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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전세계를 보는 것…늘 재밌는 일 생겨”

등록 2017-01-11 19:37수정 2017-01-12 15:58

[ESC] 요리
‘오키친’ 접고 한국 떠나는 요리사 스스무 요나구니

“훌륭한 요리사 되려면
문학·역사·예술 알아야
음식은 인간의 역사
모던한식 시작은 한식 전통”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고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주방을 지키는 요리사든 드물다. 아직도 주방을 지키는 요리사 스스무 요나구니. 박미향 기자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고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주방을 지키는 요리사든 드물다. 아직도 주방을 지키는 요리사 스스무 요나구니. 박미향 기자
일본인이지만 타국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은 요리사 스스무 요나구니(68). 일본 류큐대 생물학과를 중퇴하고 22살에 영국으로 갔다. 숭배하는 비틀스의 나라여서였다. 주머니엔 단돈 18파운드(약 2만5000원). 식당 허드렛일을 시작하면서 요리사의 길에 들어섰다. 30대 초반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20년간 치열하게 요리사로 살았다. 그곳에서 동양인 최초로 부주방장에 올랐고, <뉴욕 타임스> 별점도 무수히 받았다. 그런 그가 한국에 정착하게 된 건 첫눈에 반한 아내 오정미(56)씨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1990년대 중반 뉴욕의 도자기 학교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다. 오씨는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뉴욕에서 보석디자이너, 유리공예 작가 등으로 활동했고, 프랑스요리 학교도 마친 푸드스타일리스트다.

부부는 2001년 한국에 와 푸드스타일리스트 교육장인 ‘오정미 푸드아트 연구소’를 열었다. 2006년엔 수강생의 실습장소로도 쓸 겸 고급 레스토랑 ‘오키친’을 열었다. 서울 이태원점을 거쳐 광화문과 여의도 두 곳에서 오키친을 운영하던 부부가 2016년의 마지막날인 지난달 31일 돌연 식당 문을 닫았다. 방송 출연도 해 대중의 인기를 거머쥔 스타 요리사가 2주나 예약이 밀리는 ‘잘나가는 레스토랑’을 닫은 이유가 궁금했다. 지난 5일 스스무의 두번째 브랜드이자 고급 햄버거 가게인 ‘오케이버거’에서 그를 만났다.

-레스토랑을 닫고 말레이시아에 간다는 말이 들린다. 이유가 뭔가?

스스무 요나구니(사진 오른쪽)의 풍성한 삶은 아내인 푸드스타일리스트 오정미씨가 있어서 가능했다. 박미향 기자
스스무 요나구니(사진 오른쪽)의 풍성한 삶은 아내인 푸드스타일리스트 오정미씨가 있어서 가능했다. 박미향 기자

“어디를 갈지, 그 기간이 얼마가 될지 나도 모른다. 곧 한국을 떠날 예정이다. 레스토랑 주인은 비즈니스를 생각해야 한다. 단골이 많아야 운영이 된다. 내 단골은 많지만 그들이 다 와도 80~100석 되는 광화문점은 너무 컸다. 또 오키친 손님들은 우리를 만나러 온다. 예전 이태원점에선 늘 우리를 만났는데, 식당 두 개를 운영하다 보니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광화문점에 있는데 손님이 여의도점에 와 ‘어디 있느냐’고 전화한 적도 있었다. 손님으로선 서운했을 거다.”

-수제버거집으로 이름을 날리는 ‘오케이버거’도 문을 닫나?

“아니다. 여긴 내가 없어도 운영이 된다. 하지만 오키친은 다르다. 주인이 인사하고 메뉴나 와인 선택을 도와주고 대화도 나눠야 한다. 고급 레스토랑에는 요리사가 붙어 있어야 한다.”

그는 요리사와 손님이 대화로 소통하는 공간이 레스토랑이라고 생각한다. 지표가 뚝뚝 떨어지는 한국 경제의 위기도 식당 문을 닫는 이유 중 하나다. 오키친의 가격이 비싸 시대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나이 예순여덟, 이제는 조금 쉬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요리사는 비즈니스보다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레스토랑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닌가?

“요리사는 요리만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주인은 다르다. 먹고살려고 식당을 하는 거다. ‘손님을 위해서 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운영이 안 되면 직원 월급을 못 준다. 좋은 식당은 직원들이 행복한 곳이다. 월급은 기본이다.”

오키친의 종업원 일부는 오케이버거로 옮기고, 일부는 외국에 공부하러 가고, 일부는 다른 레스토랑에 취업이 됐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오면 다시 레스토랑을 열 생각인가?

“언제가 될지 모르겠으나 캐주얼한 식당을 열고 싶다. 아메리칸 스타일이 될 것 같다. 어떤 재료나 다 쓸 수 있어 좋다.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만들 수 없고, 이탈리안 식당에선 프렌치 소스를 못 쓴다. 1인가구가 늘고 있는데, 그들이 처음 와도 편하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곳이었으면 한다.”

-이 선택에는 당신의 철학이 깔려 있는 것 같다.

“본래 내 꿈은 ‘전세계를 다니며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요리를 하는 것뿐이다. 어찌 보면 (요리는) ‘부업’인 셈이다. 좋았던 점도 많다. 좋은 사람들과 젊은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즐겁다. 생은 하나의 문을 닫으면 다른 문이 열린다. 매일 머리 아프게 걱정하며 사는 것보다는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는 게 낫다. 자신이 싫어하는 상황에 본인을 둘 필요가 없다. 인생의 한 부분이 끝나버렸다고 해서 (전체가) 다 끝난 건 아니다. 나는 영화 몇 편이 될 정도의 재밌는 삶을 살았다. 그런 삶이 ‘좋은 인생’이다. 늘 재밌는 일이 생겨 인생이 불안하지 않다.”

-늘 이렇게 낙천적이고 긍정적인가?

“낙관적으로 사는 게 가장 쉽다. 런던에 가기 전에 무일푼으로 여행했다. 돈 없이도 살 수 있나 알아보고 싶었다. 자작시를 팔아 라면을 사고 절에서 일하기도 했다. 굶은 적도 많았다. 가난하게 사는 게 익숙해지니 무서울 게 없고 자신감이 생겼다. 아내에게 ‘돈이 없어도 우리 살 수 있어’라고 자주 말하는 이유다.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은 행복하다.”

5형제의 장남이었던 그는 부친의 전화회사에서 일하는 게 재미없고 대학 공부가 지루해 일본을 탈출했다. 부친에게 “너 같은 놈은 세상에 잘못 나왔어. 너 같은 아들은 필요 없어”라는 말까지 들었다.

이제는 맛 볼수 없는 ‘오키친’의 그윽한 요리들. 스스무 요나구니 제공
이제는 맛 볼수 없는 ‘오키친’의 그윽한 요리들. 스스무 요나구니 제공

-‘먹방’, ‘쿡방’ 시대에 요리사들은 방송 출연이 고민거리 중 하나다.

“요즘 요리사 중 일부는 요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스타가 되거나 유명해지고 싶어서 요리를 한다. 잘못된 것이다. 요리를 잘하면서 틈틈이 방송 출연하는 게 정상이다. 그것만 확고하면 고민할 필요 없다. 방송은 다른 세계다. 요리사가 방송계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요즘 한식이 세계적으로 관심받고 있는데?

“유행인 건 맞다. 하지만 생각해볼 거리가 있다. 프랑스 사람이 일식이 좋아 그 조리법을 배워 만들면 그건 프렌치다. 일식이 아니다. 일식을 활용한 것뿐이다. 한식도 마찬가지다. 서양요리 하는 이가 한국의 식재료와 된장, 간장을 쓴다고 한식이 되는 건 아니다. 그건 서양요리다.”

-제대로 한식을 알리는 법은? 요즘 ‘모던 한식’, ‘컨템퍼러리(현대적) 한식’ 같은 말도 있다.

“한식의 전통을 고집해야 한다. 한식 요리사가 하는 음식이 한식이다. ‘모던 한식’의 시작은 한식당에서 출발해야 한다. 일본의 ‘나리사와’(<미쉐린가이드> 별점 2개를 받은 일본의 프렌치 식당)가 일본 식재료, 일식 조리법 사용한다고 ‘모던 일식’이라고 안 한다. 가이세키(전통 고급일식) 식당 ‘류긴’(<미쉐린가이드> 별점 3개를 받은 도쿄의 식당)은 서양식 조리법을 사용하지만 프렌치라고 안 한다. 한식을 완전히 배우고 난 다음 양식, 일식 등을 배워야 ‘컨템퍼러리 한식’이 만들어진다.”

-평소 책을 많이 읽는 걸로 안다. 소중한 요리책은?

“2년 전까지만 해도 3000권의 요리책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제자들이나 요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거의 다 나눠줬다. 책은 ‘먹는 것’이다. 보면 맛을 안다. 아무리 좋은 요리책이라도 쓸 만한 조리법은 한두 개였다. 이탈리아 모데나에 위치한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의 요리사 마시모 보투라가 쓴 책은 최고였다. 자신이 어떤 생각으로 요리하는지를 담았다. 음식에 관한 철학책 같았다. 그래서 훌륭한 요리사가 되려면 문학, 역사, 예술 등을 알아야 한다. 우리도 이런 요리사가 충분히 나올 수 있는데 지금 현실은 아쉽다. 생업에 바빠 여유가 없다.”

-요리가 뭔가?

“음식은 인간의 길이자 역사다. 19세기 토마토, 향신료, 설탕, 홍차의 역사는 인간의 얘기다. 커리는 영국이 인도를 점령했던 시대를 가장 잘 설명한다. 감자 한 알에도 역사가 스며들어 있다. 나는 식재료를 볼 때 이런 역사가 떠오른다.”

집 근처 밭에서 30여가지의 허브를 키우고, 동네 아저씨들의 술주정과 5000원짜리 백반을 좋아하는 그는 자신의 요리를 한마디로 “스스무의 요리”라고 한다. 남아메리카,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요리를 섭렵한 그는 ‘무국적 유목민’이다. 그의 새로운 출발은 더는 맛볼 수 없는 오키친의 ‘오리 콩피’, ‘고등어깻잎파스타’를 뛰어넘는 묵직한 맛을 만들어낼까.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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