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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디션’이 연 시장 ‘여명808’·‘상쾌환’이 더 키워

등록 2016-12-08 10:27수정 2016-12-08 10:31

[ESC] 커버스토리
숙취해소제 20년사
숙취해소음료 ’컨디션’.
숙취해소음료 ’컨디션’.
애주가 직장인 박지영(가명·45)씨는 몇년 전부터 술자리에 챙겨 가는 숙취해소제가 있다. 술잔이 몇 순배 돌면 가늘게 실눈을 뜨고 고객사 직원들의 알코올 섭취 정도를 살핀다. 이미 술이 술을 부르고 정신줄을 놓는 분위기로 전환되면 가방에서 숙취해소제를 주섬주섬 꺼내 전광석화로 입에 털어넣고 고객사 직원들에게도 나눠준다. 다음날 고객사 직원들과의 단톡방에는 박씨 칭찬이 줄을 잇는다. 다년간 애주가로서 터득한 비법을 영업전략으로 활용한 것이다. 요즘 같은 송년회철에는 박씨처럼 숙취해소제를 비밀병기로 챙기는 직장인이 많다.

유난히 술자리가 많은 한국에서는 폭음이 잦은 샐러리맨을 겨냥한 숙취해소제가 20여년 전부터 개발되어 줄곧 인기다. 술꾼들의 보디가드를 자청하는 숙취해소제의 선구자는 1992년 첫선을 보인 제일제당의 ‘컨디션’이다. 당시 출시 3년 만에 3700만병 이상 팔려 히트를 쳤다. 음료시장에서도 놀라운 판매실적이었다고 한다. 경쟁 제품도 속속 출시되어 ‘비즈니스 음료’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콩나물에 함유된 아스파라긴산에서 이름을 딴 대상(당시 미원)의 ‘아스파’, 엘지화학(당시 럭키)의 ‘비전’, 조선무약의 ‘솔표비즈니스’, 백화의 ‘알지오’, 종근당의 ‘씨티맨’, 영진약품의 ‘토픽스’ 등이 세상에 나와 술에 취한 속을 달랬다.

시장이 커진 만큼 업체들의 신경전도 치열했다. 조미료시장의 양대 산맥이기도 한 제일제당과 대상은 자사 제품의 성분과 숙취 해소 원리가 더 우수하다며 치열한 마케팅전을 펼쳤다. 대상은 아스파라긴산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문제를 두고 조선무약과 특허분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외국 시장 진출도 시작돼, 제일제당의 컨디션은 1996년 동남아와 유럽, 일본 등지에 수출을 시작해 음주천국인 한국의 ‘진면목’을 세계에 알렸다.

숙취해소 환 ’상쾌환’.
숙취해소 환 ’상쾌환’.
새 천년을 코앞에 둔 1998년, 혜성처럼 등장한 ‘여명808’은 숙취해소제의 춘추전국시대를 흔들어 놨다. ‘숙취해소 808 여명 808/ 음주전후 숙취해소/ 마시자 808 해외특허 808/ 정말 좋아요 여명 808.’ 기묘한 분장을 하고 입에 착착 달라붙는 가사로 ‘병맛 광고’(맥락이 없고 이상하지만 웃기는 광고)의 진수를 보여주는 여명808은 애주가들 사이에서 ‘마시면 구토가 나와 술을 깨게 하는 음료’, ‘무심코 집어들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놀라 술을 깨게 하는 음료’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더해지면서 여전히 술꾼들의 입을 오르내린다.

여명808은 헌법재판소까지 간 음료다. 출시 초창기, 식품에는 ‘숙취해소’라는 문구를 넣지 못한다는 식약청 고시가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개발사인 주식회사 그래미의 남종현 사장이 헌법소원을 낸 것이다. 헌법소원은 받아들여져서 ‘숙취해소용 천연차’라는 문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남 사장은 동생이 간경화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자 연구를 거듭해 결국 개발에 성공했다고 한다.

숙취해소제 ’밀크시슬’.
숙취해소제 ’밀크시슬’.
2005년 출시된 동아제약의 ‘모닝케어’까지 잘 팔리며 확대되어가던 숙취해소제 시장은, 섭취가 간편한 알약 형태의 환이 인기를 끌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2013년 삼양사는 환 형태의 숙취해소제 ‘큐원 상쾌환’을 출시했다. 애주가들의 반응도 상쾌해 지난 10월까지 누적판매 300만개가 넘었다. 헛개나무, 산사나무 열매, 칡꽃 등의 농축액과 여러 가지 효모추출액을 섞어 만든 상쾌환은 이름이 주는 경쾌한 뉘앙스가 20~30대에게 호감을 줬다는 게 업계의 평이다. 상사의 눈치를 안 보고 주머니에 넣어 가져가 눈에 안 띄게 먹을 수 있다는 점도 인기의 비결이라고 한다. 환 형태의 컨디션도 판매되고 있으며, 환과 비슷한 알약 형태의 ‘회식의 신’ 등도 있다. 현재 숙취해소제 시장의 75%는 컨디션과 여명808이 장악하고 있지만, 환 형태의 수요도 급증해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150% 증가했다고 한다.

애주가들 사이에선 수입 숙취해소제도 조용히 소문이 나고 있다. 동원에프엔비가 수입하는 미국의 ‘지엔씨(GNC) 밀크씨슬’이 주인공. 밀크씨슬은 엉겅퀴과의 민들레과 식물로 씨가 간을 보호하는 데 효과가 있어 200여년 전부터 유럽에서 섭취했다고 한다. 젤리나 캔디 형태의 숙취해소제도 현재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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