셔니스타로서 뛰어난 감각을 선보였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 ‘위 러브 유’로 언니가 돌아왔다

민해경은 지난해 11월 싱글 음반 <위 러브 유>(We Love You)를 발표했다. 타이틀곡 ‘위 러브 유’는 민해경의 30년 지기인 가수 김범룡이 작곡을 하고, 민해경이 직접 가사를 썼다. 산 정상이라는 목표가 아니라 정상을 향해 오르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과 희망을 담았다. 민해경씨는 “노랫말을 통해 대중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좌절과 포기 대신 고난을 헤쳐 나갈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여기 오면서 ‘위 러브 유’를 들었어. 깜짝 놀랐어. 마이클 잭슨의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를 듣는 것 같았어. 가사도 쏙쏙 들어오고, 따뜻하고. 감동의 물결이랄까~.

솔직히 ‘그대 모습은 장미’나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 같은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을 담은 곡들은 내가 딱히 내키지 않을 때가 많았어. 그런 노래들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으니 감사한 일이긴 하지만. 어쨌건 이번 곡은 정말로 내가 부르고 싶은 가사와 멜로디야. 딱 내 스타일!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이야기야. ‘살아가면서 모두 포기를 하는 시점도 오고, 포기를 하기도 하는데, 절대 쉽게 포기하지 마라. 세상은 아직 네가 필요하고, 너에게도 세상이 필요하다. 후회하지 말고 살아라’라고 말하고 싶어.

쟁쟁한 가수들이 코러스로 참여한 것도 놀라웠어.

김세환, 혜은이, 남궁옥분, 김장수, 윤태규, 한승기 등이 참여했어. 혜은이·남궁옥분 언니는 동네 친구여서, 다른 분들은 과거 김범룡의 곡을 받은 인연으로 참여했지.

이번 평창 겨울올림픽 주제곡으로 써도 손색이 없어 보여! 올림픽 관계자가 꼭 들어봤으면 좋겠어.

검정색 스카프와 분홍색 티셔츠. 1980~90년대 국내 가수 최초로 파격적인 란제리룩을 선보였던 민해경은 십수 년이 흐른 현재까지 패셔니스타로서 뛰어난 감각을 선보였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검정색 스카프와 분홍색 티셔츠. 1980~90년대 국내 가수 최초로 파격적인 란제리룩을 선보였던 민해경은 십수 년이 흐른 현재까지 패셔니스타로서 뛰어난 감각을 선보였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김성일이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 ‘위 러브 유’ 노래를 들려주며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아(AH) 아픔 속에서 머물러 있나요/ 오! 아이(OH! I) 세상을 향해 크게 소리쳐 봐요/ (중략) 거센 바람 불어도 쓰러지지 말아요/ 세상은 그대가 그대가 필요해요.” 처음 듣는 멜로디임에도 귀에 착착 감기고, 입가에 가사가 맴돌았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범룡 오빠가 본인 음반에 넣으려고 아껴두던 곡이래. 내가 멜로디를 듣자마자 필이 꽂혀 달라고 했어. ‘이거 남자 노래인데 괜찮겠어?’ 그러면서도 ‘오케이’ 하셨어. 오빠가 너무 착해~. 작곡료도 안 받겠다는 걸, 설득해서 성의 표시만 했지. 지금은 기본 작곡료가 1천만원이고, 무명 작곡가도 500만원은 받는데 말이지. 알고 보니까 옛날 가수들한테도 다 공짜로 곡을 준 거 있지!

곡도 너무 좋지만, 어쩜 누나 목소리가 하나도 안 변했어.

지금도 목 관리를 위해 저녁 8시면 잠을 자. 운동도 35년째 계속하고 있고. 내 목소리가 좀 카랑카랑하고 신경질적이잖아. 이번 음반에선 일부러 그걸 다 없애고 부드럽게 부르려고 했어. 힘도 빼고.

‘아침형 인간’이 동안의 비결이었구나! 요즘은 무슨 운동 해?

못하는 운동은 없어. 거의 모든 운동을 섭렵했는데, 운동의 마지막은 (지금 하는) 스트레칭과 요가 같아.

싱글 음반 ‘위 러브 유’에 친필 사인을 하고 있는 민해경.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싱글 음반 ‘위 러브 유’에 친필 사인을 하고 있는 민해경.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 ‘가수는 가수만 해야’ 사명감에 한 우물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한 적 없어? 인기 많으면 영화도 찍고 하잖아.

가수만 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었어. 드라마, 영화 섭외는 진짜 많이 오긴 했어. 유일하게 출연한 드라마가 있긴 해. 1993년 <에스비에스>(SBS)의 이장수 피디가 연출한 <테마 시리즈>의 제4부 ‘적과의 사랑 이야기’ 편이야. 내가 탈옥범인 이덕화씨한테 납치된 가수 역할이었어.

연기를 해보니까 어땠어?

재미는 있었는데, 너무 어려웠어. 성격이 완전 내성적인데,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작업해야 한다는 게 힘들었어. 가수는 철저하게 개인플레이잖아. 그다음부터는 아예 안 했지.

김수철씨도 영화 <고래사냥> 찍어 인기를 끌었는데, 아쉬움은 없어?

시에프(CF)는 좀 했으니까. 드라마보다는 영화 안 한 게 아쉬워. 영화를 워낙 좋아해서 하고 싶었는데, 회사에서 못하게 한 측면도 있었고. 당시엔 소속 회사에서 못하게 하면 못하는 거니까.

민해경을 한국의 ‘마돈나’라고 하잖아. 이후에 김완선, 엄정화가 그 계보를 따랐다고 볼 수 있고.

그런 셈인가? 사실 란제리룩은 내가 시초라고 할 수 있지. 꽤 선정적이었어. 유튜브에서 민해경 검색해서 볼 때가 있는데, 나조차도 민망해서 깜짝 놀랄 때가 있어. 스타일리시하기도 하고, 아직도 촌스럽지 않고. 딸도 ‘엄마, 옷 이렇게 입었어? 대박!’ 그러더라고.

당시엔 스타일리스트도 없었을 텐데, 다 혼자 스타일링 한 거야?

그럼, 화장도 내가 다 했어. 디자이너한테 옷을 맞추기도 하고, 외국 나갔을 때 사 오기도 하고. 그런데도 가요제 시상식에서 베스트드레서상을 5번이나 받았어. 당시엔 내가 입고 방송 출연하면, 그다음날 남대문시장 등에 카피 제품이 깔리곤 했어. 그래서 방송 관계자들도 내 옷에 관심이 많았지. 나는 카메라 리허설 할 때도 옷을 절대 안 보여줬어. 생방송 때도 그때만 입고 후딱 벗었지. 다른 가수들이 따라 할까 봐. 다른 가수들한테 ‘따라 하지 말라’ 주의도 주고. 내가 인상이 강해 더 깍쟁이처럼 보이고 무서워 보였는지도 모르겠어. 여하튼 후배 가수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가수가 나였어.(웃음)

■ 누구한테 지는 것 싫어해 ‘댄스’ 배워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

욕심도 많고, 누구한테 지는 걸 싫어해. 김완선 춤이 한창 유행일 때, 나도 변화해야겠다 싶어서 김완선 춤 선생인 블랙타이거즈 이항우 대표를 끈질긴 설득 끝에 모셨어. 6개월간 매일 새벽 2시까지 피나는 노력을 했어. 사람들은 내가 춤을 원래 잘 춘다고 여겼겠지만, 그렇게까지 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 거야.

김완선과 협업 같은 거 해볼 생각 없어? 이번 연말 가요대전에서 엄정화는 선미랑 무대를 꾸몄어.

글쎄, 나는 가수들끼리 노래 바꿔 부르는 게 너무 싫어. 잘난 척은 아닌데, 바꿔서 부를 때 내 노래를 못하면 짜증이 나. 그래서 김완선이를 혼낸 적도 있어. 완선이가 나랑 한다고 하면 주눅 들걸?(웃음) ‘만날 혼났다’고 하더라고. 완선이는 지금도 나를 어려워하는데, 그래서 나는 완선이가 좋아. (강)수지는 내가 과거에 인사를 잘 안 받아줘서 서운했대. 인사를 하면 내가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다고. 나는 전혀 몰랐거든. 최근에 수지를 만났을 때 ‘어머~ 수지야!’ 그랬더니, ‘아는 척해줬다’고 기뻐하더라고. 내가 그렇게 후배들한테는 군기반장이긴 했나봐. 하긴 하늘(디제이 디오시)이도 나한테 혼났었지. 걔네들 너무 천방지축이라서. 나는 내 앞에서 버릇없는 건 못 참아.

누나도 배워서 잘 춘 춤이었구나. 전혀 몰랐어. 결혼 이후 공백기가 긴 편이었지?

그 이후에도 3~4년마다 정규 음반을 내긴 했어. 우리 또래 가수가 설 무대가 많이 없어져서 그렇게 보였을 거야. 결혼을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활동이 뜸했던 건 사실이긴 하지.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인지 결혼이 내게 굉장한 휴식처이자 안식처가 됐어. 17살에 데뷔해서 거의 30년 동안 엄청 치열하게 살았으니까. 그런데 남편이 너무 편안하게 나를 커버해주니까. 지금도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편안해.

민해경(왼쪽)과 김성일.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민해경(왼쪽)과 김성일.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문득 민해경의 오른쪽 손목에 그려진 타투가 눈에 들어왔다. “일부러 마이크 잡았을 때 잘 보이는 쪽에 새겼다”고 했다. 신혼여행 때 남편과 함께 미국 뉴욕에 있는 유명한 타투이스트한테 받은 것이라고 했다. “남편은 오른쪽 발목에 같은 무늬의 타투가 있다”며 웃었다. 그의 눈가에 주름은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지만, 결코 무겁거나 우울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주름만큼 편안해지고 행복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끔 행복한 게 미안할 때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나만 행복한 게 아닌가 해서 말이야. 그래서 내 행복을 남에게 알리려고 하지 않는 편이야. 토크쇼도 안 나가고, 휴먼다큐 같은 프로그램도 안 나가. 괜히 자랑처럼 느껴질 테니깐. 알려지는 것도 싫고. 조용히 지내고 싶어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나오면 감동을 줘야 하니까 좀 부담스럽긴 하지? 요즘 옛날에 활동했던 연예인들이 종종 나오던데.

그렇지. 감동을 원하고, 옛날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눈물을 강요하고. 어찌됐건 난 내가 있는 자리에서, 기왕이면 노래를 통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고 싶어. 그 노래가 ‘위 러브 유’이길 바라고.

민해경은 행복을 누려도 돼.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줬으니까. 그럴 자격이 충분해!

■ 민해경 프로필

1962년 대구 출생. 본명 백미경.

1979년 ‘누구의 노래일까’로 데뷔.

1980년 티비시(TBC·동양방송) 주최 제2회 서울국제가요제 참가.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활동 시작.

1981년 ‘누구의 노래일까’가 수록된 정규 데뷔 앨범인 제1집 <민해경 골든> 발표. 이어 제2집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 발표. 엠비시(MBC) 10대가수 가요제 여자 신인상 수상.

1983년 ‘그대는 나그네’로 엘에이(LA)가요제 그랑프리 및 최우수 가창상 수상. 정규 3집 음반 <민해경 제3집>, 정규 4집 음반 <민해경 vol.2> 발표.

1986~1995년 정규 음반 6~13집 발표하며 왕성하게 활동함. 히트곡으로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 ‘내 인생은 나의 것’ ‘사랑은 이제 그만’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 ‘보고 싶은 얼굴’ ‘그대 모습은 장미’ ‘내 마음 당신 곁으로’ 등이 있음. 6회 연속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현재 골든디스크상) 수상.

1990년 ‘보고 싶은 얼굴’로 제10회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가요제 대상인 최우수 가수상 수상.

1995년 결혼. 이후 활동이 뜸해짐.

1996년 14집 발표.

1999년 15집 발표.

2002년 16집 발표.

2011년 이치현, 강인원, 권인하와 함께 프로젝트 보컬 음악 그룹 ‘더 컬러스’(the Colors) 결성.

2013년 17집 발표.

2017년 가수 김범룡과 손잡고 4년 만에 싱글 음반 발표.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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