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안녕! 나는 엑스(X)야.

난 여러 의미로 쓰이지.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를 ‘X-MAS’라고 하네. 다들 크리스마스는 잘 보냈어?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니어서 조금 서운했겠구나. 그렇지만 오랜만에 가족, 친구, 지인들과 마주하고 맛난 음식을 먹으며 선물을 나누는 기쁨이 있었을 테니, 그걸로 만족하자고.

크리스마스를 ‘X-MAS’라고 하는 이유부터 알려줄게. ‘Christmas’는 ‘그리스도’를 뜻하는 ‘Christ’와 ‘미사(예배)’를 뜻하는 ‘Mass’의 합성어야. ‘그리스도의 예배’란 뜻이지. 그리스도는 그리스어(희랍어)로 ‘Χριστ??’(크리스토스)여서 즉, ‘X-MAS’의 ‘X’는 ‘그리스도’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머리글자인 셈이지. 그래서 읽을 때 ‘X-MAS’를 ‘엑스마스’라고 읽지 않는 거야.

가장 널리 쓰일 때는 곱셈 부호가 아닐까 해. 두 수의 곱. 수학을 싫어하는 이들이라면 나를 좀 싫어할 수 있겠다. 수학에서는 방정식의 해를 구하려는 문자, 미지수 ‘X’로 사용하기도 하니까. 고차 방정식으로 갈수록 난이도가 점점 높아져 ‘수포자’들이 생겨난다고 하는데, 나 때문이 아닐까 죄책감이 들 때도 있어. 로마자에서 ‘X’는 10을 뜻하기도 해. 지난 9월 애플이 선보인 아이폰 10주년 기념 모델 이름이 ‘아이폰X’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최근에는 컬래버레이션(협업) 마케팅을 상징하는 기호 ‘X’로 많이 쓰이지. ‘◎X■’ 형태인데, ‘브랜드X브랜드’ ‘브랜드X제품’ ‘브랜드X작가’ ‘브랜드X예술작품’ 등으로 표기되는 사례를 흔하게 볼 수 있지. 대중문화계에서는 가수들의 컬래버레이션도 점점 활발해지고 있어. 여성그룹 씨스타 출신의 소유는 ‘콜라보의 여신’이라 불릴 정도로 매드클라운, 정기고, 권정열, 백현, 성시경 등과 함께 다양한 노래를 불렀지. 아이유도 서태지, 김창완, 지드래곤 등과 컬래버레이션한 음악들을 선보이며 자신의 음악 세계를 확장해온 대표적 싱어송라이터라 할 수 있지.

‘X’는 부정의 의미로도 많이 사용돼. ‘싫다’, 사실이 아닌 ‘거짓’, ‘좋지 않다’, 노(NO), 거절 등의 다양한 뜻을 내포하고 있어. 어쨌거나 긍정의 의미가 아니라서 나로서도 좀 꺼림칙하긴 하지만, 항상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지. 어떤 조직에서건 악역은 필요한 거니까. 그러고 보니 ‘X 같은 놈’으로 쓰일 땐 ‘욕’이었네. ㅠㅠ

알 수 없는, 잘 모르는, 미지의 무엇을 뜻하기도 해. 미제 사건을 ‘엑스파일’(X-file)이라고 할 때가 그렇지. 알려지거나 밝혀지지 않은 일이나 문건을 말하는데, 미국 티브이 드라마 ‘엑스파일’(X-Files)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어. 갑자기 에프비아이(FBI) 요원 폭스 멀더와 데이나 스컬리가 생각나네. 초자연적 현상, 괴물, 유령,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해결 사건 등을 수사하는 부서에서 일하며 겪은 일을 다뤘는데, 꽤나 흥미진진했지.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10월부터 2002년 10월까지 <한국방송>(KBS)이 수입해 방영했으니, 당시 이른바 ‘엑스(X)세대’는 20~30대 청춘을 ‘엑스파일’과 함께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 70년대생, 90년대 학번을 ‘엑스세대’라고 불렀지.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386세대보다 덜하고 멋과 자유로움, 개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신세대라는 뜻이었지. 그러고 보니, 당시엔 소위 ‘날라리’ 비슷하게 꾸미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아. 통이 넓은 나팔바지(드럼바지)를 입고, 10㎝가 훨씬 넘는 높은 통굽구두를 신었으며, 눈썹선과 입술을 강조하던 짙은 화장을 하고 다녔어. 이병헌(화장품 ‘트윈엑스’ 모델), 박진영(‘날 떠나지마’로 데뷔, 비닐옷 착용), 신은경(드라마 <종합병원>에서 보여준 보이시함) 등이 ‘엑스세대’의 전형으로 꼽혔었지.

‘엑스레이’(X-ray)에서 ‘X’도 실은 ‘미지의’라는 의미에서 파생했다고 볼 수 있어. 엑스선을 처음 발견한 뢴트겐이 이상한 새로운 광선이 가지고 있는 미지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엑스선’이라고 표기한 데서 유래했다고 해. 지금은 고유명사가 된 것이고.

이밖에 등외품을 엑스 등급(X-large, X-small 사이즈)이라고 표기하기도 하지. 이때는 ‘ex’, 즉 ‘extra’를 의미하는데 축약해서 ‘X’로 표기하는 셈이지. 전 애인을 엑스남친, 엑스여친이라고 할 때도 ‘ex’를 축약해서 말하는 것이고. ‘ex’에 하이픈(-)을 붙이면 ‘전(前)~’이라는 의미를 만들기 때문이야. 정확한 표현은 ‘ex-boyfriend’나 ‘ex-girlfriend’인 거지.

그러고 보니, X로 시작하는 단어는 다른 알파벳과 달리 거의 없는 거 같아. 사전을 찾아봤어. ‘xylophone’(실로폰)이 가장 눈에 띄네. 다른 단어들은 나쁜 의미를 가진 것들이 많아서 여기선 생략할게. 아 참, 최근엔 미국과 영국 등에서 젊은이들이 에스엔에스(SNS) 채팅 용어로 ‘XOXO’(엑소엑소)를 많이 쓴대. 키스와 포옹(Kiss and Hugs)이라는 뜻이래. 자우림과 엑소의 노래 제목 ‘XOXO’도 이 의미인 거지.

여하튼, 2018년 새해엔 ‘XOXO’의 뜻이 더 많이 쓰이길 바라. 우리 서로 많이 안아주고 키스해주자고. 사랑과 인정, 이해와 관용이 넘치는 새해가 되길.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