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재미로 야구장을 찾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 1일, ’인천 에스케이행복드림구장’. 박미향 기자
야구는 내 생활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내게 야구란, 초등학교 2학년 때 프로야구가 개막한 이후로 그러니까, 지치지 않고, 질리지 않고 수십년간 유일하게 남아 있는 취미이자 관심거리다. 싫증 빨리 내는 나로선 스스로에게 신기한 일이다. 시즌이 시작되면 메이저리그와 한국리그까지 매일매일 경기를 챙겨 보느라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다. 심지어는 십여년 전부터 사회인 야구를 시작해, 주말이 다가오면 설레는 마음 가눌 수 없는 중년 야구인이기도 하다.
야구장에 처음 가본 것은 10살 때였다. 고향에 당시 지역 연고가 없어서 광주까지 무궁화호를 타고 가서 처음으로 야구장을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열기와 함성이 탁 트인 넓은 운동장에 가득 찼던, 그 처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먹먹하다.
고등학생 때엔 우리 지역 연고 팀이 생겨서 일주일이 멀다 하고 야구장을 찾았다. 우리 팀은 매일매일 꼴찌로써 성적을 경신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해인가는 상상할 수 없는 좋은 성적을 거둬 야구장에서 흥분으로 보낸 계절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력한 추억은 역시 먹고 마시던 일이 아닐 수 없다. 옛날엔 야구장 안에서의 음주가 완전히 금지돼 있었다. 사람들은 몰래 가방에 술을 숨겨 들여와 마셨다. 그야말로 소주를 물처럼 마셨다던가. 사람들은 좋은 성적에 흥이 나, 가방에 숨겨 들여오던 술의 양도 어마어마해졌다던가. 고등학생 시절, 옆에 앉은 아저씨가 슬쩍 건네던 소주를 한잔 받아먹고 불콰해져서 ‘김성근’, ‘김기태’, ‘심성보’를 목청껏 외쳤던 기억이 선명하다.
김기태가 홈런을 치자, 기분 좋아진 아저씨가 내게 집에서 싸온 음식 한 보따리를 풀었다. “학생, 배고프지? 나도 혼자인데, 같이 하자고.” 괜찮다고, 마음에도 없는 사양을 가볍게 하면서도 가방에서 끝도 없이 나오는 음식을 보자 야구는 이미 뒷전이 되었다. “나는 야구장에 와서 모르는 사람하고 이렇게 음식 나누어 먹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 야구는 둘째고 이게 첫째야, 학생.”
사람 좋게 웃던 아저씨의 표정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시간이 꽤 오래 흘렀어도 그때 아저씨한테 얻어먹은 음식은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내 생애에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그가 내게 부린 음식은 찰밥에 나물반찬, 그리고 튀김닭과 한 잔의 소주였다. 고등학생이라고 술은 딱 한 잔을 따라주고는 주지 않아서 내심 서운했다. 그 한낮이 아마도 요새 햇빛과 닮아 있다는 것, 생각하니 아름답고 쓸쓸하다. 혼자 오시면서 음식을 왜 이리 많이 싸 오셨냐고, 신이 나서 뱉었던 말들이 요즘도 햇빛 속에 떠다니는 듯, 문득 그때, 그 시절의 온기가 여전하다.
나는 야구장에 먹으러 간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음식을 나누러 야구장에 간다. 그때 만난 아저씨 덕분에 나는 중요한 것 하나를 인생의 모토로 삼게 되었다. ‘야구장에서 야구 경기는 둘째고, 첫째는 음식을 나누는 것이다.’
내가 음식을 풀어놓았을 때 같이 온 사람들이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 소리를 들으면 내 마음이 편해진다. 이제는 대부분 야구장에서 퀄리티 좋은 음식을 사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야구장에서 파는 음식만 먹어야 한다는 것이 또 싫어져, 야구장에 갈 때면 바리바리 뭔가를 준비해 가는 게 일이 되었다. 야구장에 처음 데려간 친구가 신나하는 걸 보면 행복하고, 싸 간 음식을 먹을 때 ‘먹으러 왔나, 야구 보러 왔나 모르겠다’는 소리를 들으면 즐겁기만 하다. 그래, 먹으러 왔다. 야구는 집에 가서 하이라이트로 보면 된다! 막무가내로 나눠 먹고 또 마시는 이 버릇은 오래전 야구장에서 만난 찰밥과 나물반찬, 그리고 소주 한 잔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야구장에서 먹었던 그 많은 음식을 머릿속에 한 상 차려놓고 떠올려본다. 가장 맛있었던 음식, 유독 기억에 남는 음식, 가장 싫었던 음식들까지. 생각해 보니 몇몇 장면이 떠오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막걸리를 음료수통에 담아 가서 몰래 마셨던 일이다. 음료수인 것처럼 빨대를 꽂아 마시며 기분 좋게 경기를 즐겼다. 횟집에서 회를 떠 가서 막걸리 안주로 먹었던 적도 있다.
왜 그 기억이 가장 선명한지 생각해 보니, 그때 나는 혼자였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마음이 심란하고 어수선할 때 나는 혼자 목동구장에 가곤 했다. 사람 없는 내야 구석 자리에 앉아 막걸리를 빨대로 홀짝였던 거다. 그 무렵 야구장에서의 인생 모토도 순위가 좀 바뀌었다. 야구장에서 야구경기는 셋째, 음식을 나누는 게 둘째, 그보다 어수선한 마음을 야구장에 부려 놓고 오는 게 첫째가 됐다.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는 데 야구장만큼 좋은 곳도 없다. 거기서 마음을 다잡으며 빨대로 빨아 마시던 막걸리야말로 내 ‘야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음식이 아닐 수 없다.
글 백가흠/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