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을지로 맛집 안내서
을지로 일대에는 30년 넘은 노포들이 많다. 1960~70년대 번화가였던 이 거리에 문 연 식당들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찾는 추억의 맛집이다.
면과 밥집으로는 냉면명가 ‘우래옥’(1946년), 설렁탕집 ‘문화옥’(1952년), 서울에 춘천막국수를 알린 ‘춘천막국수’(1962년), 고관대작들 사진이 걸린 설렁탕집 ‘이남장’(1973년), 냉면집 ‘을지면옥’(1985년), 대략 30년 된 ‘동경우동’ 등이 있다. 중국집으로는 군만두가 유명한 ‘오구반점’(1953년), ‘안동장’(1948년) 등이 낡은 건물에서 영업한다. 양념돼지갈비집 ‘안성집’(1967년), 양념소갈비집 ‘조선옥’(1969년), 암소한우구이가 유명한 ‘통일집’(1969년), 갈비찜과 어복쟁반 등을 파는 40년 역사의 ‘진고개’ 등은 고기류를 파는 식당들이다. 이 동네 대표 곱창집은 50년이 다 되어가는 ‘우일집’이다. 1992년 문 연 ‘양미옥’은 노포에 끼지도 못한다. 1950년 문 연 ‘평래옥’은 냉면, 초계탕 등이 유명하다. 면과 고깃집이 유독 많은 이 거리에서 아직까지 버티고 남아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을지다방’은 보석 같은 존재다.
노포에서 허기진 배를 채운 다음 가는 곳은 노가리 골목과 골뱅이 골목이다. 현재 대략 13개 호프집이 밀집해 있는 노가리 골목의 시작은 ‘을지오비베어’다. 문 연 지 36년 된 을지오비베어에 청춘을 바친 주인장 강효근씨는 이제 나이가 아흔이다. 당시 오비맥주가 생맥주를 처음 출시하고 가맹점을 모집하고 있었는데, 강씨가 오비베어 2호점인 을지오비베어를 열었다. 현재는 딸이 이어받아 운영하는데, 지금도 옛날처럼 연탄불에 노가리를 구워준다. 고추장에 찍어 먹는 노가리 안주는 강씨가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1980년대 초 500㏄ 생맥주는 380원, 노가리 한 마리는 100원이었다. 일을 마친 공구상가 직원들은 480원에 하루 시름을 털어내고 퇴근했다.
을지오비베어 다음으로 생긴 곳이 ‘뮌헨호프’다. 이곳 주인 정규호(73)씨는 본래 맞춤양복·양장을 만들어 파는 이였다. 기성복이 나오면서 경제사정이 어려워지자 호프집을 열었다. “이 골목에 우연히 왔는데 을지오비베어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걸 보고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노가리 골목과 쌍벽을 이루는 골뱅이 골목의 출발은 ‘원조영동골뱅이’다. 지금 주인인 권형석(47)씨의 부모님이 1959년 지금 자리에 작은 구멍가게를 연 것이 시초다. 권씨는 “여행을 좋아하셨던 부모님이 1968년 동해안을 여행하다가 그 지역 골뱅이 맛을 보게 되었다”며 “그 맛에 반해 골뱅이 통조림을 사다가 가게에서 맥주와 함께 팔았다”고 전했다. 일종의 가맥(가게 맥주)집이었던 셈이다. 권씨의 모친은 얇게 자른 파, 고춧가루, 다진 마늘, 도톰한 골뱅이에다 통조림에 남은 국물, 설탕, 어포 등을 넣어 비볐다. 골뱅이무침 조리법의 탄생이다. 90년대 초반 유사한 가게들이 인근에 생기면서 골뱅이 골목이 형성됐다.
미식가들은 ‘문 닫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집’으로 30년 넘은 ‘원조녹두’도 빼놓지 않는다. 밀가루 반죽에 쪽파, 오징어 등을 넉넉히 넣고 달걀을 풀어 마무리해 지지는 해물파전과 넓적한 동그랑땡이 인기다.
박미향 기자
을지오비베어의 노가리 안주. 사진 박미향 기자
원조영동골뱅이의 골뱅이무침.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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