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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기자가 딸 셋 ‘육아 동지’ 남편에게 쓴 손편지 이야기
김미영 기자가 딸 셋 ‘육아 동지’ 남편에게 쓴 손편지 이야기
남편과 두 딸에게 쓴 ‘손편지’. 평소 말과 카카오톡 대화로 나눌 수 없었던 가슴속 이야기들을 담았다. 이후 달라진 남편과 아이들의 태도 외에 평소 아내와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내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한 건 더 큰 수확이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전쟁영화처럼 흘러간 12년…
서운함·미안함·고마움 담은 글에
“나도 노력할게” 변화의 기운이 문득 남편에게 손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들어 남편과 소원하던 참이었다. 둘 다 일을 하면서 세 살 터울의 세 딸을 키우다 보니 퇴근 뒤 아이들을 누가 찾을 거냐, 설거지·청소·빨래는 누가 할 거냐 같은 문제로 자주 언쟁을 벌였다. 사소한 일 같지만 싸움이 잦아지니 서운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가끔은 카카오톡으로 퍼부어대기도 했는데, 그건 서로의 가슴에 비수만 꽂는 꼴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손편지, 정말 ‘약’이 될까? 지난 19일, 퇴근길에 편지지를 사러 동네 문구점에 들렀다. 다양한 색깔의 민무늬 원색, 꽃과 잎사귀가 그려진 우아한 것, 깜찍한 멘트와 캐릭터가 수놓인 귀여운 것 등 종류가 많았다. 이것저것 만지작거렸지만 쉽게 고를 수가 없었다. ‘편지지 하나 고를 때도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구나.’ 나는 남편의 취향조차 파악하지 못한 ‘불량 아내’였던 거다. 고심 끝에 초록색 잎사귀가 그려진 것, 낙엽이 수놓인 것 2개를 골라 들었다. 편지를 쓰겠다 결심은 했지만, 막상 진짜 쓰려니 손발이 오글거렸다. 너무 오랫동안 안 쓴 탓이다. 그 덕에 편지지는 가방 안에서 이틀을 보냈다. 겨우 볼펜을 들었지만 호칭부터 백지 상태. ‘사랑하는 당신’, ‘사랑하는 ○○씨’…. 아~ 아무래도 이건 아니올시다. ‘○○ 아빠!’? 이것도 어색하다. 벌써 편지지 몇 장을 찢어버린 것이냐. 따르릉~. 때마침 남편한테 전화가 왔다. “갑자기 1박2일 경주 출장을 가게 됐어.” 오호라~. 오늘은 우리 팀 회식이 있는 날, 알코올을 섭취할 게 뻔하니 술기운을 빌릴 수 있고 남편 눈치도 안 봐도 되니, 퇴근 뒤 제대로 쓸 수 있겠구나! 21일 늦은 밤, 책상 앞에 앉았다. ‘맨정신’이 아닌데도 호칭은 결국 생략. “오늘 아침에 화를 내서 미안해”로 첫 문장을 시작했다. “바로 사과할 생각이었지만, 쉽지 않더라. 당신 출근 시간이 일렀던 지난 1년간 고생한 것 뻔히 아는데. 난장판 된 집, 싱크대에 쌓여 있는 그릇, 세탁기에 널지 않은 채 방치된 빨래를 보니 그 마음이 쏘~옥 들어가 버렸어. …” 처음이 어렵지, 일단 시작하고 나니 평소 하고 싶었던 말들이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려 나왔다. “당신 없이 네 명의 여자가 하룻밤을 보내려니, 더욱더 당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새삼 알겠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자. …”
남편과 두 딸에게 쓴 ‘손편지’. 평소 말과 카카오톡 대화로 나눌 수 없었던 가슴속 이야기들을 담았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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