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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사람이지, 우스운 사람은 아냐”

등록 2017-07-20 11:41수정 2017-07-20 11:43

[esc] 김성일이 만난 완소 피플
패션모델 뺨치는 개그우먼
박나래·장도연·허안나
김성일과 개그토크 나누다
처음에 못 알아볼 뻔했다. 저들이 개그우먼이라고? 패션모델인 줄 알았다. 쑥스러운 듯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장도연(33), 귀엽고 깜찍한 박나래(33), 고혹적이면서도 여성스러운 허안나(34). 요즘 가장 ‘자~알’나가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스타일리스트와 개그우먼. 뭔가 부자연스러운(?) 이 조합의 인연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낙지집에서 처음 만났지?”, “오빠 덕분에 패션쇼도 가봤잖아.” 여자 셋과 남자 한 명이 마주 앉으니 이야기꽃이 끊이지 않는다.

‘패션 넘버 5’, 우리 최고의 작품

김성일(이하 김) 너희 셋을 만난 게 참 신기해. 개그맨 중에는 예능 하는 유재석·신동엽 이런 친구들하고만 친했는데, 너희들을 만날 줄이야! 심지어 공개 코미디를 하는 ‘본격 개그맨’이잖아.

박나래(이하 박) 진짜? 우리야말로 진짜 신기하지. 오빠를 알게 된 거. 인터뷰도 하고. 하하하.

장도연(이하 장) 우리가 케이블방송 <프로젝트 런웨이> 특별 게스트로 출연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간호섭 교수(홍익대 패션디자인과)님 생일파티에서 오빠랑 만났잖아. 패션계 유명한 분들도 다 있어서 너무 신기했어.

우리도 그분들이 신기했고, 그분들도 우리를 신기하게 생각했지. 서로의 합이 잘 맞았어.

개그와 패션은 통하는 게 많아서 그래. 독창적인 순발력이 생명이잖아. ‘본격 스타일리스트’와 ‘본격 개그우먼’의 만남이네! ‘본격’, 이 말 너무 멋지지 않아?

허안나(이하 허) 완전 영광! 영광! 영광!

처음부터 속사포가 터졌다. 말도 빨라 제지(?)가 좀처럼 안 됐다. “얘들아~ 좀 천천히! 기자님 힘드셔~~ 평소처럼 얘기하면 안 돼.” 김성일씨의 당부에 “네~에, 알~겠~습~니~다. 돼~어~었~지~요?” “하하하. 이거 진짜 재밌다!”

셋이 <개그콘서트> ‘패션 넘버 5’ 통해 친해졌지? 개그우먼으로서도 그 작품이 터닝포인트 같은데, 누구 아이디어?

나와 나래. 거기에 ‘기럭지’가 되는 도연이 합류했지. 벌써 6년 전이네.

그거 안 했으면 난 지금 영농후계자 됐을걸? 안 뜬 개그우먼 7년차라 귀촌하려고 했다가 도연과 안나한테 묻어갔지. 하하하.

박나래한테는 최고의 작품이었네?

에잇, 무슨 소리~(손을 내저으며) 수혜자는 도연이지. ‘등 굽히는’ 오버스런 포즈, 지금도 ‘핫’ 하잖아. 심지어 외국에서도 엄청 유명해.

아~. 그 자세? 우스꽝스럽지만, 패션모델들이 즐겨 해. ‘보그 포즈 넘버 3’쯤?

모델들의 포즈가 죄다 도연이 자세와 비슷했던 것 같다~.

혜진 언니(패션모델 한혜진) 말로는 그 포즈 싫어서 절대 안 한다던데?

왜? 송경아도, 한혜진도 다 했거든. 도연인 이후 패션 프로그램 출연도 했지? 티브이 홈쇼핑 게스트도 하고.

개그 인생 11년 통틀어 가장 재밌을 때였어. (공개 코미디 외에) 이런 (예능) 쪽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가르쳐준 작품이랄까? 이후 ‘투잡’ 생활화. 하하.

나래와 도연이 그 이후 반짝 치고 나갔다면 나는 못 쳤지. 그래서 지금 난 ‘스리잡’, ‘포잡’도 마다 안 해.

안나 언니도 곧 (잘될 거야)….

안나 언니 눈 밑에 눈물 보여. 하하하하.

내 걱정들 그만하시고. 오빠! 도연이 이참에 모델로 좀 발굴해서 키워주면 안 돼?

나이가 많이 찼어. 모델도 10대 때부터 키운다.

그럼 여기 10살짜리 어때? 신체적 발달 10살인 나래. (나래, 갑자기 모델 포즈를 취한다!)

모두 푸하하핫.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허안나, 박나래, 장도연.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허안나, 박나래, 장도연.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무대 없어지는 현실…“더 웃기고 싶어”

지금은 아닌데, 셋을 만나긴 전엔 ‘개그우먼=생또라이’ 같았거든. 끼 많은 거 타고난 거야?

박·장·허 푸핫하하. 오빠, 완전 웃기는 거 알지?

‘생또라이’가 아니라 ‘색또라이’라고 해줘~. 우리가 얼마나 섹쉬한데~.(모두 박장대소)

내가 이래 뵈어도 한 웃김 한다니까. 알지?

그럼. 오빠가 (김)지민 언니한테 ‘느낌 아니까’, ‘느낌 참 좋다’ 유행어 줬잖아.

‘느~낌 참~ 좋~다’는 사실 오빠가 나한테 준 건데, 안 물었지. 흑흑. 난 술 좋아하는 엄마 피를 물려받은 거 같아. 술도 좋아하지만. <개콘>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그거 엄마 술 취한 목소리 흉내냈던 거였거든. 완전 대박 났잖아.

난 특이할 게 없어.

나도 딱히 타고난 끼 없어.

그래서 그런가. 개그맨들 평소 땐 방송 모습과 참 달라. 낯가리고, 조용하고. 도연이도 그렇잖아?

맞아, 그런 분 많지. 정주리도 낯 엄청 가리잖아.

(김성일을 보며) 우린 어떤데?

개차반? 하하하. 나는 낯 안 가리는 스타일이거든.

낯가림이 있었는데, 하락세 겪으면서 이젠 낯 안 가려.

난 ‘지구는 둥그니까 앞으로 나가면 다 친구가 된다’ 주의였는데, 요즘 조금씩 낯을 가리네~.

개그맨들은 평소에도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갖고 있지 않아?

응. 힘들어. 우리는 웃기는 사람이지, 우스운 사람이 아냐. 근데 막 대하는 분들을 만나면 상처가 돼. 그래서 낯가림이 생겼나?

모르는 사람이 무턱대고 ‘한번 웃겨 보세요!’ 하면 진짜 열 받을 거 같아. 내 경우 처음 본 사람이 ‘어떻게 입으면 좋겠어요?’ 하면 당혹 그 자체거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속마음이 터져 나왔다. 절대 ‘우울·심각’ 모드는 아니었지만. “언제 어디서든 우울해져 있으면 안 될 거 같아.”(장) “우울할 때면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어.”(박) “모임에서 분위기 다운되면 눈치 보이고, 내 탓 하고….”(허) 이때 김성일씨가 해결사로 나섰다. “사람 웃기는 일이 가장 힘들어서 그래.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 난다’가 왜 나왔는 줄 알아? 그만큼 웃기는 일이 힘든 거야. 힘내! 너희는 지금 아주 잘하고 있어. 멋져! 진짜 멋진 녀석들.”

방송에서 개그맨들의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문화방송>이 오래전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을 없앤 데 이어 최근 <에스비에스>도 ‘웃찾사’를 폐지했다. 지상파 방송에서 유일하게 개그맨들이 설 무대는 <한국방송> ‘개그콘서트’뿐이다. 이들은 말했다. “‘기자님, 그녀들이 일제히 눈물을 흘렸다’고 써주세요!” 지금까지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살짝(?) 엄숙해졌다. “야야, 그만~. 우리한테 이런 건 안 어울려!”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커피숍에서 김성일과 만난 장도연, 박나래, 허안나.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커피숍에서 김성일과 만난 장도연, 박나래, 허안나.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우리도 ‘여자~ 여자~’랍니다”

셋 모두 싱글이다. 혼자 있을 때, 어떻게 지내?

나는 누구보다 싱글 라이프를 잘 즐긴다고 자부해. 들어는 봤나? 욜로족. 멍때리고 있는 거 정말 싫어! 뭔가를 계속 해야 하는 성향이야. 술 마시면 다음날 퍼지긴 하지만. 호호홍. 전날 술 안 마신 날엔 아침 일찍부터 프랑스 자수, 꽃꽂이, 디제잉, 필라테스, 요리 같은 걸 해. 인테리어에 관심도 많고, 식물도 많이 키운다구~.

나도 꽃꽂이 배우는 중이야. 개그우먼이라는 직업은 특성상 ‘여성성’을 갖기 힘든데, 꽃꽂이를 하면 나도 여자구나 싶어.(웃음)

에잇, 뭔 소리? 나래, 도연, 안나는 여성성이 풍부하지. (가수) 황보에 비하면 정말 그래.

박·장·허 정말? 하긴 우리가 ‘한’ 여자여자~ 하지.

꽃꽂이가 힐링도 되고, 정신 수양에도 참 좋아.

글치 않아도 선생님이 2년 하면 차분해진다고 그러더라. 하하하.

쉬는 날 나는 딱 3가지만 해. 아침에 일어나 영화 보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 들으며 걷고, 맥주 마셔. 최근 개봉한 화가 모드 루이스의 실화를 다룬 <내 사랑>이라는 영화를 보고 펑펑 울었어. 완전 대박! 정말 강추하고 싶어.

도연이는 정말 공감능력이 뛰어나. 근데 영화를 보면 왜 자꾸 졸아?(웃음)

나랑 공포영화 볼 때도 그랬어. 영화 시작할 때 ‘이거 진짜 무서울까?’ 물으려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쿨쿨.

진정성 없어 보이게…(왜 그런 소리를?) 나 기면증 있어. 아픈 사람 놀리면 안 돼! 내가 그래서 영화를 혼자 본다구~.

각자 기억에 남는 영화나 추천할 영화가 있어?

나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년 개봉한 일본 미스터리 영화).

나도 그거 완전 좋아. (탤런트) 김남주한테 디브이디 선물했지.

궁금한데?

꼭 봐. 완전 강추야!

<비포 선 라이즈> 시리즈가 좋았어. 음~ 진정성 있는 사랑? 나이 들어도 사랑이 있다! 오빤 어떤 영화가 좋았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그리고 스페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하이힐>. 대중 스타 엄마와 딸의 애증을 다룬 작품인데, 너희들이 보면 딱 좋을 거 같아. 다 딸들이잖아. 정말로 딸의 사랑은 엄마의 사랑에 절대적으로 못 미친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지. 오에스티도 좋고.

외롭다고?’ 강박관념부터 버려라

30대가 훌쩍 지났는데, 외로울 때 없어?

외로움? 까짓것 묻어둬~ 묻어둬~. 난 모른 척하는 편이야. 외롭다 싶을 땐 뭔가를 막 하지.

좀 외로우면 어때? 난 외로움을 즐겨. 요즘엔 ‘왜 행복해야 하지?’ 그런 생각도 해. ‘인간은 늘 불행한 게 당연하다’고 영화 <꿈의 제인>(2016년 개봉한 한국영화)에서도 그랬어. 참 와닿더라.

도연, 혹시 염세주의자?

도연이 뭐 어때서? 나도 도연 생각에 100% 동감! 행복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버리면 불행도 없어. 행복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지금 절대 불행하지도 않지.

다들 초긍정 마인드네. 나도 비슷한 생각이야. 그래서 우리가 찰떡궁합? 앞으론 어떻게 살래?

지금 주어진 일 열심히 하고, 즐겨야지. 뭐, 김숙·송은이 선배처럼 마흔 넘어서도 활발하게 활동했음 하지. 공개 코미디도 계속 하고 싶고.

허·장 나도 나도.

23살 때 개그우먼으로 데뷔해 4~5년차까지 못 떴어. 근데 지금은 바짝 일을 하고 있으니, 앞으로의 일은 모르는 거 같아. 최선을 다하면 길이 열리지 않을까?

셋 너무 멋져! 정말 최고야. 지금 같은 전성기가 앞으로도 계속될 거다. 분명해!

나는 (전성기) 아닌데? 지금 못 나가고 있다고.

야, 전성기가 인생에 한 번만 있는 줄 알아? 제2, 제3의 전성기가 또 온다. 걱정 마. 업다운이 없으면 인생이 재미없는 거 알지? 안나의 전성기, 또 온다. 두고 봐.

오빠, 나래랑 도연이 너무 착하지 않아? 내가 지금 ‘못 나간다’고 하니까, 눈가 촉촉해진 거 봐. 아~ 웃겨!

박·장 하~지~마~(오나미 말투)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어. 우리 모두 지금을 즐기자! 후회 없이!

맞아 맞아. 인생 뭐 있어? 즐겨!

그래. 이거 끝나고 뭐 하지?

장·박·허 술 마시러 갈까? 근데 남자가 없잖아?

인터뷰가 진행된 날은 7월14일, 금요일이었다! ‘불금’. 그들은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함께 술을 마실 친구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정리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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