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섹스 말고는 다 좋았다. 마주 앉으면 대화가 끊이지 않았고, 연인이라면 으레 겪는 사소한 신경전조차 해 본 기억이 없었다. 만난 지 8개월 만에 첫 섹스를 하고 나서야 윤명진(가명·27)씨는 그와의 관계가 오래가지 못하리라고 직감했다. “발기부전인지 섹스가 안 되더라고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헤어지자고 했지만, 정 떼기가 생각보다 힘들었어요.” 매력적인 상대일수록 섹스부터 해봐야 한다는 믿음은 그때부터 생겼다. “빨리 할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원 나이트 스탠드’(낯선 사람과의 성관계. 이하 원나잇)요? 나쁘게만 봤었는데, 이젠 뭐 그렇지 않네요.”
#2 “결혼 생각이 1%도 없다”는 조하나(가명·35)씨가 처음에 ‘원 나이트 스탠드’를 감행한 것은 3년간 사귄 애인이 성매매업소에 꾸준히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였다. 홧김에 시작한 원나잇이 감정적 소모를 줄이는 ‘쿨한’ 섹스 방식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번 자고 나면 카톡이고 번호고 차단해요.” 그가 “질척거리지 않을” 상대를 찾는 곳은 클럽이나 라운지바, 감주(감성주점. 헌팅을 목적으로 하는 술집) 등이다. “성매매 같은 범죄도 아니고, 죄책감을 느끼진 않아요.”
‘원 나이트 스탠드’라니,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일 아니냐고? 글쎄, 정서적 교감 못지않게 성적인 교감을 중시하는 2030들에게는 그다지 대단한 일도 아니다. 2013년 결혼정보회사 ‘바로연’의 통계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은 2113명 중 원나잇을 해 본 여성은 36.6%, 남성은 57.7%로 나타났다. “섹스는 삶의 일부고,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누려야 할 권리”임을 주장하는 조하나씨는 “그걸 누리려고 선택한 방식이 원나잇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를 어떻게 보느냐는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으므로 당위를 따지려는 논쟁은 잠시나마 접어두자. 그저 솔직한 경험담을 들어보자는 것. 그게 바로 지난 3일, <섹톡쇼> 출연진과 만나게 된 이유였다. ‘어른들만의 놀이터’를 표방하는 <섹톡쇼>는 성 경험을 직설적으로 털어놓는 팟캐스트로 올해 초부터 시작했고, 다운로드 수는 4만건이 넘는다.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대담에는 <섹톡쇼> 엠시(MC) 후크선장(37·남)과 디자이너로 일하는 마야(32·여), 개인 사업을 하는 깜짝닷컴(37·남), 마야의 연인이자 영국인 남성 벤(31)이 참여했다. 영국에서 은행원이었던 벤은 한국에선 강사로 일한다. 벤 말고는 모두 닉네임을 썼다.
후크선장(이하 후) 원나잇을 어디서, 얼마나, 누구랑 했나? 20대 때부터 지금까지 경험을 얘기해보자.
마야(이하 마) 클럽에서 만난 사람이랑 했고, 친구의 친구들과 모인 술자리에서 눈 맞아서 했어. 아, 소개팅으로도 한 적 있었어. 소개팅이다 보니 결혼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분이 결혼하려면 성적으로도 맞아야 되지 않겠느냐면서 합을 맞춰보자고 했어. 대놓고 그렇게 말한 사람은 처음이었지.
후 벤은 어때? 아무래도 유럽은 우리보다 많이 할 것 같은데, 우리의 선입견일 수도 있잖아.
벤 영국은 18~19살부터 술 먹기 시작하는데, 그 시기에 원나잇을 제일 많이 해. 혈기왕성한 시기에 술을 먹다 보니 자연스레 성 충동이 생기는 것 같아. 나도 그 시기에 고등학교 동창이랑 한번, 대학에서 만난 친구랑 한번 했거든. 21살 이후로는 진지한 교제를 주로 하기 때문에 원나잇을 많이 하진 않아.
후 에프에이(FA. 자유선수계약제도) 시장으로 나가는 거지, 그때부턴.(일동 웃음)
마 한국도 요즘 십대들은 (성)관계를 빨리 하지 않아?
후 우리 때도 빨리 하는 친구들은 중·고등학교 때 했지만, 그래도 그 비율이 그렇게 높진 않았어. 성 관련 고민 상담을 받고 있는데, 그 비율이 확실히 높아졌다고는 느낀다. 10대, 20대 가릴 것 없이 말이야.
마 나이와 상관없이 섹스의 합은 중요하니까. 너무 안 맞으면 불만이 쌓이잖아. 처음엔 좋은 마음으로 참지만 결국엔 터지고 다른 핑계를 대서라도 헤어지게 되지. 반대로 섹스 때문에 못 헤어지는 사람도 많고. 후크는? 후크도 소개팅으로 해봤지?
후 나는 여행지에서 해봤고, 헌팅으로도 해봤는데, 어떤 경우든 웬만큼 마음이 있으니 잔 거 아니겠어? 사귀게 된 경우가 많았어. 보통 ‘선 섹스, 후 사귐’이라고 하지. 처음에 포옹했다 다음엔 키스하고 뭐 이러는 것보다 오히려 관계가 더 자연스러운 면도 있어. 반면에 그런 관계로 시작했기 때문에 오래 못 갈 때도 있고. 너무 빨리 진도를 빼다 보니 마음이 금방 식어버리기도 하더라. 사실 나는 그렇게 해서 결혼까지 했어. 소개팅 한 날 바로 자서 결혼까지 했었어. 하지만 그 관계가 굉장히 빨리 끝났지. 이혼한 나로서는 원나잇으로 결혼까지 가는 거, 반댈세.(일동 웃음) 다른 사람들은? 원나잇으로 관계가 발전한 경험?
벤 (단호하게) 없어.(일동 웃음) 학교 친구들이랑은 술 너무 먹고 해서 기억이 거의 없었고, 스페인이랑 베트남에서 했던 두번은 외국이다 보니 연락이 닿을 길이 없었어. 돌이켜보면 완벽히 육체적인 관계였고, 서로 원하는 만큼 충족한 관계였어.
후 처음 받은 장난감이 레고 풀세트야. 그다음엔 무슨 장난감이 눈에 차겠어? 하나씩 주고받아야 소중한 걸 알지, 한꺼번에 받고 나면 나머지 것들은 시시하지. 원나잇 하고 감정이 생겨버린 나는 어느 날 정신 차려 보니 결혼식장에 있더라. 그날이 사귄 지 100일쯤 됐을 때야. 서로 환상만 본 거지. 지금은 좋은 친구로, 육아 파트너로 잘 지내지만, 뭐, 씁쓸하네요.(일동 웃음) 하고 난 다음에 기분들은 어때? 공허함 같은 건 없나?
깜짝닷컴(이하 깜) 왠지 모를 두려움 같은 게 있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기분이 그렇더라고.
마 나도 공허한 건 있어. 모텔에서 먼저 빠져나올 때나 나중에 혼자 나올 때 속도 안 좋고, 뭐 이 사람이랑 좋은 관계로 발전할 것도 아닌데 굳이 왜 했지? 섹스가 그렇게 좋지도 않았고, ‘도대체 왜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지.
후 남자는 사정의 쾌감이 짧잖아. 한 10~20초 정도? 근데 그걸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런 생각 들 때 있어. 다음날 아침 내 집이면 괜찮은데, 모텔 같은 데 혼자 누워 있으면 그게 너무 싫다.
마 여자는 많이들 가. 부모와 살거나, 집에서 편히 자고 싶거나. 특히 술 먹고 했을 땐 미쳤지, 미쳤지, 하면서 줄행랑치지.
후 여자 집에서 한 일화를 들었는데, 남자가 밥해 달라 뭐해 달라 그러면서 3일 동안 갈 생각을 안 하더래. 그래서 ‘카톡’으로 “그만 좀 눌러앉고 집에 가라”고 했다네.(일동 웃음)
2030 ‘선 섹스, 후 사귐’
정서적 교감만큼 궁합도 중요
바로연 통계 미혼 여성 36.6%, 남성 57.7%
‘원 나이트 스탠드’ 경험 있어
팟캐스트 <섹톡쇼> 성 토크 들어보니
마 원나잇 한 다음날은 어쩔 수 없이 임신 등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데, 남자는 어때?
후 콘돔 안 했는데 임신하는 거 아니냐는 고민 자주 들어봤고, 심지어 나도 처음 했을 땐 비슷한 고민 했어. 좀 무서웠던 거 같아.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닌지.
마 그래서 나는 얘기가 재밌게 잘 통하는 사람을 선호해. 그런 사람이면 왠지 그 사람도 나처럼 착할 것 같고, 막 돌변하거나 폭력적일 것 같진 않은 거지. 나 정도 수준일 것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 말투나 행동 같은 데서 안심할 만한 느낌을 받았을 때 끌리지.
후 심리적인 안정감이 제일 중요하다? 벤은?
벤 아무래도 외모를 보게 되지. 내 눈에 매력적인 사람. (마야 가리키며) 여기!
마 여기, 나야 나!!(웃음)
후 뉴스에 좋은 사람보다는 나쁜 사람만 나오니 상대방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해. 널 해치지 않아, 이런 신뢰를 줘야 하거든. 충분한 동의하에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불쾌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고. 자칫 폭력이나 폭행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교감이 이뤄졌을 때 해야지.
벤 영국은 10살 때부터 성교육을 하는데 콘돔 사용하는 방법이나 피임 교육을 엄청나게 해. 원나잇이건 연인 간의 섹스건 무조건 피임피임피임! 술집이든 지하철이든 콘돔은 쉽게 살 수 있어. 한국은?
후 요즘 편의점에서 많이 파는데 아직도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사는 게 조금 머쓱한… 그런 분위기? 콘돔 사용 방법뿐 아니라 사는 연습이 교육 과정에 있었으면 좋겠어.
마 나는 당당하게 사. 청소년일수록 피임 더 철저히 해야 하니까 더 쉽게 살 수 있어야지. 끓는 혈기들을 막을 수 없잖아. 무턱대고 말리기보다는 피임 교육 해서 안전하고 즐거운 섹스 하도록 가르치는 게 낫지 않을까.
벤 10년 전까지 남자가 원나잇 많이 하면 영웅이고, 여자가 많이 하면 안 좋게 보는 인식이 영국에도 있었어. 지금이야 그런 생각 자체를 글러먹었다고 보지만.
후 한국도 많이 달라지고는 있지만 인터넷 댓글 같은 걸 보면 아직도 멀었구나 싶어. 근데 영국에선 원나잇 경험을 공유하는 편인가?
벤 특별한 얘기가 전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안 해. 그냥 하면 하는 거지 그게 뭐 대수라고. 일상이고, 앉아서 얘기할 정도의 이야깃거리가 아니야.
후 물 마시는 거랑 비슷한 건가? 야, 나 어제 ‘삼다수’ 마셨어! 안 하잖아.(일동 웃음) 이렇게 작정하고 얘기해야 하는 우리가 여전히 촌스러운지도 모르겠네.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