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타게 된 어느 택시 운전사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금요일 밤이었다. 오랜만에 중학교 동창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강남역 부근이었다. 술자리는 자정이 다 돼서야 끝났다. 아쉬워하는 이들끼리 한잔 더 마시러 가자는 분위기였지만 나는 속이 좋지 않아 슬쩍 빠져나왔다. 요즘엔 늘 이렇다. 조금만 마셔도 취한다. 주말에 써야 할 원고도 있고 하니 이쯤에서 슬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편의점에 들어가 숙취해소 음료를 사들고 지하철역 앞에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약간 정신이 들었다. 열두 시 반이 되려는 참이었다. 막차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지금부터 뛰기는 싫어서 대로 쪽으로 걸어 나갔다. 택시를 잡을 요량이었다.
곳곳에 취객들이 눈에 띄었다. 전부 도로까지 나와 비틀거리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한강 이남으로 넘어올 일이 좀처럼 없는데 이 시간에 택시 잡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대부분 ‘예약’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간혹 보이는 빈차는 앞쪽에서 기다리던 취객이 냉큼 잡아탔다. 그때마다 조금씩 걷다 보니 지하철역에서도 상당히 먼 곳까지 오게 됐다. 어느새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낮에는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날 정도였는데 금세 기온이 떨어졌다. 그제야 내 스마트폰에도 카카오택시 앱이 깔려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평소에는 이용할 일이 없는 기능이다. 택시를 거의 타지 않으니까. 그러나 “죄송합니다. 이용 가능한 택시가 없습니다”라는 메시지만 뜰 뿐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을 정도로 추운 건 아니었지만 그러고 싶은 상황이기는 했다. 어느새 새벽 한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지하철을 타고 합정역까지라도 갈걸 그랬다. 그나마 빗줄기가 거세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비는 오는 듯 마는 듯 조금씩 지속적으로 내렸다. 나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바로 그때, 반대쪽 차로에서 빈차에 빨간 등을 켜고 달려오는 택시가 보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어, 여기” 하고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못 봤나 싶었는데 택시는 교차로에서 유턴하여 천천히 미끄러지듯 내 앞에 멈춰 섰다.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타자마자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스피커에서는 ‘스탠더드 넘버’의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목적지를 말하고 지친 몸을 기댔다.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은 운전사였다. “이 시간에 여기서 택시 잡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한참 기다리셨겠어요.” 내가 놀란 것은 상대가 여성 기사여서가 아니라 음색이 무척 예뻤기 때문이다. 슬쩍 옆모습을 확인하니 나이는 삼십대 후반 정도인 듯했다. 유니폼을 입고 손에는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는 건가. 내가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린 것 같다고 하자 자매님은 소리 내어 웃었다. 자신은 절대로 이 부근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시지 않는다며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에도 손님들과 이야기하는 걸 즐기는 타입인 듯했다. 다소 피곤했지만 지루한 시간을 그냥 보내기보다 마음 편히 대화를 나누는 쪽이 훨씬 낫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나는, 이런저런 연재 칼럼의 소재를 채집한다는 차원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성격이기도 하다. 택시 기사라면 더더욱 말할 나위가 없다.
대화는 ‘왜 하필 이곳으로 약속을 정했나’에서 ‘현재 나는 무슨 일로 먹고사는가’를 지나 ‘어쩌다가 택시를 몰게 되었나’로 이어졌다. 자매님은 원래 운전을 무서워했다고 한다. 평생 운전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당연히 면허를 딸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십대가 끝나갈 즈음 면허를 따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뭔가 이유가 있었나요?” 나는 웃으며 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때마침 멈췄다. 다음 곡이 흐르기까지 짧은 공백을 기다렸다는 듯 자매님이 말했다. “난 말이죠. 어떤 사람을 죽이기 위해 운전면허를 땄어요.” 이번에는 내 쪽에서 침묵할 차례였다. 아마도 내 얼굴에는 변함없이 웃음이 감돌고 있었으리라. 어쩔 줄 모르는 상황에서 어색하게 웃는 웃음이. “정말이에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로.”
확실히 농담을 하려는 기색은 엿보이지 않았다. 마음에 담아뒀던 얘기를 낯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놔 버리자, 어차피 다시 볼 일도 없으니까. 그런 기분이 느껴졌다. “음, 그렇다면 면허를 따서 교통사고로 위장해 누군가를 죽이려 했다든가, 그런 건가요?” 나는 계속해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정답!” 자매님은 즐거운 듯 말했다. 안심했다. 이건 정말 오래전 이야기이고 말하는 사람 역시 즐기고 있다. 위험한 냄새가 나긴 했지만 적어도 해묵은 원한을 털어놓으려는 것은 아닌 듯했다. “정말 죽이고 싶은 인간이 있었거든요.” 자매님의 목소리 톤이 살짝 가라앉았다. 첫 직장을 다니던 무렵이었다고 한다. 사내 연애가 금지된 회사에서 사내 연애를 하다가 들키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여자는 잘렸지만 불공평하게도 남자는 그대로 회사에 다녔다.
“당시 내 남자친구는요, 상사가 주선한 혼담을 받아들이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날 처리하기 위해 상사에게 일부러 고백한 거예요. 나랑 사귀는 걸 말이에요. 하지만 자긴 진심이 아니다, 그 여자가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힘들다, 그렇게 이야기했죠. 자기는 회사 규정을 어기기 싫어서 몇 번이나 거절했다고.” 심지어 그런 사정 또한 남자친구가 자매님에게 직접 알려줬다고 한다. 미안하다면서. 이해해 달라면서. 자기를 정말 사랑한다면 깨끗하게 물러나 주리라 믿는다면서. 이토록 뻔뻔한 인간이 세상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 인간들 틈에서 모두들 살아가고 있다. 나는 딱히 대꾸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말이 없자 비로소 어색해졌다고 느꼈는지 자매님이 활기차게 웃었다. 뒷맛이 씁쓸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런 인간 때문에 자신이 범죄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교통사고로 죽으면 사고로 처리될 거라 생각했다. 곧장 실행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무리 사고라도 사람이 죽으면 경찰 쪽에서 이것저것 따져볼 테니까. “그래서 말이죠, 최소한 십년은 기다릴 작정이었어요.” 경찰이 조사해도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접점을 찾기 어렵겠다 싶은 순간까지. “십년이나 지나면 당연히 소문도 사라지겠지만 죽이고 싶다는 마음도 사그라지지 않을까요?” 나는 물어보았다. “아뇨, 몇십년이 지나도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어요. 확신했죠. 그 자식이 한 짓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거든요.”
해고를 당하자마자 면허를 따기까지의 과정은 순조로웠다. 그러나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직장을 다시 구하는 일도 어려웠지만 면허를 땄다고 해도 차를 몰 일이 없으면 금방 잊어버릴 게 뻔했다. 그래서 운전면허를 이용할 수 있는 직장을 찾자고 결심했다. 그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두 달 동안 부지런히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마침맞은 자리가 쉽게 눈에 뜨일 리 없었다. 알 만한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 끝에 가까스로 적당한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입주 가정부 일이었다.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얼마 전까지 사무직이었던 이십대 여성이 갑자기 가정부로 일하게 되었으니 분명 괴로웠으리라.
“창피한 마음은 없었어요. 오히려 고마웠죠. 왜냐면 그 댁에서 운전을 할 수 있게 해줬거든요. 가정부인 동시에 사모님 전용 운전기사였어요. 세 대나 되는 자가용이 전부 외제차인 집이었죠. 사장님 전용 운전기사가 있긴 했지만 혼자만으로는 불편했나 보더라고요. 사모님도 미용실에 가거나 이런저런 일로 외출을 하니까 말이죠. 그래서 여자 운전기사로 고용해준 거예요.” 처음 반년 동안 낮에는 가정부로 일하고 밤에는 다른 운전기사의 지도를 받아 차를 몰고 집 근처를 돌면서 조금씩 실력을 키워갔다. 서툰 실력으로 운전을 하는 자신을 이렇다 할 타박 없이 지켜봐 준 사모님도 고마운 분이라고 자매님은 담담하게 말했다.
“어쨌거나 사람을 죽이는 일이니까 우수하고 실력 좋은 운전기사가 되어야 했어요. 차로 사람을 치어 죽이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스스로 각오한 일이긴 하지만 역시 감옥에 가는 게 좋을 리 없잖아요. 그래서 정상 참작이 될 정도의 무사고 실적을 가진 운전사가 되어야만 했죠.” 한편으로 돈도 악착같이 모았다고 했다. 사고로 사람을 죽이면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상당액을 배상해야만 하니까. 배상금까지 지불할 생각이었냐는 내 질문에 자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자식이 죽어서 가족들이 살기 힘들어지면 나도 잠자리가 뒤숭숭할 것 같았거든요.”
이쯤 되자 나도 슬그머니 무서워졌다. 오래도록 지속되는 분노와 주변을 배려하는 마음까지 갖춘 살의가 제일 무서운 것이 아닐까.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매님은 말을 이어갔다. “어느새 내 운전 실력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죠.” 하지만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운전기사로 일하던 집안의 사장님 회사가 파산한 것이다. 그는 자신을 가족처럼 대해준 분들이라 여간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사람을 죽일 계획을 앞두고 있으니 여러모로 얽히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대목에서 나는 물어볼 뻔했다. 운전기사 일을 그만둔 뒤에 곧장 그 자식을 죽이러 갔냐고. 아니, 죽였냐고. 동시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익숙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자매님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는 동안 이 사람은 내가 웅얼거렸던 지명을 정확히 기억하고 집 근처까지 데려다준 것이다. “다 왔네요.” 나는 카드를 꺼내 택시비를 지불했다. “고맙습니다.” 그러고는 차에서 내렸다. 차는 심야의 도심 속으로 돌아갔다.
세상은 넓은 것 같으면서도 좁으니까 혹시라도 이 글을 읽은 형제자매님들이 언제 어딘가에서 그녀의 택시를 타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부디 “아, 그 이야기 저도 알아요”라고 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었으면 한다. 그러나 나와 마찬가지로 내가 써놓은 대목까지밖에 듣지 못해서 뒷이야기가 궁금해졌다면 그녀에게 묻지 말고 미야베 미유키의 <인질 카논>을 읽어주시길. 틀림없이 내가 끼적인 잡문보다 훨씬 커다란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일러스트 이민혜
※이 콩트는 필자가 독자들이 ‘읽어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도록 다양한 소설을 색다르게 소개하는 방식인 ‘궁금증 유발적 소설 각색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