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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가지의 맛, 로맨스가 필요해

등록 2017-07-27 10:17수정 2017-07-27 10:22

진짜 로맨스가 뭔지 몰라
사랑의 정의는 제각각
‘내로남불’도 사랑?
사랑은 노력이 필요
<품위있는 그녀> 방송 갈무리.
<품위있는 그녀> 방송 갈무리.

몇 년 새 인기를 끈 드라마 중 로맨스가 아닌 드라마는 ‘티브이엔’(tvN)의 <시그널> 말고는 없었다. ‘케이비에스’(KBS)의 <태양의 후예>도, ‘티브이엔’ <도깨비>도 로맨스였고, 얼마 전에 종영한 ‘에스비에스’(SBS) <수상한 파트너>도 마찬가지였다. 스릴러 서사가 섞여 있기는 했으나 로맨틱코미디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타인의 로맨스’에 대리만족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는 <수상한 파트너>의 클립영상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은봉희’(남지현)와 ‘노지욱’(지창욱)의 키스신이라도 있는 날이면 해당 장면이 담긴 클립영상은 어마어마한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오늘 누울 곳은 여기’라거나 ‘씹덕사’니 ‘미친 케미’니 ‘키스 장인’이니 하는 댓글들을 몰고 다녔다. 여기서 드는 의문 몇가지, 우리는 도대체 왜 로맨스에 열광하는 것일까? 타인의 로맨스를 보면 대리만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끊임없이 로맨스를 꿈꾸기 때문일까? 단지 꿈꾸기만 하는 거라면 애인이나 배우자의 여부는 상관없을까? ‘내로남불’이라는 유행어처럼 로맨스와 바람이 한 끗 차이라면 실제 바람을 피우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지난 21일, 현정·김정훈 연애칼럼니스트와 이에 대한 생각을 나눠봤다.

현정(이하 현) 로맨스가 뭔지 모르니까. 다시 말해 사랑이 뭔지 모르니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사랑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하나 궁금해하면서 미지의 영역을 계속 기웃거리는 거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싶어서.

김정훈(이하 김) 우리는 한 번도 로맨스의 정체를 본 적이 없다. 로맨스가 뭔지 아무도 안 가르쳐줬다. 의자는 의자고, 책상은 책상인데, 도대체 로맨스란 뭐란 말인가? 누군가는 달콤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거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그냥 몽글몽글한 감정이란다. 추상적인 개념이고, 뚜렷한 틀도 없다 보니 자신만의 틀이 생겨 ‘일편단심 민들레’가 될 때까지 민들레 씨앗처럼 날아다닌다.

재미있는 표현이다.(웃음) 사회적인 얘기를 해보자면 현대사회가 불안하고 불확실하지 않나. 장담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질적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양적으로라도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생긴다. 연인과의 관계가 안착된 사람들조차 한번쯤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아, 내가 안주하고 있나? 남들은 좀 더 색다른 로맨스를 하는 게 아닐까?

가족이나 또래집단과는 달리 연애는 개인의 선택권이 철저하게 반영되는 관계여서 그렇다. 사람들은 저마다 색깔이 다르고 매력이 다르다. 비유하자면 맛이 다 다르다. 나한테 선택권이 있다면 당연히 이 맛도 보고, 저 맛도 보고 싶지 않겠나? 그러다 보니 타인의 로맨스를 보면서도 저게 더 내가 원하는 로맨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하기도 한다.

로맨스를 꿈꾸는 것을 넘어 끊임없이 현실에서 실행하는 사람들은 ‘아, 얘랑 (연애)하면 진짜일 것 같다’면서 뛰어든다. 그러다가 실제 해보니 아니다 싶으면 박차고 나와서 다른 데를 기웃거린다. 그런데 이번에도 아니네? 또 아니네? 기웃기웃. ‘아, 난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라고 말한다.(웃음) 뭐랄까, 난봉꾼 기질 있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만날 때 이런 얘기 많이 한다. 지금까지는 사랑이 아니었어! 네가 나의 진정한 사랑이야! 근데 진정한 사랑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일동 웃음)

기자 맞다, 그런 사람들 있다. 그럼 로맨스=사랑인가?

사랑의 정의는 제각각이겠지만, 나는 모든 로맨스가 사랑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로맨스의 필수요소를 ‘달콤함’이라고 봤을 때, 달콤함만 취하려는 사람들은 로맨스적인 관계만 맺는다. 관계가 주는 무게나 사랑에 따르는 책임을 견디지 못한다.

기자 그럼 흔히 말하는 ‘썸’이 로맨스인가?

‘썸’도 로맨스라면 로맨스일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썸’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호감 가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파토스(일시적인 격정이나 감정)적인 에너지가 생기는데, 썸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그 에너지를 소비하는 과정이라면, 본격적인 연애는 소진된 그 에너지를 계속해서 생산해내는 과정이다.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은 익숙하고 편하지만, 생산해내는 일은 귀찮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썸‘만’ 탄다.

비슷한 생각인데, 욕망은 쟁취하고 파괴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소멸하는 것이다. 유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은 돌보고 유지하는 것이다. 굉장히 헌신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그런 에너지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랑을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때로는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랑이라는 게 과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가?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랑한다”는 말 쉽게들 한다. 조금만 맛있어도 “대박! 인생 맛집!” 외치는 것처럼.(웃음)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무서운 단어라고 생각한다. 쉽게 정의할 수 없고 광범위한 말이라 아무거나 집어넣고 우기기에 딱 좋다. 데이트폭력도 사랑해서 그랬다고들 한다.

맞다, ‘사랑’이라는 말의 무게가 너무나 가볍다. 에스엔에스(SNS)에서 걸핏하면 “소통해요”, “친하게 지내요” 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하룻밤 잠자리 상대한테도 “우리 사랑을 나누자”고 하지 않나. 클릭 한번이면 관계가 맺어졌다가도 끊기는 세상이다 보니 관계가 가벼워지고, 사랑도 가벼워진다.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를 보면, 서로 사랑한다고 얘기하지만 아무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알고 보면 다들 상대방 몰래 바람피우고 있다.

기자 바람은 왜 피운다고 생각하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가?

심리적으로는 ‘배덕감’(비도덕적인 일을 저질렀을 때 생기는 쾌감), 그러니까 상대방 몰래 나쁜 짓을 했을 때 느끼는 쾌감 때문일 수 있다. 누구나 파트너십을 유지할 때 기만당할까봐 걱정한다. 내 남자 또는 내 여자는 100% 안전해, 이러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상대방의 바람을 알았을 때 드는 감정은 단순한 실망감이라기보다는 기만당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분노에 더 가깝다. 그런데 반대로 내가 그 분노를 누군가한테 불러일으킬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서 짜릿함을 느낄 수도 있다는 거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동물이고, 남자든 여자든 낯선 파트너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관계’가 우선인 사람은 그 욕구를 참을 것이고, 그 관계라는 게 나의 만족이 충족되어야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굳이 그러지 않을 것이다. 욕망이나 이상이 큰 사람들이 더 높은 수준의 자극을 원할 때, 혹은 자아는 강한데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바람을 많이 피우는 것 같다. 감정이 우선인 사람이 바람을 피울 확률도 높은 것 같다.

자기 확신이 없는 사람이 바람을 많이 피운다는 것에 동의한다. 덧붙여 관계의 차원에서 보면 바람은 지루함 때문에 피우는 거다. 그런데 이 지루함이라는 것이 사실 안정감, 생활감과 비례한다. 결혼식을 올린 부부건, 동거를 하는 연인이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은 성적 매력이 떨어지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파트너와의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사람들은 성적 흥분보다는 안정감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로 볼 수 있다.

<효리네민박> 방송 갈무리.
<효리네민박> 방송 갈무리.

기자 최근에 ‘이효리’가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그랬다. 자기가 결혼을 안 하려고 했던 이유가 자신이 바람피울까봐 두려워서였다고. 그런데 이상순과 살다 보니 그런 생각이 안 들더라고. 실제로 제이티비시 <효리네 민박> 보면 사이가 좋아 보인다.

중요한 포인트는 이 부분인 것 같다. 아이유가 효리한테 2세 계획을 물었더니 이효리가 그러더라. “뭐, 과정이 있어야지, 우린 그냥 친구야.” 그러니까 섹스가 배제된 관계라고 해서 충만하지 않으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는 거다. 결국 자기한테 맞는 옷을 입는 것, 자기한테 맞는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한데, 이효리는 시행착오 끝에 그게 뭔지를 알았다고 생각한다. 이효리가 말하길, 자신이 2년마다 남자친구 바꾸고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알게 된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고 했다. 이효리는 엄청난 노력을 한 거다. 자기 자신한테 어떤 사람이 잘 맞는지를 알기 위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운명적’인 상대가 저절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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