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모씨가 자신이 완성한 해녀 잠수복을 들고 웃고 있다.
긴 줄자를 들고 해녀 오현옥(58)씨에게 다가섰다. 머리를 둘렀던 그의 줄자는 목을 지나 팔의 관절, 팔목까지 꼼꼼히 둘레를 쟀다. 이어 윗배에서 허리, 아랫배로 쉴 새 없이 내려갔다. 지난 6일, 그의 줄자는 20군데가 넘는 오씨 몸 구석구석에 닿았다. 해녀 오씨가 한마디 한다. “이 양반 솜씨가 좋다. 나는 30년 넘은 단골이야.”
이성모(66)씨는 ‘해녀 잠수복 장인’이다. 제주 서귀포 성산읍에서 ‘소라잠수복’을 운영하며 40년 가까이 제주 해녀들의 잠수복을 만들어온 그를 해녀들은 ‘앙드레’로 부른다. 해녀 잠수복계의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이라는 얘기다. 현재 제주에서 해녀 잠수복을 만드는 곳은 소라잠수복 말고도 4곳이 더 있지만 많은 해녀들이 이씨를 해녀의 삶과 몸을 이해하는 장인으로 꼽는다.
그가 만든 옷 가운데 같은 해녀 잠수복은 단 한 벌도 없다. “해녀복은 일반 옷과 다르다. 손톱만큼의 틈도 없이, 딱 맞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헐거워 물이 들어가면 체온을 유지할 수 없어 물질을 못 한다.” 100% 주문을 받아, 모두 직접 만든다. 종업원 한명이 그의 일을 거들 뿐이다.
고무 잠수복이 보급되기 전에 제주 해녀들은 얇은 광목천을 실로 이어 만든 옷을 입었다. 해녀들은 ‘물옷’이라고 불렀다. 물옷의 기록은 17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702년 제주 목사 이형상이 기록한 <탐라순력도>에는 하얀 물옷을 입은 풍경이 묘사돼 있다. 1600년대의 기록물인 이건(조선 중기 제주로 유배 간 학자)의 <제주풍토기>(1629년)에는 알몸으로 작업했다는 기록도 있다. 물옷은 얇아서 젖으면 속살이 비쳐 ‘오해’를 받게 만들었고, 방수와 체온유지가 어렵고 실용성도 떨어졌다.
물옷을 입던 제주 해녀에게 고무 잠수복이 알려진 것은 것은 1970년대 초. 한 재일동포가 제주 해녀의 친지에게 고무옷 한두 벌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이씨는 “그때만 해도 가격이 5만원 정도 했다. 200만원이면 집 한 채를 지었으니 꽤 고가였다”고 술회했다.
이씨는 울산의 지인한테서 잠수복을 받아다 제주에서 파는 일을 했다. 옷을 팔다 보니 직접 만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운명 같은 가족관계가 그를 해녀 잠수복 장인으로 이끌었던 것일까. 그의 어머니 한양춘(89)씨도, 아내 김인심(65)씨도 해녀다. 눈썰미가 좋았던 그는 옷 만들기를 쉽게 배웠다. 누구보다 해녀의 삶을 잘 이해하는 그가 만든 옷이 입소문이 나면서 일감이 몰려들었다. 일을 막 시작한 1976년, 27살 젊은 청년 이씨는 하루 12시간 넘게 일했다. 잠잘 시간도 없었다. 한 해 1000벌이 넘는 잠수복을 만들었다.
그가 안내한 작업장에는 본드 냄새가 퍼져 있었다. 해녀 잠수복은 물옷과 달리 바느질이 아니라 본드로 붙인다. 처음에는 그 냄새가 불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고급 향수보다 더 달콤하다고 한다. 방 두 개짜리 허름한 작업장에는 재단된 잠수복과 원단들이 쌓여 있다. 그와 종업원 한명이 완성한 고운 잠수복들이 옷걸이에 걸려 있다. 둘이서 한 벌을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은 1시간30분. 가격은 원단의 두께에 따라 다른데, 4㎜가 28만원, 5㎜가 30만원, 6㎜는 32만원이다.
이씨는 출장도 자주 다닌다. 해녀가 모여 있는 마을이라면 바람이 불든 파도가 치든 공구상자 들고 달려간다. ‘맥가이버’가 되어 해녀들의 달라진 몸에 맞게 옷을 늘리고, 물질하다가 난 구멍을 메워준다. 해녀들은 평균 2년에 한 번 잠수복을 맞춘다. 솜씨가 소문이 나 거제·울산 등에서 출장 요청도 많다.
40년을 해녀 잠수복 장인으로 살아온 그는 다리가 불편했던 83살의 ‘할망 해녀’를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치수 재러 갔는데 날이 너무 추워 ‘할망 이런 날은 가면 안 돼’라고 당부했다. 2시간 뒤에 고인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80살 넘은 가난한 할망 해녀들이 오면 고무 모자를 그냥 주기도 한다. “그 할망이 며칠 뒤엔 꼭 잡은 옥돔을 갖다준다. 해녀들은 누구에게도 신세지는 걸 싫어한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몸의 변화를 알 수 있다는 그는 최근 배시시 웃는 날이 많다. “요즘 20~30대 해녀들이 나를 찾아온다. 해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후대로 이어지는 것 같아 기쁘다.”
제주/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참고자료 <2016 제주 해녀문화 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