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쿠르트가 지난 3월에 출시한 ‘콜드브루 바이 바빈스키’는 올여름 최고 히트 상품이다. 지난달까지 1200만개가 팔렸다. ‘#야쿠르트아줌마커피주세요’, ‘#야쿠르트콜드브루’, ‘#새로운혁명’ 등 수많은 해시태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퍼져나갔다. 음료시장에선 드문 일이다. 그 ‘콜드브루’의 자리를 노리는 색다른 커피들이 있다. ‘맛의 신세계’를 탐구하려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부추기는 ‘검은 유혹’이다.
질소 넣은 커피?!
질소커피는 맥주전문점처럼 탭 기구를 활용해서 따라 마신다.
커다랗고 두꺼운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치 거대한 커피 공장에 들어온 느낌이다. 논현동 ‘이디야커피랩’, 이디야커피의 카페 겸 커피연구소다. 21일 찾아간 커피랩 한가운데엔 삼각형 바가 있었다. 바 한쪽에서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들이 보였다. 향긋한 커피 향을 맡다가 다른 쪽에 설치된 요상한 기구를 발견했다. 펍이나 맥주전문점에나 있을 법한 탭이었다.
“니트로커피(질소커피)를 만드는 기구예요.” 신동휴 이디야커피 과장이 설명했다. “니트로커피는 5~6년 전 미국의 고급 커피 회사 스텀프타운이 출시해 세계적으로 인기인 커피”라고 했다. 질소를 주입해 기존 커피와 차별화된 맛을 내도록 만든 커피다.
이디야 수석바리스타 정동수씨가 탭을 눌러 질소커피 한잔을 뽑아 건넸다. 한국야쿠르트의 ‘콜드브루’처럼 차갑고 흑맥주 기네스처럼 흑갈색을 띠었다. 커피를 덮고 있는 거품과 함께 한 모금 마시자 버터의 고소한 풍미가 입안에 옅게 퍼지고 부드러운 질감이 혀를 감쌌다. 신 과장은 “색다른 질감이 가장 큰 특징”이라며 “보디감(입안에서 느껴지는 액체의 무게감)이 늘고 단맛, 신맛 등 맛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그가 탭 아래 설치된 냉장고를 열자 원액통이 보였다. 냉장고는 영상 2도, 원액통은 3기압으로 유지된다고 한다. 원액통은 질소통과 연결되어 있었다. 원액에 주입된 질소가 충분히 녹은 다음에야 맛을 볼 수 있다. 기체인 질소는 차가운 커피에만 녹는다. 높은 온도는 질소를 날려버린다. 신 과장은 “뜨겁게 내린 커피를 식혀서 만들 수 있지만, 식히는 동안 자칫 위생상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차갑게 내린 커피만 사용한다”고 했다.
재료로 쓰는 찬 커피는 침출식(원두가루를 찬물에 넣어 3~24시간 우려내는 방식. 콜드브루)으로 뽑은 원액을 주로 쓴다. 점적식(3단계로 이뤄진 추출기계 안에서 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우려내는 방식. 더치커피)보다 커피를 뽑아내는 시간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현재 이디야커피에서는 이 랩에서만 질소커피를 판매한다. 고급 원두를 사용한 스페셜티, 3종류의 원두를 섞은 커피 등 두 가지 질소커피 메뉴가 있다. 350㎖가 6500원이다.
투썸플레이스 등 대형 커피 체인점도 질소커피 메뉴를 속속 내놓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500여개 매장에서 질소커피 판매를 시작한 스타벅스도 한국에서도 이 메뉴를 추가하는 것을 적극 검토 중이다. 서울의 ‘헤븐 온 탑’, ‘나무사이로’, ‘커피합니다’, ‘라운지마켓’, ‘더 크립 에이’, ‘피에로커피’, ‘골드버튼’, 부산의 ‘에프엠커피스트리트’ 등의 카페에서도 질소커피를 맛볼 수 있다. 질소커피가 인기를 끌자 콜드브루 커피에 아산화질소로 만든 거품만 올리고 파는 곳들도 생겼다.
질소 넣어 녹인 찬 커피는
풍부하고 부드러운 질감
꽃향·과일향 매력의 비결은
커피에 섞은 찻가루
도형수 바리스타가 만든 ‘시그니처브루잉’. 독특하게 와인 잔에 커피를 담는다.
와인 잔에 빠진 커피
치직~치직! 커피 로스터기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천장의 뼈대가 쇄골처럼 드러난 서교동의 카페 ‘5 브루잉’(5 Brewing)의 오후는 커피 볶는 향이 접수했다. 창을 등지고 선 바리스타 도형수(34)씨의 옷깃에 갈색 향이 묻어 있었다. 그는 10년 경력의 바리스타다.
카페를 찾아간 지난 24일, 그가 보르도와인 잔을 건넸다. 와인 잔에 와인은 없었다. ‘검은 유혹’이라 불리는 커피로 채웠다.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손바닥으로 잔을 감싸자 투명한 유리를 통해 부드러운 커피의 온기가 전해졌다. 혀보다 코가 먼저 반응했다. 꽃향과 과일향이 폭죽 터지듯 삽시간에 퍼졌다. 와인 잔에 담겨 향이 더 잘 발산되는 듯했다.
“아로마(향)에 초점을 맞춰 만든 독특한 드립커피입니다.” 도씨가 말했다. 차림표에는 ‘시그니처브루잉’이라 적혀 있었다. 그의 창작품이다. 입안 가득 퍼지는 신맛이 로맨틱한 향과 만나 매력이 넘쳤다. 도씨는 “쓴맛을 더 좋아하고 신맛은 불쾌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신맛이 돌아도 향이 그윽해 즐겁게 마실 수 있는 커피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국제적인 바리스타 대회에서는 신맛과 쓴맛이 잘 조화를 이룬 커피가 상을 받고 있는데, 이 커피도 그런 흐름을 따른 것이다.
서교동에 위치한 ‘5브루잉’. 와인 잔에 나오는, 향미 강하면서도 구수한 커피 ’시그니처브루잉’.
‘시그니처브루잉’엔 예상도 못한 재료가 들어간다. 말린 얼그레이와 비치우롱이다. 이 찻가루를 커피가루에 1 대 10의 비율로 섞는다. 찻가루는 생산 방식이 다른 두 종류의 에티오피아 커피와 만나 은은하면서 구수한 맛을 선물한다. 그는 손님들이 남긴 여러 가지 커피와 차를 섞어 맛 실험을 하다가 ‘시그니처브루잉’를 개발했다고 한다.
커피를 내릴 땐 두 개의 드립 도구를 창의적으로 활용했다. 케멕스(추출기구의 한 종류) 위에 칼리타의 드리퍼를 얹어, 케멕스를 드립서버(우린 커피를 받는 도구)로 쓴 것이다. 도씨는 “케멕스의 높이는 23㎝로 일반 서버보다 길어서 여운이 긴 아로마를 만들기에 적당하다. 칼리타는 거름종이 주름이 20개로 커피가 산소와 결합하는 시간이 길어 아로마 만들기에 좋다”고 했다.
“반응이 폭발적입니다. 한 잔에 8000원인 정도로 가격이 높지만 이 커피만을 마시기 위해 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고객의 입이 그의 창의적인 제안에 반응하고 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