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미어 열풍이 갑자기 불어오는 겨울바람을 이길 기세다. 카슈미르 지역의 염소 솜털로 만드는 캐시미어는 소재 자체가 귀한데다, 부드럽고 가볍지만 보온성은 양모의 3~8배가 될 정도로 따뜻해 ‘섬유의 보석’이라고 불린다. 최고급 니트 원단인 만큼 가격대도 만만치 않아 로로피아나, 브루넬로쿠치넬리 등의 캐시미어 제품은 수백만~수천만원에 이른다. 하지만 홈쇼핑업체의 자체 브랜드를 중심으로 원단 대량주문, 유통단계 축소 등이 이뤄지면서 가격이 10만원대 이하까지 내려간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가격 낮아진 캐시미어 의류
주부 이윤경(36)씨는 며칠 전 텔레비전 리모컨을 돌리다 화들짝 놀랐다. ‘100% 캐시미어 스웨터가 8만9천원? 이게 웬 횡재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휴대전화를 들었다. “주문이 완료되었습니다.”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는 “올겨울엔 나도 캐시미어로 고급스런 분위기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값싼 가격 덕에 나 말고도 캐시미어 제품을 구입한 주부들이 주위에 널렸다”고 했다. 실제로 홈쇼핑업체의 캐시미어 판매는 호조세다. 박중운 지에스(GS)샵 패션팀 엠디(MD)는 “올해 자체 브랜드인 쏘울의 캐시미어 제품 판매 목표가 지난해의 두 배인 100억원이다. 그런데 시장 반응이 워낙 뜨거워 목표치를 상회할 것 같다”며 “구입 연령도 낮아져 기존 40~50대뿐만 아니라 20~30대 고객도 많이 산다”고 말했다.
이처럼 캐시미어 제품이 잘 팔리는 건 무엇보다도 저렴해진 가격 때문이다. 여전히 고가의 제품도 많지만, 홈쇼핑업체나 스파(SPA) 브랜드에선 스웨터는 10만원 이하, 코트는 20만원대로 구입할 수 있다. 이들 업체에서 수만~수십만벌에 해당되는 대량의 원단을 주문하기 때문에 ‘가격 합리화’가 가능하다고 한다. 원단업체 등과 직접 계약을 맺어 중간 유통마진을 줄이고, 대량으로 옷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격을 낮출 수 있는 한 이유다.
품질도 나쁘지 않다. 김대홍 씨제이(CJ)오쇼핑 패션의류팀 엠디는 “풀오버 1장을 만들 때 평균 200~250g의 솜털을 사용하는 등 제품의 질은 일반 브랜드와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이민영 롯데홈쇼핑 패션콘텐츠개발팀 수석은 “자체 브랜드인 엘비엘(LBL)의 경우 내몽고산 캐시미어 100%에 14.5~15μ(미크론·1/1000㎜)의 가늘고 부드러운 원사를 사용해 촉감이 부드럽고 보온성이 우수하다”고 말했다.
캐시미어엔 캐시미어
기존 캐시미어 의류가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한 멋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면, 올해는 다양해진 디자인이 속속 나오는 게 특징이다. 스웨터·카디건·코트 말고도 롱스커트, 원피스, 바지 등도 나왔다. 유니클로 관계자는 “최근 유행을 반영해 어깨가 드러난 스웨터, 케이프(망토), 긴 기장의 카디건이나 루스 핏 스웨터 등 오버사이즈 제품들이 많다”며 “색상 면에서도 버건디, 짙은 회색, 와인, 베이지뿐만 아니라 연분홍이나 파스텔 블루, 연하늘, 겨자색 등 유행하는 색깔의 제품도 많아 멋쟁이 아이템으로 활용하기 좋다”고 말했다.
남녀 불문하고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면, 캐시미어 소재 니트나 카디건을 추천한다. 워싱이 들어간 청바지에 베이지, 회색, 짙은 회색, 검정 등 무채색 계열의 기본 니트로 차분하고 세련된 느낌을 살려보자.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다면 파스텔톤이나 밝은 컬러로 포인트를 주면 된다.
홈쇼핑 중심으로 값싸져
롱스커트에 분홍색까지
다양해진 디자인·색상
보풀·먼지 관리 잘해야
캐시미어 카디건으로 세련된 느낌을 주고 싶다면, 여성의 경우 스커트나 원피스를 함께 입는 것이 효과적이다. 특히 올해는 길이가 긴 카디건이 유행인데, 무릎 길이의 스커트나 원피스에 겹쳐 입으면 여성스러워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나 출근할 때도 활용할 수 있다. 캐시미어 터틀넥이나 카디건에 발목까지 오는 주름치마를 입으면 개성을 더할 수 있다. 르캐시미어 홍보팀 송보라씨는 “색다른 스타일을 원한다면 프린지 스타일의 판초나 스웨터에 와이드 팬츠, 원피스를 겹쳐 입어 포인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캐시미어 소재의 재킷과 조끼는 청바지보다는 모직이나 캐시미어 혼방 바지와 더 잘 어울린다. 여기에 캐시미어 머플러를 함께 연출하면 한층 세련된 느낌을 낼 수 있다. 박선영 씨제이오쇼핑 패션의류팀 엠디는 “여유로운 핏의 캐시미어 상의는 주름치마와 연출하면 멋스럽다”며 “20~30대 여성의 경우 캐시미어 카디건 안에 얇은 셔츠를 입고, 청바지와 부츠를 매치하면 세련돼 보인다”고 말했다.
함량·원산지 잘 따져야
캐시미어 제품을 고를 땐 실제 캐시미어 함량을 잘 따져봐야 한다. 나일론이나 아크릴 등과 섞여 캐시미어 함량은 소량인데도 ‘캐시미어 제품’이라고 과장해 홍보나 광고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원산지 등이 적힌 라벨도 꼼꼼하게 살피는 습관이 필요하다. 김정은 리플레인 디자인실장은 “캐시미어 혼용률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상품의 품질도 차이가 난다”며 “나일론, 비스코스, 아크릴 등 합성섬유를 섞어 만든 제품은 울과 혼합한 제품과 비교해서도 가격이 아주 많이 저렴하므로, 너무 싸다면 일단 라벨을 확인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원단 생산지와 케이에스(KS)마크 등 품질검사 결과도 확인해야 한다. 캐시미어가 대중적인 원단이 아니기 때문에 울마크 같은 공인 등급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등지에서 대량 생산되고 있지만 이탈리아, 영국, 스코틀랜드, 내몽고산을 최고급으로 쳐준다. 수백년 동안 캐시미어를 가공한 노하우와 고유의 염색기술을 중국 등이 따라잡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왼쪽)유니클로 캐시미어 터틀넥, (오른쪽)리플레인 캐시미어 스웨터.
좋은 캐시미어 제품은 털의 방향이 가지런하고 부드러우며 윤기가 흐른다. 직물이 촘촘하고 섬세하게 짜였는지, 섬유의 짜임새와 탄성은 좋은지, 보풀은 잘 떨어지는지 등도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 르캐시미어 송보라씨는 “옷감을 볼에 비볐을 때 가렵거나 까슬한 느낌이 없는 제품을 골라야 한다”고 말했다.
캐시미어는 소재의 특성상 먼지가 잘 붙고 보풀이 일어나므로, 의류용 브러시로 자주 제거하는 등의 관리가 필요하다. 드라이클리닝을 권장하나 30도 정도의 미온수에 중성세제를 써서 세탁해도 무방하다. 유니클로 관계자는 “무리하게 힘을 주면 옷감이 변형될 수 있으므로 비틀어 짜지 말고 평평하게 눕혀서 그늘에 말려야 한다. 습기에도 약하므로 보관할 때 신문이나 방습제를 끼워 통풍이 잘되는 곳에 보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각 업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