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입니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토요일, 학교를 마치면 친구 집에 몰려가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음악방송을 만드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방송, 뭐 거창할 것도 없었습니다. “청소년 여러분, 공부하느라 힘드시죠? 그래도 우리, 같이 음악 들으며 이 시간 함께해요.” 각자 써온, 유치하고 손발 오그라드는 대본을 읽고, 미리 선곡해온 노래를 틀어 녹음한 뒤 우리끼리 돌려 듣는 게 전부였으니까요.
윤상, 손무현, 남궁연. 그때 주로 듣고 녹음하던 노래를 만든 이들이었습니다. 누가 더 세세한 것을 많이 알고 있나 ‘아는 척 대잔치’를 하던 나이였으니 작곡은 누가 하고, 기타는 누가 또 드럼은 누가 쳤는지 모를 리 없었죠. 훈훈한 외모에 매력적인 목소리, 빠져드는 입담을 가진 ‘오빠들’. 여중생의 심장은 그저 두근두근, 거렸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날은 언제나 그러하듯, 오빠들은 군대를 가거나 인기가 한풀 꺾였고, 저도 그들을 잊고 지냈습니다. 기억이 돌아온 건 시트콤을 보면서였습니다. 산부인과 의사로 나온 ‘빡빡머리’, 어쩐지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로 남궁연. 아아아, 그 시절 사랑했던 오빠들이 ‘자유로운 영혼’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생각을 뛰어넘는 행보(뮤지션의 시트콤 출연이라니!)와 ‘독보적인 외모’를 선보인 남궁연은 제 굳은 머리를, 또 한번 내려쳤습니다.
그 남궁연이 이번엔 ESC 독자들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민머리가 뭐 어때서, 머리카락 없는 게 뭐 그리 중요해, 편견을 깨고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게 멋지지 않냐고 말입니다. 그렇네요. 머리카락이 있어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기 흉하죠. 덕분에, 생각해봅니다. 키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 머리가 큰 사람, 장애인, 여성, 비혼, 성소수자…. 우리에겐,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부당하게 평가당하고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너무도 많은 것 같습니다. 대체 이런 편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자신을 포함한 다수가 고통받고 있는 편견을 내면화하지 않을 방법은 무엇일까요?
조혜정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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