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부터 방영 중인 <에스비에스>(SBS)의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은 경쟁이 치열한 일요 예능프로그램 중에서 7년간 명맥을 이어가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유재석, 지석진, 하하, 김종국 등이 말이 아닌 ‘몸’으로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는데, 볼 때마다 ‘나도 도전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절로 솟구친다. 뛰고 달리고 구르고 잡는 것이 뭐가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하나씩 성취할 때마다 느끼는 쾌감과 희열은 남다를 터. 정말 그럴까? 지난달 3일 서울 인사동에 ‘런닝맨 체험관’이 문을 열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지난달 26일 그곳에 다녀왔다.
찬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 요즈음, 말 그대로 옴짝달싹하기 싫다. 이불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끔찍하게 싫은 계절이다. 문화·여가 생활을 위해 외출한다고 해도 딱히 할 게 마땅치 않다. 가족, 연인, 친구와 데이트를 한다 해도 밥 먹고 차 마시거나, 쇼핑 또는 영화를 보는 일 외에는. 특히 자녀들과 함께라면 더더욱 갈 곳이 없다. 미취학 아동이라면 실내 놀이터를 데려간다지만, 여기마저도 초등학생 이상이면 입장 불가. 색다른 곳이 없을까?
지난달 26일 일요일 이른 아침, 초등학생 딸 수아(13)와 아란(10)을 서둘러 깨웠다. 역시나 “10분만!”을 외치며 이불을 더욱 꼭 끌어안는다. “런닝맨 체험관 가자! 친구들도 같이.” 그제야 딸들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 “그런 곳이 있어?” “신난다!” 그리고 급히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려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수아 친구 7명을 포함해 남녀 각각 5명씩 모두 10명이 ‘오케이’ 했다. 시간은 촉박했지만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덜 붐빌 것 같은 오전 10시(개장 시간)에 맞춰 입장하기로 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런닝맨 EP.1 보물을 찾아라!’ 체험에 나선 김미영 기자의 딸 수아(앞줄 오른쪽)·아란(앞줄 오른쪽 두번째)과 친구들. 김미영 기자
서울 인사동에 있는 에스엠(SM)면세점 본점 지하 1층에 위치한 런닝맨 체험관의 정식 명칭은 ‘런닝맨 에피소드1―보물을 찾아라’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991㎡(300여평)에 이르는 넓은 공간이었다. 한 번에 250명 입장이 가능하단다. <런닝맨> 프로그램과 달리 이곳은 팀 미션이 아니라, 개인 미션을 수행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남녀 대항전’을 잔뜩 기대했던 아이들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나중에 개인별 R포인트를 모아 합산해 남자팀과 여자팀 중에서 우승을 가리면 되지.” 내 제안에 아이들이 “아~하. 네!” 하고 동의했다.
초등학생 두 딸과 런닝맨 체험관 찾아
60분 뛰고 달리니 아이들 얼굴엔 웃음 가득
지난달 개관한 체험관…즐거운 방학 실내놀이터
체험 방법은 간단했다. 제한 시간 60분 동안 가능한 한 많은 R포인트를 수집하는 것. 곳곳에 숨겨진 R포인트 인식 무인 단말기(키오스크)에 팔찌를 가져다 대거나, ‘이름표 터치’ ‘링 매달리기’ ‘깜깜한 암흑 미로’ ‘거울 미로’ 등 각기 다른 12개 미션을 수행하면 얻을 수 있다. R포인트는 체험관 입장 때 끼워주는 런닝맨 팔찌에 차곡차곡 입력하면 된다. 1인당 최대 88개까지 가능하며, 체험관 곳곳에 R포인트 체크기가 있어 도중에 자신의 포인트 개수를 확인할 수 있다. 80개 이상 획득하면 ‘런닝맨 인증서’를 받을 수 있으며, 체험관 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런닝맨 제8의 멤버’가 될 수 있다.
“88개쯤이야!” “나 달리기 완전 잘하는 거 알지?” “이 정도는 껌이야~” 체험관 입장 전부터 아이들의 의욕은 대단했다. 기대에 들떠 팔찌가 채워지기가 무섭게 ‘레드·블루·그린’ 문으로 잽싸게 뛰어 들어갔다. 첫번째로 마주한 건 ‘런닝맨 초급반’. 몸을 움직여 벽에 붙어 있는 단말기에 팔찌를 찍으면 끝. 이때마다 포인트가 적립됐다. “헤헤. 얘들아 너무 쉽다. 한 시간 너무 긴 거 아니니?” 수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하지만 이런 자신감도 잠시뿐. 두번째 ‘달려라 달려’, 세번째 ‘지압판 줄넘기’ 미션을 수행하면서 급격히 풀이 죽고 어깨가 위축돼 버렸다. ‘헉~’ ‘헉~’ 소리가 아이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고, 심지어 “엄마, 이거 너무 힘들어.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거야?”(아란)라고 묻기까지 했다. “할 수 있어!”라고 격려했지만, 나 역시 숨이 턱턱 막혔다. 30초 동안 250번 달리면 바닥에 있는 센서가 작동해 포인트가 찍히는 ‘달려라 달려’와 40초 동안 30개를 넘어야 하는 ‘지압판 줄넘기’는 성공해 6개의 R포인트를 획득했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좀처럼 포인트가 모이지 않았다. 특히 3개 면에 붙어 있는 진행, 오디오감독, 총괄피디(PD), 예능국장, 코디네이터, 매니저, 경호, 조명감독, 작가 등의 이름표에 불이 들어올 때마다 터치해야 하는 ‘이름표 떼기’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었다.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암흑 미로), 낮은 공간에서(낮은 미로), 거울이 사방에 놓여 있는 곳에서(거울 미로) R포인트를 찾는 것도 어둠에 대한 공포, 출구를 못 찾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결국 미션에 성공하지 못했다. 30초 동안 매달려 있어야 하는 ‘링 매달리기’는 아예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손바닥 치기’를 해 포인트를 따는 아이들. 김미영 기자
포토존에 선 아란(왼쪽), 수아친구 수인(가운데), 수아. 김미영 기자
젊음 때문일까, 신념과 패기 때문일까. 다행히 아이들의 움직임은 상상 이상으로 날렵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미션 수행 방식 때문에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몸을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뛰어!” “시간 얼마 안 남았어?” “몇 개 했어?” 등등 서로의 포인트 점수를 체크하며 경쟁 구도를 만들기도 했다. 처음엔 한 시간이면 너무 길지 않나 싶었는데, 절대 그렇지 않았다. 60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훌쩍 지났다. 아이들 모두 “너무 재밌다”며 흐뭇해했고, “또 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88개쯤은 거뜬하다’던 아이들. 정말로 그랬을까? 개인차가 있었지만, 아이들의 R포인트는 대략 60~65개 사이였다. 여러 차례의 도전에도 유일한 공동 미션인 ‘볼 던지기’(가운데 구멍에 일정 개수의 공을 넣어야 함)에 실패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공 넣는 곳이 너무 높아.” 수아는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후 출구까지 이어지는 ‘밴딩 탈출’(밴드 줄 여러 개 통과하기)을 할 때는 “키 작은 내가 유리해”라며 금세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가장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든 아란은 “이번엔 45개로 언니, 오빠들보다 R포인트를 적게 얻었지만, 다음에 오면 10개는 더 얻을 수 있다”며 아쉬워했다. 각각의 R포인트 점수를 모은 남녀 팀 대결에서는 남자팀이 간발의 차이로 우승했다. “여자 팀에는 동생들이 둘이나 있어서 그랬어!”라고 속상해하는 여학생들을 위로해 주었다.
겨울임에도 야외에서 아이들과 뛰어놀고 싶은 이들이라면 한번쯤 체험해도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몸을 부딪쳐가며 함께 뛰고 땀을 흘렸다는 점에서 뿌듯했다. 직접 체험해보니 런닝맨은 성인들도 즐길 만한 공간이었다. R포인트 획득도 중고생 이상이 훨씬 유리해 보이기도 했다. 나 역시 설렁설렁 미션에 참여했는데 38개나 얻었다. 같은 시간 이곳에서 데이트를 즐긴 이준규(23)·한누리(21) 커플은 각각 86개와 83개의 R포인트를 얻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힘들지만 재밌었고, 체험 중간중간에 사진을 찍을 수도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덤으로 다이어트까지 했으니 금상첨화. 열심히 뛰고 구르고 달리고 몸을 날렸으니(?), 한 500g쯤은 빠지지 않았을까? 연말연시를 맞아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 친구나 직장인 모임 등에 활용하면 이색 코스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런닝맨 에피소드2’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80개 이상의 R포인트를 획득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이준규·한누리 커플의 인증서. 김미영 기자
■미션 정보
-총 12가지(런닝맨 초급반, 달려라 달려, 줄넘기, 낮은 미로, 암흑 미로, 볼 던지기, 소리 질러, 이름표 떼기, 똑같은 R몬 찾기, 링 매달리기, 두드려 올리기, 거울 미로)
-R포인트를 80개 이상 획득하면 인증서와 함께 명예의 전당에서 기념사진 촬영
1등급: 런닝맨 배지 3개 제공(80 R포인트 이상)
2등급: 런닝맨 배지 2개 제공(61~79 R포인트)
3등급: 런닝맨 배지 1개 제공(1~60 R포인트)
■운영 정보
-이용시간: 오전 10시~저녁 8시(연중무휴·저녁 7시 입장 마감)
-위치: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5길 41 하나투어빌딩 에스엠(SM)면세점 지하 1층
-입장료: 1만6000원(성인·아동 요금 동일. 36개월 미만 무료 입장)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Underground
땅속, 지하를 통칭. ‘지상’이 복잡해지면서 ‘지하’를 활용한 대중교통, 복합상가 및 근린시설 등이 급속히 확대되는 추세다. 영국에서는 지하철을 의미하기도 하며, 반체제 활동 조직이라는 뜻도 있다. 방송에 나와 대중성 짙은 음악을 하는 사람(오버그라운드)과 달리 클럽 등 소규모 공연을 선호하며 소수의 마니아층에게 알려진 뮤지션을 ‘언더그라운드’라고 칭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달려라 달려’ 미션을 수행하며 즐거워 하고 있다. 김미영 기자
[ESC] 런닝맨 체험관 100% 즐기려면?
■ 몸과 마음은 가볍게
한 시간 동안 더 빨리 뛰고, 더 많이 두드리고, 더 크게 소리 질러야 R포인트 획득에 유리하다. 두꺼운 겉옷, 소지품, 가방, 카메라 등을 휴대하면 그만큼 거동이 불편하고 느려질 수밖에 없다. 약간의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가급적 가벼운 차림으로 입장하는 것이 좋다. 정신없이 ‘러닝’하다 보면 이마에 땀이 절로 맺힌다. 매표소 앞쪽에 있는 물품보관함을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기념사진을 꼭 찍고 싶다면, 휴대폰 한 대쯤 소지할 것을 권한다.
■ 지나친 욕심은 ‘금물’
‘제8의 런닝맨이 되겠다’는 욕심에 무리하게 미션에 도전하지 말자. 탈이 나기 십상이다. 12개 미션 중에는 30초 동안 250번 발판을 두드릴 정도로 달려야 하는 것도 있고, 40초 동안 30개의 줄넘기를 해야 하는 것도 있다. 이뿐 아니라 빠른 속도로 단추 누르기, 벽에 있는 이름표 찍기 등 팔다리는 물론 무릎과 허리 관절을 쉴 틈 없이 움직여야 가능한 미션들도 여럿이다. 88개의 R포인트를 얻는 대신 골병이 들 수 있으니 주의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요령이다.
■ 함께여서 기쁨 두 배
런닝맨 체험관은 개인별 포인트를 획득하도록 구성돼 있지만, 여럿이 함께 협력할 때 R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미션도 있다. ‘볼 던지기’는 10명 안팎의 인원이 가운데 위치한 원형 구멍에 공을 많이 넣었을 때 포인트가 주어진다. 개인별 미션을 아무리 잘 수행해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이 미션을 통과해야만 ‘4점’의 R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