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에 반찬을 올려 비비기만 하면 되는 덮밥이 바쁜 도시인의 끼니로 부상 중이다. 한국농식품유통교육원이 낸 자료를 보면, 올해 2조3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가정간편식(HMR. Home Meal Replacement. 가정식을 대체할 간편한 조리식품) 시장에서도 덮밥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중화마파두부덮밥, 볶은김치덮밥, 레드스파이시커리덮밥 등의 상품을 갖춘 씨제이제일제당의 ‘햇반 컵반’은 지난해 2배 성장해 약 4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출시된 지에스(GS)25의 ‘김혜자민물장어덮밥’도 가격이 1만원대지만 찾는 이가 많다. 간편 조리가 가능한 덮밥류 재료 위주로 배달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 ‘굿잇츠’는 최근 벤처캐피털 업체로부터 5억원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독특하거나 고급 식재료로 만든 덮밥을 내놓는 식당도 식도락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고 있다. 일요일인 지난 19일 저녁 7시 경기도 용인시 신세계백화점 경기점 식당가 7층에 위치한 일식집 ‘화락’. 북적대는 사람들로 만석이었다. 차림표에 독특한 메뉴가 눈에 띄었다. ‘와다덮밥’. 주인 윤창훈(39)씨는 “연어덮밥, 와다덮밥 등 덮밥류를 찾는 이들이 최근 부쩍 늘었다”고 했다. 웬만한 일식당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와다덮밥’은 해삼 내장을 다져 갖은 양념을 한 뒤 꼬들꼬들한 밥에 올린 덮밥이다. 23년 경력의 총주방장 김태경(45)씨는 “고노와다(해삼 내장)는 코스 요리에서 회를 찍어 먹는 양념으로 쓰기도 하는데, 조금 묽게 해 양념을 더하면 맛있는 덮밥의 재료가 된다”고 말했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일식당 ‘키오쿠’에서는 찐 게살, 버섯 등이 올라가는 ‘게살덮밥’과 연어, 참치, 광어, 연어알 등 신선한 재료가 올라간 지라시스시(일종의 회덮밥으로 일본 전통 초밥의 한 종류)가 인기다. 덮밥의 확장판인 ‘곤드레차돌박이솥밥’도 찾는 이가 많다고 한다.
편의점과 전문식당서 인기
해삼내장 등 고급 식재료 쓰기도
집에서 만들 땐 쌀과 물 비율 중요
밥과 반찬은 8대2 정도로
아무리 다양한 덮밥류가 출시되어도 지겨워질 때가 있다. 소문난 덮밥집을 찾아가는 것도 번거로울 수 있다. 키오쿠의 사와다 가즈미(48) 셰프가 집에서 간단하지만 맛있는 덮밥 만들기에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다. 18살에 주방일을 시작한 그는 교토에서 일본 전통식 가이세키 요리를 섭렵하고 ‘포시즌스 호텔 광저우’ 등에서 일하면서 일본 가정식 요리교실 등을 운영한 경력이 있다.
“덮밥의 생명은 밥이다. 밥이 진짜 맛있어야 한다.” 사와다는 맛있는 덮밥의 첫걸음은 밥 짓기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밥알이 서있고 반짝거리며 윤기가 나는 밥을 ‘은밥’(Siver Rice)이라고 하는데, 그런 밥을 지으려면 품질이 좋은 쌀을 고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쌀을 잘 골랐다고 은밥이 탄생하지는 않는다. 정성스러운 밥 짓기 과정이 동반되어야한다.
잘 고른 쌀은 쌀알이 부서지지 않도록 살살 부드럽게 씻는다. 물은 5~7차례 정도 갈아주는 게 좋다. “쌀과 물의 비율은 재료에 따라 다르다. 회덮밥은 밥 위에 올라간 생선이 어느 정도 수분을 함유하고 있으므로 1 대 0.9가, 다른 덮밥은 1 대 1.2 정도가 적당하다. 다시마나 가쓰오부시 육수를 넣으면 밥의 향이 더 풍성해진다. 간장이나 맛술 등을 넣은 물로 밥을 지어도 좋다.” 전기밥솥 대신 냄비를 선택했다면, 뚜껑을 꼭 닫고 중불로 조리하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약불로 줄여 10분 더 익힌다. 불을 끈 뒤 10분 정도 뜸들이기도 잊으면 안 된다.
밥과, 밥 위에 올라가는 반찬류의 비율도 중요하다. 사와다는 “밥이 8, 반찬이 2 정도가 가장 환상적인 배합”이라고 한다. 반찬류는 어떤 것이나 좋지만 냄새가 심하거나 숙성된 생선은 피하는 게 좋다. 독특한 향이 식욕을 없애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찬류를 조리할 때, 채소는 살짝 숨이 죽을 정도로만 찐다. 오래 찌면 수분이 많아져 자칫 덮밥이 질어질 수 있다. 쇠고기나 닭고기, 돼지고기 등은 표면이 촉촉할 정도로만 익히는 게 좋다. 너무 익히면 밥과 잘 비벼지지 않는다.
덮밥은 소스가 ‘화룡점정’이다. 어떤 덮밥에도 만능이고, 조금만 뿌려도 근사한 맛을 내는 양념으로 그가 추천하는 건 데리야키(간장양념구이) 소스다. “간장, 맛술, 정종을 1 대 2대 1로 섞고 설탕을 적당히 넣어 끓이면 완성”이다. 취향에 따라 고추냉이나 후추를 뿌려 먹어도 좋다.
사와다는 평소 밥에 반숙달걀만 올리거나 간 마에 간장을 뿌린 덮밥을 즐겨 먹는다고 한다. 그가 손님용으로도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근사한 덮밥 레시피도 알려줬다.
게살덮밥
재료: 게살 60g, 적당히 자른 여러 가지 버섯(팽이버섯, 표고버섯 등) 40g, 자른 대파 10g, 자른 실파 적당량, 달걀 3개, 기본 육수 120㏄(물 15ℓ에 다시마를 넣고 끓이다가 팔팔 끓으면 불을 끄고 가쓰오부시 250g을 넣어 15~20분 우려내 만든다), 맛술 30㏄, 간장 30㏄, 밥 적당량, 김 가루 적당량.
만들기: 1. 기본 육수와 맛술, 간장(4 대 1 대 1 비율)을 냄비나 프라이팬에 넣어 끓인 후 게살과 버섯을 넣어 조린다. 2. 달걀 3개를 풀어 1번 위에 부은 뒤 뚜껑을 닫고 약불에서 15초 정도 더 익힌다. 3. 밥 위에 대파, 실파, 김 가루를 얹고 2를 올린다.
회덮밥(지라시스시)
재료: 샤리(초밥 밥) 150g, 광어나 연어, 참치 등 회 40g씩, 후리카케(김, 깨, 소금, 말린 채소나 해조류 가루 등을 섞은 식품) 적당량, 잘게 다진 표고버섯조림(기본 육수와 간장, 맛술을 8 대 1 대 1로 섞은 데 설탕을 조금 넣고 표고버섯을 적당히 조려 만든다), 채 썬 오이, 깨, 간장, 고추냉이 적당량.
만들기: 1. 3 대 1 대 1로 섞은 식초, 설탕, 소금 15~20㏄를 밥과 섞어 샤리를 만든다. 2. 밥 위에 후리카케, 표고버섯조림, 오이, 깨 등을 올린다. 그 위에 생선을 얹고 간장과 고추냉이를 넣는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